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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tal Eclipse Aug 27. 2021

추락의 밤

<녹턴 No.20 올림 다단조유작> byChopin

https://www.youtube.com/watch?v=A8zO2KX_VVU







  

  인간은

 죽음을 아는 유일한 존재.

 어찌 보면 그래서 많은 것들을 이루어 놓은 것일 수도.

 곱씹어 볼수록 무릎을 치게 만드는 말이다.

 영원하지 못할 것임을 알면서도 짐짓 모르는 척. 끝없이 살아있을 것처럼.

 그러나 언젠가 이 모든 것들과 이별을 하게 될 것임을 직감하는 순간

 한없이 깊은 구렁텅이에 빠지는 게 나약한 인간이 아니던가.

 하나의 존재가 소멸하면 소멸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할 텐데 

 세상을 실처럼 이어온 인류 중 죽음을 고민해 보지 않은 단 하나의 개체라도 있을 것인가.


 그래서 탄생한 것이다. 종교도 예술도 과학도.

 진화의 위대함으로 죽음을 알게 된 인간은 신을 믿으며 애써 망각됨의 두려움을 극복하려 했다.

 몸은 한 줌의 재가 될지언정 불멸의 작품으로 기억되기 위해 건반을 두드리고 붓을 휘날렸다.

 나 자신이 보잘것없다면 광대한 우주의 신비라도 알아야겠어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니 감사해야 할 것은 죽음뿐 아닌가.

 부정할 수 없는 진실.


 장담할 수 없는 게 있어서 오직 답답할 뿐이다.

 사랑함은 어떨까.

 죽음은커녕 노쇠함마저 두려워 우리는 서두르며 사랑을 찾는 것일까.

 사랑 역시 죽음과 노쇠함이 존재함으로써 더 특별해지느냐는 말이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아닌 듯.

 상상을 해 본다.

 나는 불멸의 존재다. 웬만한 사람하고는 사랑하지 않겠다. 삶이 영원하니 만남도 셀 수 없을 것이므로.

 그래서 미루고 미루고 미루게 될까.

 미친 듯 사랑을 했던 너를 

 죽음이 없는 세상에서 만났다고 해서 가볍게 봤을 것인가.


 그럴 리 없다. 상상을 해 봐도.

 넌 너일 뿐이고 난 너를 사랑할 뿐이다.

 알 수 없는 세상의 이치로

 내일 아침 네 생명이 꺼진다 해도.

 혹은 저주에 걸린 듯 영원히 삶을 이어간다고 해도.

 널 만나면 사랑할 뿐인 것을.


 그래서 사랑은.

 종교과도 예술과도 과학과도 다르다.


 영원조차 건드리지 못하는 절대. 

 그 모든 느낌과 감정을 하나의 단어로 축약하는 게 말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내뱉는 단어.

 사랑.


 너에 대한 사랑.


 그 사랑이 무너졌다는 것은.

 종교보다 예술보다 과학보다 뛰어난 인간의 가치가

 남김없이 소멸해 버렸다는 것.


 내 말이 틀렸나?


 

 

 서로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싶어서 그랬겠지.

 좋아하는 게 뭔지, 싫어하는 게 뭔지, 서로에게 바라는 게 뭔지, 세세한 경험들 조차도

 편지를 쓰듯 기록해 주고받았어.

 내 절대였던 너와 분리되어 버린 지금.

 글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듯 꿈틀거려. 어찌 된 일일까.

 검은색 잉크가 그려 넣은 직선과 곡선들도 결국 네 손에서 비롯된 것이고

 네 손은 심장이 시키는 대로 움직였을 테니. 

 '육필'이란 것이 얼마나 사랑스럽고도 처절한 단어인지 알 것 같아.

 

 이젠 글씨가 곧 너야.

 

 나뉘어진 둘이 아닌 하나로 녹아들어감을 자신했기에

 이러다 언젠가는 한 사람이 되어 버리는 건 아닐까.

 세상 가장 행복한 걱정을 하고 있었지.

 그런데 이젠.

 넌 글씨 속에서 흔적이 돼 버렸으니. 


 누군가는 공상 속의 사랑이 현실의 사랑보다 훨씬 좋다고 했어.

 가장 자극적인 매력은 만나지 않는 양 극단에 존재한다면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말도 안 되는 궤변일 뿐이지.

 그런 게 어딨어


 관통상을 입은 지금엔 어렴풋이 이해가 되는 듯도 해. 

 언젠가 마주칠 것을 꿈꾸며 맞은편에 그대로 서 있어야 했나.

 그게 더 행복했으려나? 

 적어도 이 저주스러운 고통엔 빠지지 않았을 테니. 숨어서라도 널 바라볼 수 있었을 테니. 


 모르겠어. 다 필요 없어.

 지금까지 주절댄 거 다 개소리일 뿐이야.


 그냥 네가 보고 싶다.

 널 보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서 그래. 순전히 날 위해서야, 맞아. 

 돌아서 주면 안 되겠니.

 돌아봐주면 안 될까.


 밤의 분위기에 영감을 받아 만든 노래를 야상곡이라고 한다면서.

 그 뜻만 보면 행복하고 들뜬 밤으로부터도 영감 받을 수 있는 거 아냐?

 왜 야상곡이라는 틀 속에 들어있는 음악들은 다 이 지경인 건지.

 

 아냐. 고마워해야겠어.

 오늘 같은 밤엔 한도를 넘어설 정도로 딱 들어맞을 뿐이네.

 한 소절 한 소절 넘어갈 때마다

 네 얼굴을 왼쪽부터 오른쪽까지 조각조각 나누어 떠올릴 거야.

 얼굴이 끝나면 네 손, 네 발, 네 모든 것. 너의 말, 너의 글.

 이 음악이 무한 반복되어도 좋아. 상관없어.


 아, 그렇구나.

 죽음이 있어 존재하는 게 예술이라고 내 입으로 말했지.

 모든 게 개소리는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소멸의 공포를 불멸의 선율로 극복하려 창조해 낸 작품이 쇼팽의 유작이라니.

 참 아이러니하지 않아?


 결국

 한없이 약한 인간이 

 죽음과, 죽음과도 같은 이별을 어떻게든 외면해 보려고 만든 것들이 이 세상에 널려 있어

 그나마 견딜 수 있는 건지도.


 깨질 것 같다. 찢길 것 같아.

 머리가. 가슴이.


 반복되는 음악 속에

 외면은커녕 

 나선형의 소용돌이 속 하수가 추락하듯이 

 지옥으로, 지옥으로 빠져들어가고 있어.


 늪이야. 이건. 


 보잘것없는 존재의 어리석은 본능.


 그건


 사랑에 빠지는 것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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