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링 위에서 관장님의 하얀색 미트가 사정없이 공중에서 연타로 쏟아지고 있다. 어깨와 손목 근육통이 조금 좋아져서 민트색에서 흰색 미트로 바꿔서 연습을 시작했는데. 바꾸자마자. 신나게 달리신다. 어퍼-훅-투-가드(허리)-원-투-가드-가드-위빙(피하고)-투-원-투. 뭐, 이런 식이다. 공격을 하는 호흡이 길어졌다. 관장님은 멀쩡한데. 나는 정신을 못 차리고 계속 헤매고 있다. 허리 가드는 처음 하는 거라 당황을 했다. 하지만 곧 어렵지 않게 막을 수 있었다. 그건 이 길고 긴 공격 호흡에서 앞부분에 있기 때문이다. 중간 왼쪽과 오른쪽 가드를 올려서 공격을 막아야 하는데. 내 글러브는 가드는 하지 않고 자꾸 머리 위에 존재하는 공간 그 어디론가로 도망친다. 아니, 왜. 자꾸 이상한 곳으로 도망치는 걸까. 이러다가 상대방 주먹에 얼굴을 정통으로 맞아 K.O. 를 당하면 어쩌려고. 가드가 가드를 못하는 이 어이없는 상황. 공격만큼 방어가 중요한데. 아, 승부욕이 올라온다. 내가 ‘원-투-가드-가드’는 어떻게는 놓치지 않고 따라가겠어. 관장님 모르게 속으로 다짐을 했다.
금요일에는 오전에 갔다왔어요.~^^
파바박-가드(허리)-파박-가드-가드. 막았다. 드디어 가드-가드까지 박자를 놓치지 않고 막아냈다. 한 번에? 그건 아니다. 기대하셨나요? 몇 번을 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아무튼 5번 이상은 계속했다. 중간에 호흡을 가다듬을 틈을 주지 않고 무한반복을 시켜주신 관장님 덕분이다. 이건 절대로 좋은 마음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이 기세를 몰아서 뒷부분을 잘 마무리하면 된다. 그러면 되는데. 위빙(피하고)에서 막혀버렸다. 크크크. 그렇지 뭐. 그럴 수도 있지. 암, 그렇고 말고. 내 얼굴로 날아오는 상대방의 펀치를 피하기 위해 무릎을 살짝 굽히는 동시에 머리도 살짝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그러면서 다음 스트레이트(투) 공격을 하기 위해 발의 위치를 살짝 바꿔줘야 한다. 이론상으로 완벽하게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내 몸의 운동신경까지 그 기억이 순간적으로 전달되지 않을 뿐이다.
대략 이렇다. 피해야 하는 펀치를 손을 쳐서 튕겨냈다. 그것도 아주 빠르고 당당하게. 풋. 당황하셨나요? 저는 얼마나 황당하고 얼굴이 빨개졌을지 눈감아도 아시겠지요. 또는 얼굴로 날라 들어오는 펀치를 눈으로 봤으나. 다리와 머리가 ‘얼음’ 작전을 펼쳐버린 것이다. 머리 위치가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 데 그대로 있었으니. 당연히 ‘팅’하고 머리와 미트가 충돌을 했다. 다행히 미트 연습이라 관장님이 천천히 팔을 뻗으셨기에 아프지는 않았다. 단지 내 마음에 스크래치가 났을 뿐이다. 어이가 없어 웃음만 나왔다. 아니, 왜 멀뚱멀뚱 들어오는 펀치를 보고만 있는 건지. 반사신경이 이렇게 없었던가. 아닌데. 나름 반사신경 나쁘지 않은데 참 이상했다. 심지어 머리와 미트의 충돌이 한 번에서 끝난 것도 아니다. 휴, 이쯤 되니. 머리와 반사신경이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이건 분명 체력과 집중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펀치를 피하는 것이 '위빙' 이에요.~(사진:픽사베이)
체력은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결국 집중력으로 이 난관을 해결해야만 하는 것이다. 도둑맞은 집중력이 돌아와야. 가드와 위빙을 무사히 넘기고 마지막 화려한 공격인 투-원-투를 할 수 있다. 삐-익. 30초 쉬는 시간이다. 황금 같은 쉬는 시간을 아무렇게 보낼 수 없다. 절대로. 링 위를 천천히 걸으면서 복기를 한다. 저기 여유롭게 걷고 있는 관장님이 느껴진다. 하지만 결코 관장님을 보면 안 된다. 벌써 10초가 흘렸다. 글러브를 뻗으면서 박자를 맞춰본다. 이번에는 가드와 위빙의 고비를 넘기고 투-원-투 공격까지 한 방에 갈 것이다. 꼭! 마지만 세트에도 못하면 분명 하루 종일 기분이 별로일 것이다. 무조건 해야 한다. 집중해야 한다. 관장님을 등지고 남은 10초 동안 다시 복기. 어? 저기, 관장님. 발 스텝은 어떻게 해야 하지요? 펀치에 신경을 쓰다 보니. 스텝이 이상해졌다. 인정 많은 관장님은 스텝과 펀치 박자를 다시 알려주셨다. 봐도 어려운 스텝이지만 일단은 오케이. 삐-익. 마지막 세트가 시작되었다.
휴우, 링 위에서 내려와 샌드백 앞에 섰다. 결국 ‘체력밖에는 답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체력이 있어야 집중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도둑맞은 집중력은 마음을 먹었다고 휘리릭 생기지 않는다. 너무나도 당연하게도 체력을 쌓아야 잃어버린 집중력을 찾아올 수 있다. 상대방을 공격하거나 방어하기 위해서는 3분(1세트)이라는 시간 동안 초집중을 해야 한다. 1초라도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상대방의 펀치가 무참히 내 얼굴과 복부, 옆구리를 사정없이 날릴 것이다. 어쩌면 경기가 시작되고 1세트가 끝나기도 전에 무시무시한 K.O. 를 당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스파링을 하거나 대회를 경험하지 못한 나는 어떻게 될까? 집중력이 없어지면 레벨업 된 미트 연습을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너무 속상하고 짜증이 나겠지. 아무래도 링 위에서 짜증만 내고 있는 나를 만나고 싶지는 않다. 고로 지금 체력이라는 것을 쌓기 위해 헉헉거리며 샌드백을 치고 있는 것이다. 아, 샌드백을 연속으로 빠르게 치고 있으니 숨이 넘어갈 것 같다. 그래도 해야겠지. 어떻게든 도둑맞은 집중력을 찾아오려면. 다음 주부터 샌드백 연습과 아령 어퍼컷 연습을 잊지 말고 꼭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