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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PD Mar 22. 2019

61. 만약 법정 근로시간이 지켜지는 사회가 된다면?

독일에 있을 때였다.
오후 4~5시 즈음 됐을까? 길을 걷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우르르 건물에서 나오기 시작했고 차량 통행은 급격히 많아졌다. 나는 급격히 늘어난 인파를 뚫고 서둘러 걸음을 재촉했다.
그날의 여행을 마치고 숙소로 가서 먹을거리를 사려고 들렸던 마트. 거기엔 아이를 데리고 장을 보러 온 부부들이 많았다. 속으로 생각했다.
'설마 이 시간에 퇴근을 하고 가족들과 같이 장을 보는 건가?'

네. 맞아요. 여기는 거의 4~5시만 되면 다 퇴근해요.

한인 민박 주인에게 궁금해서 물어봤는데 그 사실이 맞았다. 그리고 이곳의 근로시간은 한국처럼 천편일률적이지 않고 유동적이라고 이야기하셨다. 파트타임 잡(Part-time Job)으로 먹고사는 사람도 있고, 회사에 따라서 자율출퇴근제를 운용하는 회사도 많다고 했다.
(이 사실은 독일 어느 지역 한 사람의 이야기에만 국한된 것이고 지역에 따라 근무환경이 다를 수도 있기 때문에 일반화는 금합니다.)

당시 그 사실만 듣고도 너무 부러웠고 거기서 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런데 거기서 조금 지내면서 다른 생각도 들었다.
어느 일요일이었다. 그곳의 토요일 풍경과 일요일 풍경은 사뭇 달랐다. 문을 닫은 상점들이 문을 연 상점들보다 훨씬 많았고 그 지역의 유명한 쇼핑센터는 아예 'SUNDAY CLOSED'라고 써 붙여져 있었다.
이것은 즉, 누군가는 이 날 휴일을 만끽한다는 의미이고, 여기는 일요일 상점들이 거의 문을 닫으니 '어찌 보면 우리나라와 1년간 평균 근로시간이 차이가 난다는 게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했다.

상점이 거의 문을 닫은 거리는 다른 날과 다르게 너무 한산했고 그냥 근처 공원만 조금 돌아다니다가 숙소에서 쉬었다. 상점들이 거의 문을 닫으니까 심심하고 할 게 거의 없었다. 또 그날 저녁 민박집 사장님께 물어보았다.
"여기는 편의 시설들이 일요일에 거의 문을 닫는데 보통 일요일에는 뭐 하면서 지내세요?"
민박집 사장님이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저도 사실 그 부분이 적응이 안 됐어요.  진짜 어떤 일요일엔 제가 다음날 아침을 차려야 하는데 전날 장을 보는 걸 깜빡했었거든요. 근데 문 여는 마트가 하나도 없었어요. 일부 편의점 제외하곤. 그래서 다음날 아침에 집에 남은 식빵 몇 조각이랑 해서 토스트만 만들어줬던 기억이 있네요."  

"여기 사람들은 보통 일요일엔 공원 같은 데서 스포츠 즐기거나 쉬어요. 특히 겨울날은 여긴 해가 한국보다 짧고 해가 짱짱한 날이 많이 없어서 더더욱 사람들이 많이 밖에 나가려고 해요."  

사장님이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켜며 말씀을 이어나갔다.
"어떨 땐 한국에서 파는 양념치킨이랑 간장치킨이 진짜 먹고 싶어요. 한국에선 언제든지 오밤중에도 배달시키면 바로 치킨 시킬 수 있잖아요. 여기는 치킨도 크리스피 치킨이 다고 배달은 꿈도 못 꾸거든요."

그렇다.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게끔 근로시간이 잘 보장되어있는 독일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근로여건을 보장받으니까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불편함은 온전히 감수해야 한다.
예를 들어 만약 택배 아저씨들이 일반 직장인이 평균적으로 근로하는 시간만큼 일한다면 그만큼 택배가 집에 도착하는 시간이 그만큼 늦어질 것이고,
대형마트가 일요일에 문을 닫는다면 장을 토요일이나 그 전날 한꺼번에 봐야 하는 불편함이 있을 것이다.  

그래도 모두 인간적으로 근로환경이 보장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냐?라는 질문에 내가 답을 한다면 나는 "네."라고 대답하고 싶다. 당장의 불편함은 있을 수가 있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곧 해결될 문제다. 모든 사람의 근로환경이 개선된다면 적어도 축 처져 있는, 피곤에 쪄들고 화난듯한 사람들의 표정이 조금은 펴지지 않을까?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좀 더 만족하고 살 수 있는 한국 사회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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