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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적작가 Nov 01. 2024

2-22. 로봇팔 방어를 하지만, 위빙은 잘해.

미친 몸무게라 복싱 시작합니다:2

복싱일지:24.10.31. 목
삐리-삐리-삐리
옆구리를 방어하는
나의 팔은 로봇팔.

그래도,

위빙은
좀 괜찮구나

다행이다.



흠, 대략 난감이다. 언제부터 내 팔이 로봇팔이 된 걸까. 가드를 올리고 옆구리와 얼굴옆면으로 날아오는 관장님의 미트를 막고 있었다. 또-옥-딱. 1초에 3번의 공격이 들어오는 데. 아주 변화무쌍하다. 오른 얼굴-왼 얼굴-옆구리. 옆구리-왼 얼굴-오른 얼굴. 1세트 때는 가드 방어가 어느 정도 된다. 아직 체력이 있기에 ‘공격-방어‘, ’ 공격-방어-공격‘, ‘방어-공격-공격’을 잘 따라간다. 하지만 2세트부터 급하강하는 체력으로 오류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다 결국 부드러움은 하나도 없는 뻣뻣한 로봇팔로 미트 공격을 막는 시늉을 시작한다. 삐걱-삐걱-삐걱. 더 심각한 것은 한 손만 움직여야 하는 데. 두 손이 같이 움직이는 것이다. 아주 심각한 오류라고 할 수 있다. 딱 K.O. 를 당할 오류의 범위에 들어갔다고 보면 된다. 보통 2세트를 시작하고 체력이 떨어지면서 오류들이 생겨난다. 참 슬픔이다.  



오류 1단계는 '스텝 오류'이다. 발이 ', 뒤, '으로 계속 움직여야 하는 데. 제자리에 멈춰있다. '멈추워다오. 스텝아~!' 누군가 오류 코드를 잘 못 아니, 일부러 넣었나 보다. 멈춤의 아름다움을 이토록 이해하지 못하다니. 참, 할 말이 없다. 링 위에서는 절대 멈추지 말라고 오류를 수정해야겠다. 오류 2단계는 ‘코어 오류’이다. 복싱은 코어가 생명이다. 모든 펀치를 칠 때 코어가 없으면 몸이 휘청거린다. 아마도 ‘휘청거리다 넘어져라’라는 프로그램을 넣었나 보다. 아니, 도대체 왜? 체력이 바닥나고 있음을 알기기 위해 코어 오류를 넣은 걸까. 휘청거림의 위험성을 1도 이해하지 못한 잘 못된 오류임을 설득시켜야겠다.



또, 이 코어오류는 상대방의 펀치를 피해야 할 때 전혀 제 역할을 못할 수도 있다. 혹시 정통으로 펀치를 맞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무조건 ‘코어 오류’를 수정해야 한다. 사실 오류 1단계와 2단계는 1세트, 2세트, 3세트 할 것 없이 체력이 떨어진다 싶으면 수시로 일어나는 일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오류범위에 속한다. 하지만 오류 3단계인 ‘펀치-방어 오류’에서 예상 범위를 벗어난 ‘어이없는 방어 오류’가 나오면 그 즉시 방어벽이 뚫려버려 도망가고 싶어 진다. 너무 창피해서… 흑.  



‘펀치-방어 오류’인 오류 3단계는 공격이나 방어를 할 때 팔이 부드럽고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체력 걱정이 없는 1세트에서는 이 절댓값이 웬만해서는 흔들리지 않는다. 역시 체력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인가 보다. 하지만 체력이 떨어지는 2세트가 오면 관장님의 미트가 훅훅훅 공격해 올 때. 부드러움과 빠름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방어 오류가 시작된다. 얼굴옆에 딱 붙어있어야 하는 가드가 머리 위 공중 그 어딘가로 도망가거나. 옆구리로 재빠르게 내려가 딱 붙어 있어야 하는 가드는 옆구리를 버리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참으로 무정한 방어 오류이다. 그래도 관장님과 나에게 웃음을 주기는 한다. 어이없는 황당한 웃음이긴 하지만. 나름 이것도 웃음이니 완전 대문자 무정함은 아닌 걸로 해야겠다.




아무튼 오류에 오류가 쌓이고 쌓이다 보면 결국 속은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그동안 잔잔하게 쌓아 놓았던 뿌듯함, 자존감, 용기, 믿음 등이 끓어오르는 속 때문에 넘쳐버려 사라질 위기에 놓이는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바로 관장님의 칭찬 한마디이다. 무엇이 되었든지 “좋은데요.” 이 한마디만 있으면 끊어 오르는 속을 초기에 진압할 수 있다. 혹시 '좋은 데요'를 못 들을까 봐 걱정이 된다면 진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관장님은 무엇이 되었든지. 조금이라도 잘하는 것을 찾아내어 반드시 칭찬을 해주실 테니깐. 그렇다면 오늘 나는 어떤 칭찬을 들었을까?



 바로 위빙의 무빙이 좋다고 칭찬을 들었다. 상대방의 훅 펀치를 피하는 움직임이 위빙이다. 스텝을 옮기면서 무릎과 고개를 살짝 구부리면서 펀치를 피하면 된다. 위빙도 여러버전이 있는 데. 오늘 칭찬을 들은 위빙은 ‘뒤로 위빙-앞으로 위빙’을 하는 기술이다. 다행이다. 발까지 로봇발이었다면 회생불가능에 가까워졌을 텐데. 잘하는 것이 하나라도 있다는 건 정말로 큰 위로가 된다. 못하는 게 있으면 잘하는 것도 있는 거다. 그러니 하나를 못한다고 해서 주눅 들 필요가 없는 것이다. 잘 못한다는 것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간을 들여 잘하기 위해 노력을 한다면 언젠가 '로봇 같아요'라는 말대신 ‘어! 좋은데요.’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니 로봇팔 방어 오류를 막기 위해 내일도 복싱하러 와야겠다. 그러면 칭찬이 '+1' 올라가겠지.



나름 열심히 운동한 티가 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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