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더지 게임을 아시나요? 망치를 들고 뿅 하고 튀어나오는 두더지의 머리를 쾅쾅쾅 때리는 바로 그 게임.
두더지 머리를 치는 맛을 잊을 수 없어서 계속하게 되는 두더지 게임이 있다. 고백하면 나는 두더지 게임을 잘한다. 진심 못하는 편이 아니다. 이 두더지 게임을 잘하기 위해선 시각이 넓어야 한다. 갑자기 뽕하고 튀어나오는두더지 머리로 망치를 내리치는 반응 속도도빨라야 한다.타다닥. 탁탁 탁탁.대각선으로 타-닥 가로로 타-닥.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순간적으로 두더지의 머리를 공격해야 한다. 아주 짜릿하다.이런 두더지 게임을 한동안 잊고 지냈다. 오락실에 갈 일도 없으니깐.
그런데 오늘 링 위에서 미트 운동을 하고 나서 이 두더지 게임이 갑자기 떠올랐다. 가드를 올리고 수비를 하는 모습에서 두더지 게임을 떠올린 것이다.어쩌다 복싱의 가드와 두더지 게임이 같이 묶였을까? '어퍼-훅-투'연습을 하고 있었다. 어퍼를 할 때 뒤에 있는 발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 뒷발-앞 발-뒷 발 회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이 놈의 발이 자기 마음대로 앞 발부터 움직인다. 뒷 발부터 움직이는 게 왜 이렇게 어색하고 안되는지 모르겠다. 링 위에서 펀치나 스텝이 꼬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정신을 못 차리 게 된다. 평소에 잘하던 원투 스텝도 엉망이 된다. 하지만 지금 여기는 링 위이다. 링 위에선 '삐-익' 세트 종료음이 나오지 않는 이상 멈추지 않는다. 봐주지도 않는다. 그래도 연습이라 관장님이 3초 정도는 봐주신다. 딱 숨 고르시간 3초. 3초가 끝나면 관장님의 미트 공격은 계속된다. 심지어 어쩔 땐 새로운 기술이 훅훅 들어온다. 정신없는 나에게 더 정신없는 선물을 주시는 거다. 일부러 그러시나.
관장님이 쓰시는 무기들입니다. ~^^
어찌 되었든 관장님의 미트가 계속 움직인다. 어디서? 눈앞에서. 그런데 이건 뭘까? 눈앞에 있던 미트가 갑자기 사라졌다. 순간 '툭-툭-툭'하고 내 바디 옆면을공격해오는 미트. 얼굴 옆에서 툭-툭. 옆구리에서 툭-툭. 허리에서 툭-툭. 관장님! 이건 반칙입니다.라고 외칠 수 있다면 외치고 싶었다. 사전에 합의가 있어야지요. 관장님! 이렇게 말하면 이상할까? 하지만 이런 말들을 하고 싶었을 만큼 너무 당황했다. 내 앞에 있던 미트가순간 옆구리로 날아오는 데. 그저 나는 얼어있을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 오랜만에 느끼는 무력감이었다. 할 수 있는 것은 관장님을 보면서 바보처럼 웃는 거였다. 그 웃음의 의미는 이런 것이다.
"어... 어. 이건 뭘까요? 어떻게 하라는 걸까요?"
"이건 어떻게 펀치를 날리라는 건가요?"
"아, 막으라고요. 어떻게 막는 건데요."
이렇게 약간은 어이없게 마지막 세트 운동이 끝났다. 링에서 내려와 마무리 운동을 하면서 천천히 오늘 복싱 방어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분명 내일도 가드 방어를 할 텐데... 어쩐담. 그러다 생각난 것이 바로 '두더지 게임'이었다.
두더지 게임을 잘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센스가 필요하다. 하나, 목표에서 눈을 떼지 말아야 한다. 둘. 시각이 넓어야 한다. 셋, 순간적인 판단 능력이 있어야 한다. 넷, 정확하게 원하는 곳을 쳐야 한다. 다섯, 타격 후 바로 원위치를 해야 한다. 이 다섯 가지 센스가 있어야 두더지 게임에서 점수를 많이 받을 수 있다.
이 두더지 게임을 잘하기 위한 센스가 복싱 가드 방어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하나, 관장님의 미트에서 눈을 떼지 말 것. 둘, 시각을 넓게 해서 미트를 놓치지 말 것. 셋, 순간적인 판단 능력을 발휘해서 공격이 어디로 오는지 파악할 것. 넷, 정확하게 공격이 들어오는 곳으로 가드를 움직여서 방어할 것. 다섯, 가드 방어 후 즉시, 원 위치로 돌아와 다음을 준비할 것.
딱이다. 딱. 관장님의 옆구리 바디 공격을 방어할 수 있는 비법을 두더지 게임에서 찾았다. 이제 해야 할 일은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다시 복싱 체육관에 가는 것이다. 내일은 부디 툭 툭 툭 들어오는 미트 공격을 탁탁탁 경쾌하고 날렵하게 막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