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란 글쓰기를 다른 사람들보다 더 어렵게 느끼는 사람이다”라고 토마스 만은 썼다. 다시 말해 글쓰기가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작가가 아니라는 뜻이다. … 어쨌든 토마스 만의 정의대로라면 나는 아직 작가다. [영하의 날씨_21회 사각 중에서]
‘오늘은 뭘 쓰지?’ 김영하 작가는 글쓰기로 먹고사는 사람이 이런 말로 글을 시작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했다. 부끄럽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21회 ‘사각’의 첫 시작은 바로 ‘오늘은 뭘 쓰지?’이다. 하. 나도 오늘은 같은 마음이다. “오늘은 뭘 쓰지?” 그런데 나는 아직 글쓰기로 먹고살고 있지 않으니깐. 적어도 김영하 작가님보다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이 문장을 써도 되지 않을까. 틀렸다. 전혀 가벼워지지 않는다. 글쓰기로 먹고살아도 힘들고, 먹고살고 싶어도 힘들고, 먹고살지 않아도 힘든 것이구나.
영하의 날씨를 구독하기 시작하면서 읽은 것을 흘려보내기 싫어 시작한 구독일기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영하의 날씨에 나오는 ‘인생사용법’의 글들을 소화시키고, 내 것으로 만들기가 힘들어졌다. 읽고, 느끼고, 깨닫고, 내 경험과 연결 짓고, 나만의 의미를 만들고, 글로 쓰고. 이 과정을 거치는 것은 머리에 쥐가 나는 일이었다. 좀 더 책을 많이 읽었더라면, 좀 더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들었다면, 좀 더 많은 경험을 했더라면. 좀 더…. 아, 나는 글이 써지지 않을 때 ‘~했더라면’이라고 말하면서 지난날의 나를 탓하는구나. 근데 이 탓들이 틀린 것이 아니라서 더 부끄럽다. 글도 써지지 않는데. 부끄럽기까지 하다니. 글쓰기는 가끔 나를 너무 작게 만든다.
작아지는 나...
김영하 작가는 온갖 방법들을 동원해_예를 들어 새벽에 일어나 쓰기, 서서 쓰기, 배고픈 상태로 쓰기… 등_글을 쓰기 위해 노력을 했다고 한다. 지난날의 나를 탓하는 것보다 훨씬 현명한 선택이다. 이건 분명하다. 하지만 결국 두 가지 방법 모두 효과는 없는 듯하다. 역시 오늘 글이 써지지 않는 흑마법에 걸리면 무얼 해도 머리에 쥐가 나는 것이다. 그래도 글쓰기의 소재가 부족해 자신의 삶을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고, 끝내는 바람과 함께 떨어지는 것보다는 며칠, 몇 주 머리에 쥐가 나는 것이 더 괜찮을 일이라 할 수 있다. 머리에 쥐가 나버려 ‘아, 어찌 이렇게 무능할까?’라던가 ’ 글쓰기가 몇 년 째인 데. 아직도 어색한 건가?‘라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면서 나온 단어, 문장, 문단이 나 또는 누군가의 마음에 들어가 머물다 씨앗이 될 수도 있으니깐.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영하의 날씨 ‘사각’ 편에서 글쓰기와 문학은 인공지능 시대에서 ‘참을 수 없는 무능과 저생산성 속에서 진행되며 큰 이익은 내지 못하는 직업’으로서 없어지지 않고 살아날 것 같다고 했다. 이익이 되어야 돈을 투자할 텐데. 글쓰기와 문학은 힘들고 측은하고 어렵고, 투자한 만큼의 생산성을 보장할 수 없기에 오히려 살아남는 사각지대라는 것이다. 흠, 진짜 그럴 것 같다. 그런 사각지대에 들어온 것이 기쁘다. 기쁘긴 한데 오늘처럼 ‘오늘은 뭘 쓰지?’라는 흑마법에 걸리면 진짜 고통스럽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사각지대에 들어온 것을 후회하느냐. 그건 아니다. 이왕에 들어온 거 계속 버텨보고 싶다. 사각지대의 꼭짓점이 아니어도. 중심이 아니어도. 애매한 위치에 작은 점으로 존재한다고 하여도. 사각지대에 머물고 싶다. 버티고 싶다. 이 안에서 내 점을 지키고 싶다.
글쓰기 사각지대에서 버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확한 답은 모르겠다. 그저 과거의 나를 탓해 보기도 하고. 온갖 방법을 써가면서 한 줄이라도 써보기도 하고. 모임에 나가 보기도 하고. 산책을 해보기도 하고. 뭐 이런 여러 가지 방법을 써가면서 버티면 될까? 아니면 오늘처럼 ‘글이 써지지 않아요.’라고 고백하는 글을 쓰면 되는 것일까? 이것도 모르겠다. 무엇이 정답인지 모르지만. 그냥 모르는 상태에서도 일단 쓰는 것이 버티기 기술 중에서도 최고로 값진 기술이라는 믿음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일단 쓰면서 버틴 나에게 ‘기특함’이라는 칭찬을 해주고 싶다. 더불어 ‘감사함‘이라는 말은 [영하의 날씨 21화 사각]을 써주신 김영하 작가님께 드리고 싶다. 그리고 이 글을 읽어 주신 분께는 ‘고마움’이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덕분에 오늘 글쓰기 사각지대에서 무사히 버틸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