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계속 어떤 이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누군가를 찾기 위해서 낯선 집에 들어가 이름을 아는지 묻고, 또 혹시 이사라도 한 것은 아닌지, 그 사람의 연락처를 알 수는 있는지를 계속 묻고 있었다.
난 초등학교 6학년의 어린아이였다.
찾는 사람도 어느 초등학생이었다. 그 사람을 찾는 이유조차 모르지만, 반드시 찾아야겠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왜 그 사람을 그토록 찾으려고 했을까?
8월의 태양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이른 더위가 기승을 떨던 5월의 어느 날, 학교 근무에다 대학원 야간수업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시원스레 펼쳐져 있는 한강의 풍경을 바라보며 푸르른 신록의 향기에 잠시 도취 되어 귀가하던 날이었다. 집에 오자마자 언제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게 잠에 빠져들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꿈을 꾸었고, 그 꿈에서 누군가를 계속 찾아 헤매어야 했다.
그 시절, 정말 많이도 전학을 다녔다. 초등학교 6학년 동안 8번이나 학교를 옮겨 다녔다. 아버지의 직업상 여러 곳을 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견뎠는지 신기할 정도지만 당시에는 그저 무덤덤하게 부모님을 따라다닌 것 같다. 한 곳에서 친구들과 조금 친해 질만 하면 작별 인사를 해야만 했고, 또 다른 곳에서 적응할 만하면 어김없이 또 이별해야만 했다. 이런 나에게 친구의 소중함과 결코 잊지 못할 추억을 안겨 준 곳이 있다.
그곳은 경기도 연천군(漣川郡)의 한 작은 마을이었다. 꿈에서 그곳의 친구들을 찾아다닌 것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에서 6학년 1학기 동안, 약 1년 8개월 정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때의 친구들과 선생님, 자그마한 마을, 그곳에서 겪었던 장면들이 아련하게 기억 속에 피어난다.
그전까지 나는 학급에서 그냥 ‘있으나 마나’한 아이였다. 공부를 뛰어나게 해서 담임 선생님의 주목을 받은 것도 아니었고, 운동을 잘해서 학급 여학생들의 관심과 남학생들의 부러움을 산 것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그냥 ‘있는 둥, 없는 둥’ 한 아이였다. 하지만 연천의 초등학교로 전학을 온 후, 내 모습은 완전히 달라졌다. 서울에서 와서인지는 몰라도 친구들은 나에게 관심을 가졌고, 선생님께서도 호의적이었다. 자연스레 학교 가는 일이 즐거웠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렸다. 수업이 끝나면 집에 오기 싫어서 운동장에 남아 해가 떨어질 때까지 놀기도 하였다.
여학생들과는 말 한마디 할 수 없을 만큼 내성적이던 내 모습은 나도 모르게 변해갔다. 학급에서 임원이 되었고 친구들과 어울려서 학급신문을 만들거나 담임 선생님의 일도 도와드릴 수 있었다. 좋아하는 마음을 품었던 같은 반 여학생도 생기게 되었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그곳의 좁은 길, 자그마한 마당, 오래된 문방구와 상점 앞을 지날 때면 기억상실에 걸린 사람이 갑자기 지난 일을 떠올리는 것처럼, 그 장면이 머릿속을 감싸면서 스쳐 간다.
초등학교 시절 이후, 연천(漣川)과 다시 인연을 맺은 것은 대학 4학년 때였다. 가장 절친했던 친구가 연천군(漣川郡) 전곡읍(全谷邑) 인근의 군부대로 자대배치를 받게 되었다. 그 순간 ‘참! 전곡은 나와 많은 인연이 있구나!’라 생각했다.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친구의 부대로 면회를 가게 되었다. 하필 이 친구는 유행성 출혈열(한타바이러스, Hantavirus)에 감염되었고 치료를 마친 상태였다. 면회를 마치고 전곡 읍내에서 옛 친구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린 시절 혼자 마음에 두었던 여학생을 10여 년 만에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같은 반 여학생을 혼자 좋아했던 추억은 많은 사람이 지니고 있을 것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른이 되어서 다시 만난 그 여학생은 변함없이 어여뻤고 여전히 다정한 말투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수많은 별이 하늘을 가득 메운 그날 밤, 우리는 학창 시절에 함께 했던 이야기를 나누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나란히 걷다 보니, 전곡리 선사유적지를 지나 한탄강 유원지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곳의 자그마한 나무 벤치에서 함께 한 시간이 아직도 기억난다. 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의 ‘별’이 떠올랐다.
-저 숱한 별 들 중에 가장 가냘프고 가장 빛나는 별님 하나가 그만 길을 잃고 내 어깨에 내려앉아 고이 잠들어 있노라고……
한탄강, 여름밤의 별들은 총총히 빛나고 있었고 그 여학생은 나지막하게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미소 띤 얼굴로 그 사람의 이야기를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한탄강 변에서
초등학교 시절의 추억이 너무 아련하고 애절하여 직업을 선택하는 데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만큼 그때의 추억은 소중했다. 살면서 힘든 일이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면 어김없이 그곳을 찾아가곤 한다. 등하굣길에 오가던 좁은 도로, 친구들과 함께 물놀이하던 차탄천(車灘川)을 바라보며 홀로 상념에 젖곤 한다. 그럴 때마다 힘든 일들은 잠시라도 잊고서 그 시절로 돌아가 즐겁게 이야기하며 뛰어놀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난 지치고 힘들 때 가끔 꿈을 꾸곤 한다. 그렇게 어릴 적 친구들을 찾아 헤매는 꿈을…… .
내 인생에서 딱 한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아무런 고민 없이 바로 선택할 수 있는 시간, 그곳(연천군 전곡읍)에서의 어린 시절은 나에게 ‘결코 잊지 못할 추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