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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적작가 Aug 10. 2024

day10. 잘 버틴 내게 맥주 한 캔 선물한다

미친 몸무게라 복싱 시작합니다:1


복싱 일지: 24.08.09. 금


캬-아. 이 맛이지. 월화수목금. 꽉꽉 채워서 운동을 나간 나를 위해 주는 선물로 맥주 한 캔 만한 게 없다. 불닭볶음면의 유혹을 떨쳐버리고 닭가슴살을 안주삼아 먹는 맥주는 행복이다. 아주 찐한 행복. 목으로 꿀꺽꿀꺽 넘어가는 톡톡 쏘는 맥주를 마신다. 나무젓가락으로 적당히 따뜻한 닭가슴살을 잘라 한 입에 쏙 하고 넣어서 먹는다. 그 맛이 행복이 아니라면 무엇이 행복일까.


크~~~  지금도 생각난다. 행복이~~


금요일은 월요일부터 쌓인 근육통과 갑자기 나타난 다른 통증들로 힘들었다. 특히 목요일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던 오른쪽 골반 통증으로 비상등이 켜졌다. 정확히는 골반과 고관절 주변 근육이다. 크로스(Cross, 또는 투) 펀치를 하기 위해서는 까치발을 하고 있는 오른발에 힘을 주면서 골반과 몸통을 회전시켜야 한다. 문제는 내 골반이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운동 전에 골반 스트레칭을 열심히 했지만 이것만으로 골반 근육의 유연함이 바로 돌아오지는 않는다. 결국 골반 주변 근육에 통증이 생겨버렸다. 골반 회전뿐만이 아니라 걸을 때도 통증으로 불편해졌다. 그래서 금요일 링 위에서 하는 미트 연습은 망했다.



역시 1 세트는 몸이 풀리지 않아 어리바리였다. 물론 좀 더 심한 어리바리긴 했다. 그런데 2 세트까지 풀리지 않았다. 다리는 움직이지 않지 주먹은 휙휙 휘어지지. 박자는 자꾸 놓치지. 으이그. 민망하여라. 정신을 차리기 위해 글러브를 낀 주먹으로 내 얼굴을 툭툭 쳤다. 가볍게 제자리 뛰기도 하고 어깨에 힘도 빼보았다. 마치 복싱선수들이 정신통일을 위해 자신의 얼굴을 툭툭 치듯이. 스텝을 밟으며 어깨의 긴장을 풀듯이. 흠, 본 건 있으니깐. 링 위에서 멋있는 펀치를 날리기 위해서는 하체가 단단히 버텨주어야 한다. 버텨주는 다리, 무릎, 골반, 코어가 있어야지 원투 펀치가 거침없이 나갈 수 있다. 복싱의 멋을 얻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내 몸은 버텨주지 못하고 있다. 버티기는커녕 쪼그라들고 있다. 안타깝게도. 인생 참 버티기가 왜 이리 힘든지.


링 위에서 버티기란 쉽지 않다.



링 위해서 미트 운동을 하면서 골반 근육이 조금씩 부드러워졌지만 여전히 불편함이 있었다. 혼자였다면 운동이고 뭐고 그냥 끝냈을 것이다. 버티긴 뭘 버텨. 그러다 탈 난다. 유혹의 손길은 항상 달콤하니깐. 분명 홀라당 넘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내 앞에 관장님이 있다. 하얀색 미트를 두 손에 끼고 말이다. 빠르게 돌아가는 머리. 마지막 3세트다. 시간도 거의 끝나간다. 골반 근육 통증은 상태가 나쁘지는 않다. 오늘 마음에 드는 펀치 소리가 많이 나오지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해. 마지막으로 팍 하고 눈에 힘을 준다. 날카로운 눈빛은 복싱에서 생명이니깐. 어깨에 힘을 빼고 가드를 올린다. 원투-원투-쨉쨉투-원투-투. 체력이 뚝뚝 떨어져 가는 나를 위해 관장님이 마구 달려주신다. 마지막으로 불태우라고 말이다. 이렇게 감사할 수가 없다. 삑-. 운동이 끝나는 소리와 함께 괴성을 지르며 링 위에서 누워버렸다. 헉헉거리며 떼구르 굴러서 링 밖으로 내려왔다.



얼굴에 땀이 흐르고 열기가 확 올라왔다. 골반은 욱신거렸다. 여전히 숨은 거칠었다. 대자로 체육관 바닥에 뻗어있었다. 같이 운동하는 동네 언니가 웃으며 그렇게 힘드냐고 했다. 에고에고 소리를 내면서 힘들다고 말하는 나였지만 얼굴에 웃음이 폈다. 잘해서가 아니라. 끝을 내서이다. 간단히 누워서 스트레칭을 하고 글러브와 운동화를 챙겨 집에 갈 준비를 했다. 그리고 당당하게 관장님과 언니에게 말했다. 나는 오늘 맥주를 꼭 마실 거예요. 2주 동안 계속 나온 나를 위해 선물을 줘야 해요. 어제부터 한 나만의 약속이라 무조건 마실 거예요. 결국 집에 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맥주를 마셨다. 언니가 사준 닭가슴살 안주를 먹으면서 아주 낭만적인 금요일 밤을 보냈다. 이렇게 힘들게 운동하고 이 밤에 맥주?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기특한 건 기특한 거니깐. 선물이니깐. 내일은 토요일이니깐. 조금 늦게 자면 되니깐. 뭐 이런 위안을 삼으면 된다. 그리고 불닭볶음면의 유혹을 뿌리친 기특한 날이니깐. 어찌 되었든 2주 출석률 100%이고, 링 위에서 끝을 보았으니. 기꺼이 맥주 선물을 받았다.



잘 버틴 내게 준 선물 맥주 한 캔과 글러브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사진을 한 컷 찍었다. 아무래도 한 달에 한두 번은 이렇게 운동을 잘 끝낸 나에게 편의점 맥주를 선물로 줘야겠다. 너무 시원하고 맛있다. 이제 주말에 골반 근육통만 잘 풀어놓으면 되겠지. 오늘의 복싱 일지 끝.


낭만 복싱, 낭만 맥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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