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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적작가 Nov 14. 2024

24.위안-마지막 회:나는 글 쓰는 나로 잘 살고 왔다

영하의 날씨 구독일기:기록취미


물리학 쪽 책을 보다가, 이해는 잘 못하면서도 문득 위안을 받을 때가 있다. 예를 들어 과거, 현재, 미래라는 것은 그저 지구상의 인간을 위한 편의적 개념일 뿐이라는 설명이 그렇다. 또한 시간은 우리가 우주의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다 다르고, 어쩌면 거꾸로 흐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 같은 것. 내가 다른 삶을 상상하거나 거기에 매혹되는 이유는 어쩌면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불가역 한 시간이라는 개념에 익숙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만약 여기에서 벗어난다면 좀 더 편안하게 미지의 미래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미래처럼 보이는 과거일 테니까.

[김영하 작가의 ‘영하의 날씨’ 24회 위안 중]
드디어 구독일기 마지막회입니다!!  시원 섭섭합니다.;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나는 가끔 상상을 한다. ‘만약 내가 이런 혹은 저런 일을 한다면 어떤 인생을 보내고 있을까? 아마 멋진 시간을 보내고 있겠지.’라고. 이 상상의 세계는 오래전부터 쌓아온 나의 관심사라는 세계 안에서 생긴 것들이다. 이 상상의 세계에서 나는 언제나 멋진 인생을 살고 있다. 원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그 일에 재능이 있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물론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생활을 하면서 인생을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고 있다. 상상은 언제나 달콤하다. 현실의 힘듦을 잠시 잊게 해 준다. 하지만 상상의 끝은 언제나 지독히도 쓰다. 단 한번뿐인 현실의 인생을 살고 있는 내가 갈 수 없는 세계임을 알기에 그 쓴 맛은 오래 입안에 남는다.



해보고 싶었으나 못해본 삶. 그 삶들에 매혹되어 빠져 버리면 현실의 세계는 끝없는 불안에 쌓이게 된다. 상상의 세계보다 현실의 세계는 항상 없어 보이니깐. 그럼 이런 가져볼 수 없는 상상의 세계를 상상하는 것을 멈춰야 할까? 아니 멈출 수 있을까? 내가 사는 이 세계의 시간의 개념에서 벗어나면 진짜로 편안해질 수 있을까? 다른 세계에서 나로 살아가는 나는 포토그래퍼나 디자이너가 되어 살고 있을 거다. 또 다른 세계에서의 나는 외국으로 여행을 다니며 N잡을 하면서 살거나 플로리스트가 되어 살고 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요가를 하거나 복싱을 하면서 살아갈 수도 있다. 혹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미지의 세계에서 사는 내가 어떤 일을 하면서 살던 현실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이다. 그러면 이런 나를 미지의 세계의 나도 상상하고 원하고 있을까? 이 세계의 나와 저 세계의 나는 분명히 연결성이 있을 테니. 지금 글을 쓰는 삶을 살고 있는 나를 원하는 또 다른 나가 있을 것이다. 그들이 원했지만 살지 못하고 있는 이 세계의 나. 이렇게 생각하니 내 삶의 의미가 달라져야만 할 것 같다. 꿈꾸던 인생의 길로 못 가서 힘들어하는 삶을 사는 내가 아니라. 우주 안에 살고 있는 ‘모든 나’가 원하는 삶 중에서 하나를 맡아서 살고 있는 것뿐이라고. 그러니 나는 그저 현실의 내 인생을 잘 살아내면 되는 것이라고. 그러면 다른 세계의 나도 잘 살고 있다고 믿을 수 있을 것이다.



가끔 살아보지 않은 삶에 대해 상상을 하게 된다면 그건 예전과는 조금 다른 상상이 될 것이다. 불안한 미래에 대한 상상이 아닌 현재 삶을 잘 살아보기 위한 산책 같은 상상이 되지 않을까. 포토그래퍼로 살고 있는 우주 C-77번 행성의 나는 잘 살고 있나? 지구에서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요즘 괜찮게 살고 있다.



“나는 여기 지구에서…”

 “나는 여기 우주 C-77번 행성에서…” 

“나가 원하던 삶을…”

 “나가 원하던 삶을…” 

“살고 있으니.”

 “살고 있으니.”  

“편안히 살다가. 나중에 만나자.”

 “편안히 살다가. 나중에 만나자.”



이러면 아쉬울 것도 괴로울 것도 없어지지 않을까. 그러니 상상의 세계는 즐기기만 하고, 빠져들지는 말아야겠다. 나중에 만나서 왜 그렇게 살았냐고 나한테 구박당하면 안 되니깐. 오히려 나는 글 쓰는 나로 잘 살고 왔다. 이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살아보지 않은 삶에 관해 이야기하는 이유는 미래에 나쁜 결과와 마주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재 살고 있는 이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다.(앤드루 H. 밀러, [우연한 생])


어떤 삺을 살고 있던지.. 잘 살고 있어라 '나'여!



[영하의 날씨 구독일기]를 마치며...

어려웠다. 내 생각의 깊이가 김영하 작가님의 깊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회차가 쌓일수록 더더욱 심해져  구독일기를 쓰는 것이 힘들었다. 그래도 시작했으니... 마무리는 짓고 싶었다. 예상보다 오래 걸렸지만, 그래도 끝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이번 겨울에는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면서 속을 채워야겠다.

그리고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사진출처: 영하의날씨 24회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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