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의 한 이면도로(裏面道路) 오른편에 조그만 우체국, 아니 우편취급소가 하나 있고 바로 옆에는 오래된 문구점이 있다. 고층 아파트 건물들 사이의 좁디좁은 길목에 자리하다 보니, 이곳에 오래 거주한 주민이 아니고는 잘 모를 만큼 눈에 뜨이지 않는다.
우편취급소 출입문 앞의 좁은 공간에는 빨간 우체통이 새초롬하게 서 있고 그 위편에는 우체국을 상징하는 새 모양의 마크가 매달려 있다. 유년 시절 전국적으로 유행하던 우표수집에 한창 빠져있을 무렵에 우체국에서 자주 보았던 그림이라 그리 낯설지는 않다. 새벽부터 우체국 앞에 줄을 서서 그날 발행되는 기념우표를 사곤 했다.
이 동네에 자리 잡은 지도 벌써 25년이 다 되어간다. 우체국과 문구점은 이사 올 때부터 지금과 같은 장소에 있었다. 출근할 때 반드시 지나야 하는 일방통행로에 있어서 거의 매일 우체국과 문구점을 동시에 지나가야만 했다. 그렇게 이십 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아무 생각 없이 이곳들을 무심하게 지켜보며 살아왔다.
여름이 자리를 내어 주기 싫은 듯 늦더위가 한창이던 금요일, 오후부터 가을을 독촉이라도 하듯이 가랑비가 달궈진 아스팔트를 적셔주었다. 오랜만에 택배 부칠 것이 있어 우산을 받쳐 들고 생각 없이 우체국으로 향했다. 문구점 앞을 지나려 하는 데, 닫힌 철문 앞에 커다란 종이가 붙어 있었고 제법 빼곡하게 무언가 글씨가 적혀 있었다. 당연히 눈길이 향했다.
영업종료 실제 안내문
‘개인 사정으로 부득이하게 문구점을 닫게 되었고 손님들에게 미안하다.’
문구점 주인의 손 글씨 안내문이었다. 아무 공지 없이 문을 닫아버리거나 간단히 폐업한다는 몇 글자의 글씨 정도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터이다. 그런데 이렇게 감성 어린 글을 길게, 직접 쓴 모습이 나를 ‘단상(斷想)’에 잠시 빠져들게 했다.
문구점 앞길은 초등학생들이 등교하는 중요한 길목이다. 학생들이 우르르 등교하는 시간에 자동차들도 함께 다녀 위험한 경우가 많았다. 문구점 주인아저씨는 매일 아침 학생들의 등교 시간에 맞춰 교통 정리를 해 주셨다. 골목길에서 차가 갑자기 나오지 않도록 깃발과 수신호로 알려주었고 학생들과도 반가운 인사로 맞이해 주셨다. 참 열심히도 하시던 기억이 난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니고 그 어떤 사례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아이들도, 나도 문구점 아저씨의 도움으로 안전하게 사고 없이 위험한 길로 다닐 수 있었다.
어릴 적 문구점에 대한 추억은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아침 등교 시간만 되면 학교 앞 문구점은 학생들로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었다. 몇몇 준비성 있는 학생들은 전날 미리 준비물을 사두곤 했는데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거의 모든 학생이 아침이면 준비물 사기 경쟁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학교에서 준비물을 나누어주지 않았던 시절, 학교생활은 문구점에서 시작하고 문구점에서 마쳤다고 하면 과장일까? 등교 시간뿐만 아니라 하교 시간에도 문구점에서 군것질, 뽑기(놀이)를 하거나 조그만 의자에 쪼그려 앉아 미니 전자 오락게임을 하느라 집에 가는 것도 까맣게 잊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필자의 초등학교 시절, 학교 앞 문구점에서 연탄불에 구워 먹던 쫀드기의 맛과 냄새가 아직도 기억난다. 아침에 어머니에게 받은 용돈 오백 원으로 친구들에게 뜻하지 않던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내성적인 나에게 시큰둥하게 대하던 친구들이 갑자기 내 이름을 다정히 부르고 자기 집에 놀러 가자고 손을 끌기도 하였다. 그만큼 문구점은 아이들끼리 마음의 거리를 좁혀주는 역할을 했다. 2000년대 이후 초등학교에서는 ‘학습 준비물’이라는 이름으로 당시 문구점의 인기 판매 물품이던 도화지, 가위, 풀, 크레파스, 수채물감 등을 모두 제공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문구점은 쇠퇴하였고 이젠 아이들에게 딱히 필요하지 않은 장소가 되어 버렸다.
이제, 문구점이 있던 자리 바로 옆에는 우리 동네의 유일한 빨간 우체통이 힘겹게 그 모습을 지키게 되었다. 우체통과 문구점! 현재에 차츰 사라져가는 대표적인 것들이다. 더 이상 필요가 없어져 사람들이 이용하지 않는 것들, 그렇다고 지켜야 한다고 무작정 우길 수도 없는 것들, 그리고 없어진다고 해서 그다지 불편하지도 않은 것들…….
차츰 사라져가는 추억의 장소를 예전 문방구에서 팔았던 20색 수채물감으로 진하게 덧칠해 되살리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결혼해서 아들, 딸을 데리고 올 때까지 문구점을 지켜 달라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해’
라는 문구점 아저씨의 매직펜으로 쓴 진심 어린 글이 그 두껍고 짙은 글 줄기처럼 가슴에 남는다. 요즘 아이들도 우리들의 어렸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인공지능이 일상화된 최첨단의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이 문구점 아저씨와 저토록 낭만적인 약속을 하고 있었다니……. 조용히 혼자 웃음 지어 본다.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이렇게 내 주위의 무언가가 하나둘씩 사라져가는 과정이 아닐까? 가을 장맛비의 올망졸망한 소리가 오늘따라 크게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참고로 난 아직도 문구점을 ‘문방구’로 부른다. ‘치킨’을 ‘통닭’이라 부르는 내 후배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