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 네! (그럼요, 찍어드릴 수 있어요.) .. 나: 네?(어? 혹시 저요? (당황)) .. 나: 아, 네!(휴~^^ 언제 찍을까요?)
두근두근. 링 위에서 스피링 하는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링 안과 밖에서도 스파링을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 스파링용 글러브를 끼고 복싱 헤드기어를 쓰고 있는 모습에 내 가슴이 더 콩닥콩닥 뛰었다. 기대감과 멋있음이 마구 섞여 손에 땀이 났다. 내가 스파링을 뛰는 것도 아닌데. 손바닥에 땀이라니.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스파링 하는 장면을 생생하게 담기 위해 링 안에 있어야 해서 더 긴장을 하는 것이다. 영상을 잘 찍어야 하는 데. 하나라도 건질 것이 있어야 하는 데. 혼자 중얼중얼거렸다. 역시 긴장을 많이 한 티가 난다.
링밖에서 스파링 준비를 하시는 분이 글러브 끈을 단단히 조이고 있다. 스파링을 하다가 글러브가 버껴지면 안 되기 때문이다. 글러브를 이미 낀 손으로 다른 글러브의 끈을 정리하고 있다. 순간 어? 혼자서 될까 싶었다. 도와드려야 하나. 고민을 했으나, 바로 접었다. 글러브 끈 정리를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 초보 복싱러가 도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행히 시간이 조금 걸려서 그렇지 혼자서 글러브 끈을 다 정리하셨다. 그동안 링 안에서 다른 분, 바로 관장님이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사각 링 안에 3명이 다 들어와 있다. 세상에나 이거 공간이 너무 작다. 내가 다닐 수 있는 길은 링 줄 근처뿐이다. 영상촬영 난이도가 생각보다 높다. 그래도 할 건 해야 한다. 곧 1세트가 시작될 것이다.
복싱을 하는 한....언젠가는 내 꼭!!
삐-익. 1세트 시작. 사각 링 위에 두 명의 선수가 가드를 올리고 서로 견제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펀치를 파바박 상대에게 날렸다. 다시 한번 가까이 붙어서 파바박. 그러다 가드를 올리고 무빙을 하면서 들어오는 펀치를 싹싹싹 아주 잘 피했다. 아니, 저 펀치를 어떻게 피할 수 있는 걸까. 펀치를 피하는 상체의 움직임이 아주 예술이다. 문제는 스파링의 주인공들이 자꾸 영상 화면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최대한 풀샷으로 찍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람이 사라져 버렸다. 3초 마법이다. 3초가 되면 사라지는 마법. 결국 스파링 하는 모습을 놓치지 않기 위해 나도 열심히 링 안에서 움직였다. 찍다 보니 영상촬영에 욕심이 생겼다. 스파링 하시는 한 분의 등 뒤로 다가갔다. 확실히 풀샷보다 현장감과 생동감이 진하게 느껴진다. 으악. 펀치가 상대의 머리를 가격했다. 그것도 두 번이나. 와우. 심장이 떨린다. 떨려.
1세트가 끝났다. 30초의 쉬는 시간. 영상촬영을 잠시 멈췄다. 혼자 조용히 사각링 구석으로 가 한 손으로 놀란 심장을 토닥이고 있었다. 지금 들리는 소리는 놀란 내 심장과 두 명의 거친 숨소리뿐이다. 다시 삐-익. 2세트가 왔다. 와, 두 분의 스파링 속도가 너무 빠르다. 만났다. 헤어졌다. 따라갔다. 물러났다. 순간 가수들의 뮤직비디오 촬영이 생각이 났다. 네, 이 와중에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영상촬영을 하는 저의 무빙이 딱 뮤비 촬영을 하는 모습 같았거든요. 다른 점이 있다면 내가 촬영한 영상은 엄청 흔들리고, 화면이 맥락 없이 풀샷(전체)-니샷(무릎까지)-웨이스트샷(허리까지)을 왔다 갔다 한다는 것이다. ‘아, 영상 중에서 하나라도 건질 것이 있어야 하는데.’ ‘정신 차리자.’ ‘집중해서 찍자.’ 그 바쁜 순간에 이런 생각까지 했다.
2세트가 진행되는 동안 스파링을 하는 두 분의 숨소리가 심각하게 거칠어져 갔다. 힘을 쥐어짜 내서 펀치를 날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만약 내가 촬영한 영상이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내일부터 도망 다닐 수도 있다. 느낌 오시나요. 이때부터 2세트가 끝나기 전까지. 나의 영상촬영 무빙은 평소 미트 연습을 할 때보다도 훨씬 빠르고 가볍고 센스가 있었다. 삐-익. 끝났다. 2세트가 끝나는 소리가 들리는 동시에 두 분의 체력이_아니 한 분 만인가? 아무튼…_바닥이 났다. 힘들어서 더는 못한다며 스파링을 끝내버렸다. “어? 3세트까지 해야…. “라고 장난 삼아 말했더니. 단호하게 끝이라고 못을 박으셨다. 진짜 힘드신 거다. “열심히 찍긴 했는데, 이렇게 힘드신데. 하나라도 괜찮은 영상이 있어야 하는데…”라고 말하면서 조용히 영상촬영을 하던 휴대전화를 관장님께 드렸다.
사진: 복싱체육관 인스타그램
스파링이 끝나고 링 위에서 내려왔다. 고백하자면 내 몸만 내려왔다. 링 위에서 느꼈던 생동감과 현장감 때문에 마음과 정신은 아직 링 위에 남아있었다. 영상촬영을 하고 있어서 정신은 없었지만 화려했던 복싱 펀치 기술들과 유연했던 무빙, 그리고 거친 숨소리와 펀치 소리가 내 뇌리에 콱 박혀버렸다. 그래서일까. 이때부터 위험하지만 짜릿할 것 같은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언젠가 나도 복싱 연습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담아봐야지.’ ‘좀 더 욕심을 내서 스파링을 하게 되면 그 모습도 꼭 영상으로 담아야겠다.’ 이런 상상말이다. 물론 입으로 내뱉는 것까지는 아직 용기가 나지는 않아 혼자서 조용히 다짐을 해보았지만. 진심으로 어떡하든 한 번은 꼭 해보고 싶다. 아, 이래서 현장체험, 현장체험하는가 보다. 조금만 과장해서 백만 번 말해도, 천만번 영상으로 보여줘도 별 관심 없어하던 것이었는데. 그저 딱 한번. 바로 눈앞에서 리얼하게 스파링을 보여주니. 혼자서 알아서 자동적으로 ‘나도 그거 하고 싶어.’라고 생각하니 말이다. 역시 현장체험만큼 용기를 주는 것은 없다. 어떤 일에 대해서 용기가 없어 결정을 내리지 못할 때 무조건 직접 봐야 하는 것이다. 옹달샘에서 샘물을 마시게 하려면 일단 옹달샘까지는 데리고 와야 한다. 잔잔하면서도 반짝거리는 맑은 옹달샘을 보여줘서 1차 감동을 줘야. 2차로 옹달샘에 손가락 하나라도 담가보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 나처럼 복싱 연습 영상을 찍고는 싶었으나. 용기가 없어 아직 시도할 마음조차 먹지 못했다면. 옹달샘 현장체험을 꼭 가봐야 한다. 그러면 용기가 생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