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여름이, 습하고 숨 막히던 괴로움이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뜨거운 여름이 지나간다. 덥고 습한 공기 때문에 숨이 턱턱 막히고 여름이 빨리 지나 시원한 날을 기다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시간은 누구보다 부지런히 움직여 결국은 마지막이 오게 한다.
발갛고 노랗게 물든 식물들과 시원한 공기와 하늘이 가을을 알린다. 낮이 따듯하고 저녁이 추운 일교차가 큰 날이 계속되면, 식물들은 수채화처럼 천천히 아름다운 색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이는 식물들이 가지고 있는 초록색의 색소 아래 숨어있던 색들이 일교차에 의해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원리인데, 나는 오로지 이 짧은 찰나에 볼 수 있는 단풍을 참 좋아한다. 이는 유명한 산지나, 가로수의 나무들 뿐만 아니라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식물들이 겪는 현상이며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선인장과의 다육이들도 가을에는 아름다운 색으로 물들어 간다.
식물을 키우다 보면 가장 예민해지는 감각이 날씨와 계절이다. 일어나자마자 날씨 어플에서 오늘의 최저 온도, 최고 온도 그리고 습도와 강수확률과 강수량을 확인하다. 온도가 너무 높거나, 습도가 높은 폭염에는 더위에 취약한 식물들을 그늘로 옮겨줘야 하고, 뜨거운 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여름비가 오는 날에는 혹여라도 빗물이 뿌리까지 닿지 않을까 확인하며, 강수량에 따라 물을 또 줘야 하는지 확인한다. 이렇게 여름을 보내고 가을이 올 때쯤이면 최저온도와 최고온도가 하루하루 바뀌는 것에 촉각을 곤두 세운다. 이렇게 가을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나는 나에게만 오는 것 같은 힘듦을 가끔 이렇게 바뀌는 계절에 비교한다. 고통은 계절과 같아서 막상 한 여름을 겪을 때나, 한 겨울을 겪을 때에는 마치 그 계절 안에서 갇힌 것만 같다. 절대 이 여름은 지나지 않을 것 같고, 매일매일이 덥고 힘이 든다. 한 겨울 한파 속에서는 춥고 어두운 날 속에 갇혀 절대 밖에 나가고 싶지도, 이불속에 움츠리고만 싶다. 나가는 것이 어느 때보다 두렵다.
이렇게 계절이 변하며 따스한 봄이나, 청량하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 오면, 마치 새로운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아쉽고 슬프게도 이러한 행복은 그 어느 날보다 짧다. 마치 다 느껴보지도 못한 것 같은데, 벌써 폭염이나 한파가 눈앞에 다가와 나를 다시 어둠으로 끌고 간다.
계절과 비슷한 나의 고통은 길었고, 행복은 짧았다. 식물과 함께 바뀌는 계절에게 배운 점은, 고통과 괴로움은 결국 끝이 난다는 점이다.
한풀 꺾인 여름의 시간이 지나 자연스레 가을이 오듯, 나의 괴로웠던 시간과 함께 떠나 이제는 시원한 가을의 문턱에서 지난여름의 고통을 별거 아닌 것처럼 쳐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