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칭칭. 관장님이 팔꿈치 바로 위에 복싱 면테이프를 감아주시고 있다. 다시 살 떨리는 경고와 함께.
“회원님, 이 테이프를 팔꿈치 윗부분에 붙이면 통증이 좀 좋아질 겁니다. 하지만 테이프를…“
네, 알고 있어요. 무슨 일이든 이득이 있으면 대가가 따르는 것이지요. 이 말을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했다. 가끔 어떤 말들은 생각으로 이미 토해내어 차마 입 밖으로 내보내지 못하기도 한다. 입 밖으로 나가지 못했지만 관장님은 분명 나의 이 굳은 마음을 느꼈을 것이다. 얼굴 표정과 앞으로 내민 팔이 이미 말이 되어 나의 뜻을 전달했을 테니깐.
“저… 관장님. 이 테이프를 하면 통증이 좋아지나요?”
“팔꿈치 관절 바로 위에 있는 근육을 테이프가 고정시켜 줘서 훨씬 안정적일 겁니다.”
“휴, 그렇군요. 근데 테이프를 하면… 마지막에 그… 그렇게 아픈가요? “
“많이 아프지는 않지만, 어찌 되었든 아프기는 하지요. 그래도 안 붙여서 아픈 것보다는…”
맞다. 관장님의 말은 다 맞는 말이다. 팔꿈치 통증이 풀리지 않은 상태로 오늘 계속 운동을 할 수는 없다. 사실 처음에는 거절했었다. 복싱 면테이프를 붙이는 거야 전혀 어렵지는 않다. 단지 마지막에 살짝 아프다는 저 경고를 듣고 나니. 한번 참아보기로 했었다. 천천히 쉐도잉 복싱 연습을 하면 좋아질 거라 믿음이 있어서 거절을 했던 거였다. 하지만 통증은 멈추지 않았다. 원투 펀치 한번, 멈추고 팔꿈치 마사지 한번. 연습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았다. 그때 관장님이 다시 오셨고, 오늘 이 상태로 연습은 힘들 거라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하셨다. 결국 두 번은 거절할 수 없었다. 연습은 해야 하니깐. 그러고 보니 이미 관장님의 양팔에 하얀색 면테이프가 여기저기 붙어있다. 관장님은 괜찮으신가? 궁금증이 올라왔다.
“관장님, 정말 테이프를 붙이고 나서 마지막에 뗄 때 진짜 많이 아픈가요? 하하하.”
“(웃으시면서) 많이는 아니고요. 아주, 살짝~. “
절대로 면테이프에 겁먹은 것은 아니다. 아파봤자. 그냥 테이프를 뗄 때 느끼는 고통의 범위일 테니깐. 그리고 관장님이 팔과 손가락에 많이 붙인걸 보니 죽을 만큼의 아픔은 아닐 테니깐. 그저 ‘처음’이 주는 부담감 때문에 주저한 것뿐이다. 칭칭칭. 아주 단단하게 감고 있는 관장님. 참 고마운 마음이 든다. 진심으로. 음… 그런데, 테이프를 진짜로 세게 붙이셨나 보다. 내 팔꿈치 주변에 있던 살들이 테이트 옆으로 아주 불룩하게 튀어나와 있다. 팔꿈치 고통이 줄어든 대신 감춰왔던 살집과 마주하는 고통을 느끼게 되었다. 아! 무슨 일이든 이득이 있으면 대가가 따르는 것이었지. 어쩔 수 없다. 감수할 것은 감수해야지. 그냥 모른 척하기로 했다. 바람막이 겉옷을 입으면 보이지 않을 테니. 모른 척할 수 있다.
툭하고 튀어나온 팔꿈치 살들을 무시하면서 샌드백을 치고 있다. 좀 편해졌다. 덕분에 링 위에서 하는 미트 연습도 했다. 관장님의 센스 있는 강도 조절로 완벽한 펀치는 아니었지만 땀은 났다. 주로 훅과 어퍼컷 펀치를 연습했는데 팔꿈치에 무리가 가지는 않는 동작들이었다. 진짜 관장님의 피드백처럼 투 펀치를 뻗을 때 팔꿈치 자세가 잘못되어서 통증이 생긴 것 같다. 투 펀치를 뻗을 때 팔꿈치에 회전이 과하게 들어가면 통증이 생긴다고 했다. 중요한 회전은 미리 해서도 안되고, 너무 많이 해서도 안된다. 참 까다로운 회전이다. 그래도 이 회전을 제대로 하면 통증도 사라지고 자세도 좋아진다고 하니깐. 가볍게 넘길 수가 없다. 가볍게 넘기다가는 또 무시무시한 통증이라는 대가를 받을 수 있다. 이런 대가는 더 이상 받고 싶지 않다. 그러니. 다시 기본자세를 정확히 연습해야겠다. 팔꿈치 통증이 좋아지는 이득을 얻기 위해서는 ‘기본 펀치 연습하기’라는 대가는 당연히 지불해야 하는 거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