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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ilelife Jul 22. 2024

보통의 날들에 보내는 찬사

어제, 오늘 그리고(조용필 7집)

어제는 잠깐 햇살이 쨍하고 얼굴을 드러내더니, 오늘 아침은 날이 흐리다. 날이 흐리면 흐린 대로, 좋으면 좋은 대로, 나는 매일 같이 새벽에 일어나 도시락을 싸고, 출근 준비를 하고 직장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탄다. 


그러나 오늘은 보통의 날들과는 조금 달랐다. 버스에 올라타려다가 내 발이 버스 앞문이 접히는 곳에 끼인 것이었다. 사실 버스를 타기 전까지는 모든 일이 순조로웠다. 시간 맞추어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고, 운이 좋아서인지 버스가 바로 내 앞에 정차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문제가 되었다.


내가 버스 앞문 앞에 다가서니 사람들이 내 곁에 바짝 붙어 섰다. 그중에 어떤 부인은 내 옆자리에 나란히 서서 나의 어깨를 자신의 어깨로 밀쳐댔다. 그녀가 버스의 앞문이 열리기를 열심으로 기다리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누구보다도 빨리 버스에 오르려는 기세였다.


내 곁에선 그녀를 보고 있자니 내 마음도 조급해졌다. 어쩐지 선두를 놓치기 싫었다. 내 앞에 버스가 정차했던 행운을 끝까지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버스의 앞문이 열리자마자 버스에 올라타기 위해 나도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녀와 나, 둘 중에 버스 계단을 향해 발을 먼저 디디는 쪽이 승자가 될 터였다.


드디어 버스 앞문이 열리고 있다. 나는 내 옆에 선 그녀보다도 빠르게 오른발을 올렸다. 그런데 급하게 발을 올리다 보니 왼발을 올려야 할 것을 오른발을 올렸다. 버스 앞문이 완전히 열리지 않은 터였다. 버스 문은 지그재그로 접히는 구조인데, 앞문이 안으로 접혀 들어가는 부분에 내 발이 향해갔다. 


그렇게 순간적으로 발이 버스 앞문에 끼었다. 앞문은 가벼운지라 발이 아프지 않았지만 나는 깜짝 놀라 "어머나!" 단말마 소리를 냈다. 서둘러 발을 빼어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다시 버스에 올랐다. 결론적으로는 가장 먼저 버스에 올랐지만 상처만 남은 우승이었다.


나이 마흔이다. 불혹이라는 나이에 가장 먼저 버스에 오르려다 버스 앞문에 발이 끼이다니. 부끄럽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부끄러움을 잊기 위해 핸드폰에 고개를 처박았다. 부끄러움은 부끄러움대로 머리 한쪽에 치워두려 애썼다. 버스 의자에 자리 잡은 뒤에 손가락은 평소와 같이 핸드폰 세상을 뒤적거리며 뇌를 자극할만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여기 길 떠나는 저기 방황하는 사람아
우린 모두 같이 떠나가고 있구나

문득 모든 일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방황하던 손가락을 잠시 쉬게 둔 채,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새벽부터 내린 비는 지금 소강상태. 어떤 이는 우산을 쓰고, 어떤 이는 우산을 쓰지 않은 채 거리를 걷고 있다. 그러고 보면 매일 같은 장소로 출근하면서도 내 삶은 방향이 있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나는 지금 분명히 목적지가 있는 버스 위에 앉아있지만 사실은 갈곳 모르는 손가락처럼 방황하고 있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거리를 걷고 있는 저 사람들은 자기 삶의 지향점을 알까. 나는 이 삶 속에서 얼마나 '나다운'삶을 살고 있을까. 이 세상에서 다른 이와 나를 구분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러고 보니 나는 요즈음 일상에서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왜 그럴까, 어쩌면 더위 때문이었다. 꽃샘추위 가득한 초봄에 태어나서 인지, 나는 어릴 때부터 유독 더위를 참지 못했다. 그런데 지구는 점점 뜨거워지고, 매해 여름은 나에게 더 많은 인내심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에어컨이 있는 장소에 갇혀 사는 것도 또 다른 구속이었다. 여름은 그리하여 내게 더더욱 힘든 계절이다.


아니다, 사실은 날이 덥다는 핑계로 하루하루 넋을 놓고 그저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는 나 자신이 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답답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타성에 젖어 살아가는 삶에 안주하고 있는 것도 모자라 버스에 가장 먼저 오르려는 사소한 욕심에 목메는 나의 이 한심함이 나를 옥죄는 것이었다.


문득 얼마 전에 들은 직장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사실, 몇 년 전에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이 있어. 신호위반으로 벌금을 내고 벌점을 받은 일이 계기가 되었지. 사실 별거 아닌 일인데, 나는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어서 내가 나를 지탱할 수 없었거든. 나 자신은 매우 도덕적인 사람이라고 스스로 규정짓고 있음을 그제야 알게 되었지. 그만한 일 하나에 내 정체성이 무너지면서 누군가의 도움이 간절히 필요했어."


나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잠시 생각했다. 어쩌면 나는 나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설령 내가 나의 정체성을 알고 있다고 한들,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나는 정체성이라는 것을 얼마나 실천하고 사는 것일까. 



어제 우리가 
찾은 것은 무엇인가 
잃은 것은 무엇인가
버린 것은 무엇인가


방황하던 손가락이 목적의식을 가지고 검색을 시작했다. 그리고 노래 한 곡을 플레이했다. 조용필의 <어제, 오늘 그리고>였다. 나를 꾸짖어 줄 만한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때, <어제, 오늘 그리고>를 부르던 조용필의 절규와 같은 창법이 생각이 났다.


내 귓가에 노래가 흘러나오자, 예상대로 노래는 나를 더욱 부끄럽게 만들었다. 어떤 이가 제대로 된 삶을 찾기 위한 몸부림을 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떤 가치를 향해 나아가야할 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할 지 진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노래였다. 조용필의 호소력 있는 목소리는 철학적인 내용을 전달하고 있었다. 이 목소리를 듣고 어찌 차마 사소한 욕심 앞에 굴복할 수 있을 것인가. 


노래를 반복해 들으며 최근의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흐린 날도, 해가 쨍한 날도 변함없이 생각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나는, 일상에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지 알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었다. 버려야 할 것은 버릴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오히려 물건을 사서 허기를 채우느라 내 손가락은 어제도 바빴다. 내 마음속에 조바심과 욕심과 나태함까지도 가득 담아둔 채 하루를 허겁지겁 살아내고 있었다.


일상은 어제와 같았고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러나, 오늘 아침의 작은 일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마음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부끄러움은, 내가 지금 잠깐 방향을 잃고 잘못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게 했다. 그리고 조용필의 노래는 다시금 내가 지향해야 할 가치, 방향을 고민하게 했다.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을 진지하게 생각해보았다. 그러자 문득 넘어지거나 하는 등의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버스 운전기사도 주변 사람들도 비난하거나 조롱하지 않고 별말 없이 넘어가주었었다. 그 모든 것이 감사했다. 


감았던 눈을 떴다. 그러고 보니 무기력하게 하루를 보내며 매일의 삶에서 감사하는 마음을 잊고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당장 내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감사하는 마음이었다.


무사히 마친 하루 끝에 비가 개었다. 덕분에 퇴근길은 더위가 기승이다. 아침과 달라진 날씨에 잠깐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이 걷히고 해가 쨍쨍하다. 버스 정류장에 서니 다시 아침의 일이 떠오른다. 버스를 올라탈 아침과 같은 욕심을 부리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이번엔 적당히 사람들과 거리를 둔 채 버스에 가장 마지막으로 올라탔다. 그래도 앉을자리는 많았다.


버스에서 무사히 내려 집으로 향하는 길 위에 올랐다. 한 걸음 한 걸음, 집에 가까워질 때마다 문득 내 마음이 편안해진다. 내 머리 위의 태양을 향해 원망을 쏟아내는 대신, 감사의 마음을 담아 바라본다. 그러고 보니 신기할 일이다. 문득 지겹게만 느껴지던 더위도, 내 머리 위해서 이글거리는 태양도, 한 겨울 추위에 내게 온기를 주는 따스한 난로처럼 반갑게 느껴졌다. 




오늘 우리가 
찾은 것은 무엇인가 
잃은 것은 무엇인가
남은 것은 무엇인가


오늘 내가 잃은 것은 일상에 감사할 줄 몰랐던 오만함과 욕심이었다. 그리고 오늘 내가 찾은 것은 보통의 날들에 대한 찬사이다. 그리하여 오늘 내게 남은 것은 한 발짝 더 가까이 내 곁에 선 행복이다. 


그리하여 아주 오래간만에 오늘 저녁은 늘어지게 행복을 누려본다. 된장찌개에 장조림만 있어도 맛있게 밥을 먹어주는 아이들의 모습에 기쁘고, 무탈하게 집에 돌아와 아이들의 영어 공부를 보아주는 남편의 뒷모습에 감사하며, 잠시 짬을 내어 이렇게 글을 쓰는 시간이 행복하다.


나는 매일 무언가 특별한 일을 기다린다. 가보지 않은 카페, 가보지 않은 음식점을 그토록 찾아다니는 이유도 그 특별한 무엇인가를 찾아보기 위함이다. 


그러나 가끔은 내게 부끄러움을 안겨주는 아주 사소한 일들이 내게 특별한 일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방향을 잃었던 내 마음을 돌이켜보게 하고 나를 다잡아주는 이런 일들이 어쩌면 내게 더욱더 특별한 일이 될 수 있다. 이런 일들은 삶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의 시선을 잃지 않도록 고삐를 당겨 바로잡아 주는 것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그런 고삐가 없이도 방향을 잃지 않는 것이다. 일상에 무뎌지는 감각을 바로잡아 나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제3의 눈이다. 가장 특별한 것은 바로 지금 내 곁에 있는 보통의 일상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 내 마음 속 특별한 시선이다.


스스로 잊지 말자고 다짐해 본다. 일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내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 이 보통의 일상이, 그리고 이 일상을 느끼는 내 마음속의 그 무엇이 내 삶을 '특별하게' 만들어나간다. 특별한 삶이란 누군가가 내게 쥐어주는 것이 아니라, 내 손에 달려 있는 것이다.


평범한 듯 보이는 보통의 날들은 그 얼마나 깊은 찬사를 받아야 하는 고마운 시간들인가. 밤늦은 시간 나는, 두 손을 모으고 내일부터는 다시 보통의 날들이 지속되기를 기도한다. 이 보통의 날들 속에서 나 스스로 더욱 특별한 하루를 만들 수 있는 지혜를 잃지 않기를 기도한다. 그리하여 내일, 또 내일은 '내가 만드는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보통날'이 되어갈 것이다.






어제, 오늘 그리고

(작곡 조용필 / 작사 하지영 / 노래 조용필)


바람 소리처럼 멀리 사라져 간 인생길
우린 무슨 사랑 어떤 사랑했나
텅 빈 가슴속에 가득 채울 것을 찾아서
우린 정처 없이 떠나가고 있네
여기 길 떠나는 저기 방황하는 사람아
우린 모두 같이 떠나가고 있구나
끝없이 시작된 방랑 속에서 

어제도 오늘도 나는 울었네


어제 우리가 

찾은 것은 무엇인가 

잃은 것은 무엇인가
버린 것은 무엇인가


오늘 우리가 

찾은 것은 무엇인가 

잃은 것은 무엇인가
남은 것은 무엇인가


오늘 우리가 

찾은 것은 무엇인가 

잃은 것은 무엇인가
남은 것은 무엇인가


어떤 날은 웃고 어떤 날은 울고 우는데
어떤 꽃은 지고 어떤 꽃은 피고 있네
오늘 찾지 못한 나의 알 수 없는 미련에
헤어날 수 없는 슬픔으로 있네


여기 길 떠나는 저기 방황하는 사람아
우린 모두 같이 떠나가고 있구나
끝없이 시작된 방랑 속에서

어제도 오늘도 나는 울었네


어제 우리가 

찾은 것은 무엇인가 

잃은 것은 무엇인가

버린 것은 무엇인가


오늘 우리가

찾은 것은 무엇인가 

잃은 것은 무엇인가
남은 것은 무엇인가


어제 우리가 

찾은 것은 무엇인가 

잃은 것은 무엇인가
버린 것은 무엇인가


오늘 우리가 

찾은 것은 무엇인가 

잃은 것은 무엇인가
남은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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