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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오랜 벗과의 낚시 여행

인디언 말로 '친구'란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 ~

by 자화상

철원은 봄이 늦게 찾아온다. 다른 말로 하면 겨울이 길다. 5월이 되어서야 낚시를 할 수 있다. 그나마 따듯한 날이어야 한다.


토요일 오후, 친구 P와 오랜만에 ‘학 저수지’로 향했다.


지난 코로나19 때, 사람들은 바이러스도 두렵지만 다른 것들을 두려워했다. 주변으로부터 병이 옮을까 두렵고, 나의 동선이 파헤쳐질까 두렵고, 사회적으로 배척되는 집단이 내 주변에 있을까 두렵고, 내가 배척당할까 두려웠었다. 한낱 미생물 덕분에 인간의 본성이 드러나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인간의 삶은 가식과 위선으로 가득 차 있다.

인간 존재에 대한 의문은 자연에 대한 머리 숙임으로 어느 정도 해결된다. 널찍한 저수지의 광경은 자연 앞에 인간은 한없이 미약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학 저수지는 그만큼 넓고 평온하다.

‘학(鶴) 저수지’는 철원군 동송읍(東松邑)에 있다. 노을이 유난히 아름다워 많은 사람이 출사(出寫)를 오는 장소이다. 근처의 도피안사(到彼岸寺)는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신라 경문왕 5년(865)에 창건한 유서 깊은 고찰이다.

학 저수지의 ‘학’이라는 이름은 인근 금학산(金鶴山)의 모양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금학산은 마치 학이 내려앉은 모양과 닮았는데, 이 때문에 학 저수지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학 저수지는 어린 시절 보았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DMZ 둘레길이 여기저기 갖춰지고 나무 데크(deck)는 저수지를 빙 돌아서 감싸 안듯 펼쳐져 있다. 일몰 풍경은 예전과 그대로이다. 초여름의 파란 하늘과 머릿결을 찰랑이게 하는 시원한 바람은 여전하다. 아무리 인공적인 설치물이 생겨도 변치 않는 자연의 아름다움이다. 가을이면 화사한 연분홍색의 코스모스가 학 저수지 주변에 만발했다. 코스모스는 바람에 리듬이라도 맞추듯 살랑거리며 흔들렸던 모습이 아직 기억에 선하다. 겨울이면 기러기, 두루미, 청둥오리 같은 겨울 철새들의 비상(飛上)이 찬란하다. 학 저수지는 그렇게 철원의 주변에서 철원의 모습을 유유히 지키고 있었다.

니체는 ‘더할 나위 없이 작은 것, 가장 미미한 것, 가장 가벼운 것, 도마뱀의 바스락거림, 한 줄기 미풍, 찰나의 느낌, 순간의 눈빛과 같은 작은 것’들이 우리를 최고의 행복에 이르도록 해 준다고 말하였다. 그 작고 소중한 것들이 이곳 저수지에는 가득 차 있었다.



일몰이 장관이네, 마치 거울에 비치는 것 같다.



중년 남자끼리의 대화답지 않은 말을 시답지 않게 던져보았다.

“그래, 그건 멋진데. 저런 데크(deck)를 만드는 건 사실 별로야. 그냥 우리 어렸을 때처럼 그대로 두는 게 좋은데.”

P는 자연을 원래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냥 두자는 생각이 강한 것 같다.

“둘레길도 그냥 흙길로 해서 길만 내면 되는데 꼭 저런 식으로 만들더라. 그런 것들 때문에 원래 저수지의 멋진 모습이 없어지는 거 같아. 우리 어렸을 때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잖아?”

“그러게, 요즘에 잠깐 와본 사람들은 저수지 원래의 모양이 저런 줄 알겠지.”

“그러니까, 온 나라 저수지가 다 비슷한 풍경이 되다시피 하니까. 다른 곳에 가 봐도 다 저런 모습이야. 어디 저수지인지 둘레길인지 구별도 안 돼.”

P와 나란히 앉아 담소를 나누면서 낚시 삼매경에 빠졌다. 꽤 자주는 아니지만 일 년에 서너 번은 이렇게 함께 한다.

“우리 둘, 모두 가장으로 사는 게 쉽지 않지?”

“그러게, 애들은 셋이나 되는데 이제 대학 갈 나이가 됐으니, 게다가 어머니가 또 편찮으시네!”

어느 나이 때서부터 인지 정확히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우리는 부모님, 자식 걱정만 하는 전형적인 40대 아저씨가 되어있었다. 실상을 보면 우리 자신에 대한 고민이나 생각이 아니라, 대부분이 나를 둘러싼 사람들을 염려하는 이야기뿐이다. 어쩌면 우리는 스스로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만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직장에서 일을 하고 돈을 벌어도 나보다는 가족들의 생계나 학비에 대부분 사용된다. 사실 이렇게 버티고 사는 것도 쉽지 않다. 하지만 어쩔 수도 없다. 어차피 가장(家長)이 살면서 짊어지고 갈 몫이니까. 결국 P와는 초등학교에 있었던 추억을 다시 이야기하게 된다.

“너, 생각나? 우리, 학교 공부 끝나면 여기 저수지에서 빈 병 주워다가 슈퍼마켓에 갖다줬잖아. 그러면 아주머니가 아이스크림으로 바꿔주곤 했지.”

“그래, 그때는 학원이나 그런 것도 없고 할 일이 없으니까 항상 친구들하고 그렇게 놀았었지.”

“요즘 얘들하고는 다르지?”

“요즘 애들이야 휴대폰 게임하고 온갖 학원 다니면서 시간 보내지, 그러고 보면 애들도 불쌍해. 한창 놀 나이에 놀기는커녕 갇혀 있다시피 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하니까.”

“그때는 자전거도 쌀집에서 배달하는 큰 자전거를 타곤 했었는데, 영재 그 친구 그때 자전거 체인에 끼어서 종아리 찢어져서 꿰맸던 일 기억나?”

P는 기억이 떠오른 듯 대꾸했다.

“기억나지, 우리 모두 놀라서 영재 놈을 업고 병원으로 뛰었었지, 그때 너무 무서웠어. 병원에서 기다리면서 모두 울었었잖아.”

우리는 옛 추억에 신나서 아이들처럼 떠들어댔다.

“논 옆에 배수로에서 미꾸라지를 잡아다 양동이에 모아서 식당에 팔기도 했었지!”

“그때는 미꾸라지 천지였는데”

“지금 미꾸라지 구경도 못 하잖아. 다 양식으로 길러서 식당에 파는 것 같은데”

“뭐 미꾸라지뿐이겠냐, 붕어건 피라미건 여기 저수지에도 천지였는데, 지금 붕어 구경할 데가 어디 있겠어?”

“그러게, 세월이 많이 흘렀네? 우리도 이제 꼰대 다 됐다. 젊은 애들한테 이런 얘기 하면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 못 하겠지?”

“빨리 아이들 키우고 조용한 데 가서 살고 싶어. 4, 50대 아저씨들의 로망이잖아. 자연인 나오는 프로그램 봤지? 그게 은근히 보는 사람이 많다잖아. 정말 우리 나이 아저씨들은 다들 그런 생각을 하나 봐.”

“막상 그렇게 사는 게 쉽지는 않은데 그냥 텔레비전으로 보면 재미있더라. 대리만족이겠지”

난 맞장구를 쳐주었다. 사실 나도 그런 생각한 적이 가끔 있었다. 그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채널을 돌리지 않고 한참 동안 본적이 자주 있다.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 아침에 닭과 강아지에게 먹이를 주고 낮에는 산에 올라가 나물이나 칡을 캐고, 가까운 개천에 가서 물고기를 잡고, 밤이면 아무도 없는 고요함 속에 혼자 있는 것. 어쩌면 우리 생애에는 절대 이룰 수 없는 로망이나 버킷리스트일지도 모른다. 많은 수의 우리 세대 사람들은 그것을 동경하고 부러워한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어느새 우리는 복잡하고 시끄러운 삶의 모습과 주변 사람들에 이미 지쳐버렸을 것이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지 탈출에 성공한 자연인을 동경하고 그리워하는 것이다.


한탄강


스테판 클레르제(Stephane Clerget)는 ‘멘탈 뱀파이어(mental baempaieo)’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우리 주변에서 나를 힘들게 하는 존재들에 대하여 설명했다. 뱀파이어(Vampire)처럼 나의 정신을 흡혈하듯 빨아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멘탈 뱀파이어를 알아보는 방법을 이렇게 소개했다.



그 사람 옆에 있으면 기분이 어떤지, 그 사람과 어울리고 난 후, 곧바로 기분이 어떤지 생각해 보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다. 일반적으로 우리의 기분은 그날그날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멘탈 뱀파이어와 함께 있으면 정신적으로든, 감정적으로든 행복하거나 힘이 나거나 충만한 기분이 들지 않는다. 그보다 피곤하고 우울하고 의기소침하고 긴장되고 혼란스럽고 불안하고 탈진된 기분, 나아가 힘이 쫙 빠지는 기분이 든다.


그 말에 철저히 동의했다. 멘탈 뱀파이어는 우리를 만난 후 에너지를 얻고 기분 좋게 돌아가겠지만, 정작 우리는 바짝 말라버린 빨래처럼 너덜너덜해져 버린다. 아무리 귀를 꽉 막아도 어렴풋하게 조그마한 소리는 들리고, 코를 아플 정도로 틀어막아도 완전히 냄새를 맡지 않을 수는 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문제는 안 좋은 소리와 안 좋은 냄새를 풍기는 사람이 주변에 내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로 인해 내 마음은 계속해서 상처 입는다.

심리적으로 고통스러운 일을 당하면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라고 표현한다. 겉으로 피가 나고 생채기가 생기지 않더라도, 몸이 다친 것처럼 마음도 아프다는 의미이다. ‘가슴에 멍이 든다’, ‘가슴이 쓰라리다’, ‘마음이 찢어진다’, ‘뼛속까지 저리다’ 등 마음이 힘겨운 걸 몸의 고통처럼 표현하는 말들이 많다.

은유적 표현 같아 보이지만, 이는 근거 없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실제로 뇌에서는 몸의 통증과 마음의 통증을 같은 자극으로 받아들인다. 특히 사람에게 상처받았을 때 그렇다. 거절이나 따돌림, 실연, 사별 등 대인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비록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우리 뇌에서는 마음이 붓고, 피 나고, 멍든 걸로 여긴다고 한다. 멘탈 뱀파이어와는 한시라도 빨리 관계를 멀리하는 것이 상책이다.


‘미운 정도 정이다’라는 말을 이유도 없이 믿고 나와 맞지도 않은 사람을 힘겹게 끌어안을 애썼던 지난 세월이다. 이게 맞는 관계인가라는 고민이 들 때마저 한때 그 사람과의 즐거웠던 순간, 외형적으로 나를 위해준다는 착각의 순간들을 생각하며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참는다고 생각하며 그 관계를 지켜냈었다. 그렇지만 이제야 느낀 것은,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을 잃지 않으려 애쓸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나와 맞지 않다고 판단이 선 관계는 빨리 끊어버리는 것이 상책이다. 나와 맞는 사람, 나와 결이 같은 사람만 지키며 살아도 충분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차피 나와 오래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은 결이 같고,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다. 관계의 필터링은 빠를수록, 그리고 최대한 섬세한 틈으로 만들어진 필터일수록 좋다.


동년배 친구와의 대화는 언제나 편하다. ‘공감’은 서로의 마음을 전하지 않고 눈빛만 보아도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준다. 같은 시공간에 함께 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리는 서로를 공감하기에 충분했다. 덧붙여 희로애락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함께했다는 사실은 그 친밀감과 공감의 깊이를 더욱 배가시킨다.

내 주변에 공감해 주는 사람이 단 한 명씩이라도 있으면 이 세상의 정신병원은 모두 문을 닫을 것이라 했다. 누군가 나의 마음을 알아주고 경청해 주고 이해해 준다는 것, 특히 요즘과 같은 세상에 가장 중요하면서도 필요한 일이다.


2018년 방영되었던 어떤 드라마의 명대사이다.


죽고 싶은 와중에, 죽지 마라. 당신 괜찮은 사람이다. 파이팅해라. 그렇게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숨이 쉬어져. 고맙다. 옆에 있어 줘서

공감은 삶을 끈을 끊으려 생각하는 사람을 멈추게 하고 숨이 막혀가는 사람에게 다시 숨을 불어 넣기도 한다. ‘파이팅’이라는, 어찌 보면 우리가 운동경기를 할 때, 특별한 의미 없이 서로 함께하자는 말 한마디가 어떤 사람에게는 크나큰 힘이 된다.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죽음을 스스로 선택 한 사람을 설득할 명분은 없지만, 그래도 한번은 다시 그 선택에 대해 유예하거나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이 들도록 한다. ‘난 정말 괜찮은 사람인가?’ 이런 의문 말이다.


학 저수지 주변 일몰


난 대뜸 물었다.

“우리 초등학교 때 ‘영희’라는 여학생 기억나?”

P는 잠시 놀란 듯이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너, 영희를 아직도 기억하는구나.”

친구는 저수지 반대편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약간 머뭇거리다 이야기를 이어갔다.

“몇 년 전에 초등학교 동창회 자리에서 그 친구 이야기가 나왔어. 스물 몇 살 때인가? 벌써 죽었다고 하네.”

초등학교 시절 우리 반에는 ’영희‘라는 여학생이 있었다. 전학을 갔던 첫날 본 그 여학생의 모습에 놀랐던 기억이 났다. 남학생들 거의 모두가 영희를 놀려대고 안 보이는 데에서 별명을 부르거나 욕을 했다. 꾀죄죄한 옷에 빗지 않아 헝클어져 있는 머리카락, 낡아서 거의 다 헤진 신발, 얼굴 여기저기에 가득한 주근깨.

여학생에게 그렇게 심하게 놀리는 장면을 처음 보아서인지 사실 조금은 놀랐다. 그리고 그 친구가 가엾어 보였다.

“안 그래도 영희, 그 친구 이야기가 나왔었어. 그 모임에 있었던 거의 모두가 그 친구를 심하게 놀렸었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우리 모두 숙연해졌어. 후회도 많이 되고. 철없는 어린 나이였지만 우리가 그 친구에게 왜 그랬을까? 하는 자책 아닌 자책도 많이 하고. 하여간 그날 모임은 좀 다운되는 분위기였어.”

“그랬구나, 그럴 만도 하지.”

P는 또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조금은 기운 없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버지는 영희랑 영희 엄마를 두고 어딘가로 도망가 버렸고. 영희 엄마가 남의 집 밭일을 해서 영희랑 동생을 겨우 학교에 보내고 있었다고 하더라. 게다가 영희 엄마도 몸이 성치 않았다고 하던데…….”

“그래? 뭐 어렸을 때니 너희들도 잘 몰랐겠지. 그런데 나도 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다 보니까 그 생각이 가끔 나긴 하더라. 그래서 그렇게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는 많이 챙겨줬어. 괴롭히는 놈들은 많이 혼도 내고 타이르기도 했고. 그래서 지금 물어본 거야.”

잠시 이야기가 멈췄다. 부드럽고 따스한 봄바람이 저수지 주변 갈대들을 춤추게 했다.

“지금도 그 친구 생각하면 마음이 좋지 않아. 무슨 죄라도 지은 것처럼”

P는 아직도 죄책감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사실 P는 그 친구(영희)를 놀리거나 괴롭히지 않았다. 지금 이런 생각하는 것 자체가 착하다. 자신이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하여, 다른 친구들을 말리지 못한 일조차도 자기의 잘못처럼 여긴다. P는 그런 친구다.

낚시하는 필자

옛 친구를 만나고 온 밤은 특히나 풀냄새가 많이 그리워진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많이 나눠서일 것이다. 옛날, 이맘때쯤이면 조그만 실개천 옆에 있던 우리 집 주변 풀숲에서는 온갖 향기로운 냄새가 피어올랐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우연히 밖으로 나와 홀로 평평한 바위 위에 걸터앉아 있노라면 귀뚜라미 울음소리, 소쩍새 소리 등이 마치 경쟁이라도 하는 것처럼 들려왔다. 그리고 정겨운 시골집에서의 밥 짓는 연기 내음, 싱그러운 풀 냄새…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캄캄해진 숲에서 파란 불덩이가 폭죽처럼 솟아올랐다.


그것은 ‘반딧불이’였다. 동네 친구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모여든다. 어두워서 보이지도 않은 길을 반딧불이의 불빛만 보고 위험천만하게 뛰어갔다. 조그맣고 파란 불을 바라보며 어디까지라도 좋다는 식으로 위험을 감수한 채 뛰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미끄러지고는 상관이 없었다. 무릎이 깨져서 피가 나지만 아프지도 않았다.

아이들은 자신이 잡은 반딧불이를 꺼내서 모아본다. 하지만 그것은 찬란하게 빛나던 푸른빛이 아닌 상처 입고, 부러지고 꺾여서 원래의 모습을 잃은 초라한 벌레였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지 않아 죽어버렸고 그 빛 또한 순식간에 사라졌다. 빛을 잃은 ‘반딧불이’는 한낱 불쌍한 벌레일 뿐이었다.


인생이란 게 그런 걸까? 무언가 좋게 보이는 것(부귀, 영화, 재산, 지위 등)들이 어두운 곳에서 보면 찬란하지만, 막상 그것을 잡으려다 보면 상처를 주게 되고 해가 뜨면 순식간에 사라지는 환상에 지나지 않는 것…



사진: choon

#학 저수지 #반딧불이 #친구 #멘탈 뱀파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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