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화상 Dec 14. 2024

07. 「소이산(所伊山)」에 올라

금단의 땅, 그 속살을 내어주다!

인간은 땅속에 지뢰를 묻어놓고 무서워 벌벌 떨며 그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그러나 자연은 전혀 두려움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지뢰밭을 점령해 버렸다.


「소이산」을 두고 누군가가 했던 말이다.


소이산(所伊山)은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사요리(四要里)에 위치하는 해발 362m의 낮은 산이다. 노동당사(勞動黨舍) 바로 앞에 있다. 철원(鐵原)은 우리말로 ‘쇠둘레’라 하며 해방 당시부터 6.25전쟁 때까지 북한 땅이었다. 접경지대의 주민들이 늘 그러하듯이 자신들의 이념에 대하여 동조와 선택을 강요받았고 그 결과물로 수많은 생명이 죄없이 죽어갔다. 수많은 희생을 대가로 지켜낸 슬픔의 땅, 바로 이곳 철원이며 그 중심에 소이산이 60여 년을 무덤덤하게 자리했다. 그리고 최근에 와서야 오랜 금단(禁斷)의 시간을 풀고 우리에게 그 속살을 조심스레 내밀었다.


소이산을 방문한 것은 겨울답지 않게 따스했던 1월의 어느 맑은 날이었다. 철원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쓰는 중에 연천 인근에 살고 있는 친구 P를 길잡이 삼아 방문하였다. 친구는 특전사 공수부대 출신이고 필자의 부친은 베트남전 참전용사로 국가유공자이다. 지금은 국립서울현충원에 계시다. 나름 우리는 요즘 말로 국뽕(?)에 가득 차 있었다. 즉, 우리나라의 안보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는 세대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철원의 흙 한 더미,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가 그냥 허투루 보일 리가 없다. 비장한 표정으로 철원과 소이산 인근을 야심 차게 둘러보게 되었다.

양주군이나 파주 인근에서 출발하는 경우 전곡읍-연천읍을 지나 대광리역, 신탄리역의 경원선과 나란히 이어지는 3번 국도를 이용하면 된다. 차량의 통행이 적은 편이라 주말에도 막힘없이 이용할 수 있다. 백마고지역 부근에 오면 좌측에 정춘근 시인(詩人)의 시집(詩集) 제목인 「지뢰꽃 마을, 대마리」 의 배경이 된 철원읍 대마리(大馬里)가 보인다. 대마사거리에서 87번 국도를 이용, 우측으로 조금 더 가다 보면 제2땅굴과 철원평화전망대를 방문할 수 있는 표지판이 보인다. 물론 예약해야만 입장이 가능하다. 월정리역과 함께 안보 관광 코스로 묶어서 이용할 수 있다.



노동당사는 해방 이후 이 지역을 관할하던 곳이다. 많은 수의 사람이 이곳에서 고문과 학살을 당했던 장소이다. 국가 등록문화재 제2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의 '발해를 꿈꾸며' 뮤직비디오가 촬영되었다. 현재는 보수공사 중이라 커다란 가림막으로 가려져 있다. 2024년 11월에 공사가 완료될 예정이다.

노동당사 앞의 ‘철원 역사문화공원’에는 옛 철원의 모습들이 세밀하게 재연되어 있다. 필자가 2008년 방문했을 때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이곳 노동당사 앞은 자그마한 주차장만 있고 건물은 잘 보존되어 있었다. 지금은 시설물들이 여기저기 설치되어 노동당사가 한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다른 건물 속에 그냥 묻혀있는 느낌이다. 그 당시 ‘철원 역사문화공원’이 있던 자리는 그냥 논밭이나 빈 벌판이었다. 지역 문화 유산에 대한 개발이 필요한지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듯하다. 많은 사람이 방문하도록 개발하여 해당 문화유산을 최대한 알리며 지역의 발전을 함께 도모할 것인지, 아니면 보존에 더 신경을 써야 할지에 대한 고민과 타협이 필요할 것 같다.


노동당사 인근 바닥에는 정춘근의 ‘6시에서 12시 사이’라는 시(詩)가 보였다.


한반도는 지금 몇 시인가?

남한의 모든 총과 대포는 12시 방향으로 맞추어져 있고    

 북한은 6시로 고정되어 있다.


철원 출신인 정춘근 시인(詩人)의 대표작은 ‘지뢰꽃’이라는 시(詩)였다. 인간이 서로에 대한 살상을 위해 만든 지뢰를 꽃으로 비유하다니 참 아이러니하면서도 묘한 슬픔이 느껴졌다.


지천으로 흔한

지뢰를 지긋이 밟고

제 이념에 맞는 얼굴로 피고 지는

이름 없는 꽃

...(중략)

저 꽃의 씨앗들은

어떤 지뢰 위에서

뿌리 내리고

가시철망에 찢긴 가슴으로

꽃을 피워야 하는 걸까

     

정춘근, ‘지뢰꽃’ 中  –실천시집선 『지뢰꽃』 2023.


지뢰의 뇌관을 통해 이 소이산의 흙에 씨앗들이 뿌리를 내리고 널찍한 담벼락이 아닌 가시철망에 꽃을 피운다고 말한다. 지뢰가 많은 것을 그냥 예쁜 꽃들이 핀 모습으로 비유한 줄만 알았는데 훨씬 더 큰 아픔과 비극을 표현하였음을 알게 되었다. 시시각각 이념의 선택이라는 카드를 집어야만 했던 그 당시 철원 주민의 삶은 어땠을까? 물론 선택의 결과는 자신의 하나뿐인 목숨을 담보로 했을 터이다.

공원의 가장 안쪽으로 가면 철원역이 있다. 그곳에서 소이산을 오르는 모노레일을 탈 수 있다. 날씨가 춥고 눈이 내려 걷기가 힘든 까닭에 모노레일을 타고 소이산 정상으로 올랐다. 군데군데 새집을 인공적으로 지어 둔 것이 보였다. 나름 생태 보전에 신경을 쓴 모습이다. 모노레일을 만들어 새들이 쉴 보금자리를 빼앗은 것에 대한 미안함으로 여겨졌다.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은 3개의 코스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지뢰지대를 오른쪽에 두고 왼편으로 소이산 자락을 끼는 1.3km의 ‘지뢰꽃길’이 있다. 그 이름만큼이나 이념 또한 함께한다. 전쟁과 평화, 삶과 죽음, 이념의 양 갈래가 지뢰와 꽃이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두 개의 단어를 합성하여 그 의미를 더해주고 있다.

이 ‘지뢰꽃길’은 두 번째 길인 ‘생태숲길’로 이어지고 마지막 구간은 소이산 정상으로 향하는 ‘봉수대 오름길’이 자리하고 있다. 모노레일에서 내리면 미군 막사를 지나 소이산 정상인 ‘평화마루공원’에 이른다. 주변에 벙커가 아직 그대로 남아있다. 제아무리 평화의 길이 어쩌고 한들 전쟁의 흔적을 지울 수는 없다. 당장이라도 천지가 흔들리고 굉음이 난무하는 공중 포격이 시작될 듯하다.

앞서 잠시 언급했지만, 소이산이 개방되기 시작한 것은 2008년의 일이다. 약 4년 동안 계속된 철원군의 노력으로 60년간 금단의 땅으로 머물렀던 소이산이 일반인들에게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야트막한 산의 정상이지만 높은 산 못지않게 전망이 너무 좋다. 드넓은 철원평야가 나지막하게 자리해서인지 몰라도 시야를 가리는 장애물이 하나도 없다. 안내판에 의하면, 멀리 북녘의 오리산과 평강고원, 백마고지, 아이스크림 고지가 희미하게 보인다.


소이산 정상에서 바라본 철원평야


철의 삼각지대가 한눈에 보이는 이곳은 누가 봐도 지리적 요충지이다. 우측의 남쪽으로 노동당사 건물과 철원 읍내가 보인다. 이렇게 소이산은 반백 년 동안 소중하게 간직했던 모습을 이제야 우리에게 힘겹게 건네주었다. 소이산에서 바라본 철원평야는 여느 지상에서는 보기 힘든 너른 대지의 모습이다. 볼록볼록 튀어나온 듯한 이름 모를 고지들은 전쟁의 상흔 때문인지 몰라도 검붉은색이 감도는 듯한 착각을 하게 만들었다. 수없이 죽어간 넋들이 모여서 뭉쳐진 것처럼, 고지 위쪽에는 커다란 먹구름이 유유히 떠다닌다. 억겁의 시간 동안 용암이 빚은 대지, 그 위에 어려있는 슬픈 역사의 흔적들……

안보 체험은 이미 나이 지긋한 노인들의 프로그램이라 생각하기 쉽다. 실제로 필자가 다녀본 연천, 철원의 관광지에는 학생들은 거의 없으며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모습을 보았다. 실제로 안보 관광을 해야 할 사람은 젊고 어린 우리의 후손들이다. 필자의 초임 교사 시절이던 1990년대만 하더라도 철원, 연천 지역의 여러 전적지나 전망대, 땅굴 등으로 현장 체험학습을 심심치 않게 간 기억이 난다. 하지만 최근에는 공예, 목공, 역사 체험이나 아니면 아예 놀이공원 등으로 체험학습을 자주 가는 편이다. 안보 체험은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이념적이라는 비판을 받기 십상이다. 오히려 젊은 학부모들한테 시대에 어긋나는 행사나 한다고 민원 세례나 받을 것이다.


전쟁이 무엇인지, 왜 호국영령이 그렇게 젊은 나이에 그렇게 죽어갔는지 이곳에 와서 직접 눈으로 보며 한 번이라도 생각을 해보도록 해야 할 것이다. PC게임으로 총을 쏘는 아이들은 자칫 자신이 총에 맞더라도 몇 번이고 다시 살아난다는 착각을 하지는 않을까? 그리고 우리나라가 아직 분단된 국가이고 언제 또 전쟁이 발생할지 모르는 급박한 상태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을까? 3년, 아니 그 이상의 많은 시간 동안 전쟁과 대립의 역사를 견뎌왔고 그 대가로 수많은 사람이 희생당했으며, 지금도 70년이 넘는 동안 여전히 분단 되어 있는 조국의 모습을 자신들의 눈으로 직접 보고 귀로 들어야 믿지 않을까?

하루 동안의 짧은 여정은 아쉬움을 남긴다. 경기 이북 지역이라 그런지 해가 빨리 져버린다. 철원을 자주 오는 편은 아니지만 올 때마다 그 아쉬움을 뒤로했던 기억이 있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 철원도, 나 자신도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 있었다.


일반적인 관광명소는 눈으로 보거나 일정 시간 그 속에서 머물면 어느 정도 이해되고 기억에도 남게 된다. 하지만 철원지역은 그 이상의 무엇이 있었다. 단순히 걸음을 옮기고 사진을 찍고 맛있는 음식을 먹어서는 해결할 수 없는 ‘울림’이 있다. 그 울림을 우리 자식들과 후손들에게 안겨주어야 할 것이다. 자칫하면 철원의 중요한 안보 유적들이 한낱 인터넷 유튜브에서 소개하는 갈만한 곳, 맛집 정도만으로 그 가치가 훼손될지 우려된다. 출발할 때의 비장했던 마음가짐과 달리 오늘의 철원 여행도 근심과 염려만 한 줌 안고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사진: choon

#소이산 #철원 #안보 #전쟁 #노동당사 #지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