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시리즈(1) 『차가운 세상, 진심에 닿는 여정』
[서론]
사랑하는 사이에도 ‘비평’은 존재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은 어쩌면 조금 생뚱맞게 들릴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비난이 아닌 누군가를 더 사랑하기 위한 비평이라면, 그것은 반드시 더 깊이 사랑하기 위한 행위여야 합니다. 비평이 상대를 무시하거나, ‘존중’이라는 가치를 짓밟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랑하는 대상을 단순히 헐뜯지 않고, 제대로 비평할 수 있을까요? 비평은 감정을 쏟아내는 공격이 아니라, 깊은 정성과 절실함으로 빚어낸 응시여야 합니다. 함부로 말하지 않으려는 결심, 자기 마음대로 단정하지 않으려는 인내, 그리고 끝까지 이해하려는 태도. 이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내할 때, 비평은 비로소 ‘사랑의 언어’가 됩니다.
[본론]
정오의 햇살이 좋아 오랜만에 베란다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분명 햇볕은 따뜻하고 하늘은 푸른데 왠지 세상이 흐릿합니다. 이상하다 싶어 안경을 벗어보니 렌즈에 먼지가 쌓여 있군요. 안경을 깨끗이 닦고 다시 고개를 들자, 하늘은 그제야 제 본연의 색을 드러냅니다. 비로소 그 포근함이 가슴 가득 전해집니다.
비평은 이와 비슷한 일입니다. 사람들은 가끔 비평을 ‘비난’과 혼동하여 날을 세우지만, 본래 비평이란 세상을 바꾸는 마법이라기보다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의 '얼룩'을 닦아내는 정성이 담긴 작업입니다.
저는 글을 쓴 후 마지막 과정으로 AI에게 묻곤 합니다. “이 글에 대한 객관적 비평을 부탁해.” 그 결과에 따라 문장을 고치거나 때로는 아예 삭제합니다. 누군가는 기계의 조언을 불편해할지 모르지만, 저에게 이 과정은 '객관적인 독자'의 눈을 빌려 내 글에 묻은 ‘편견’이라는 먼지를 닦아내는 소중한 검토의 시간입니다.
익숙함은 때로 사물의 본래 모습을 교묘하게 가립니다. 비평은 무(無)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화려한 기술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덮고 있는 오해를 털어내고, 그것을 '제대로' 보게 돕는 집요한 노동입니다.
“원래 그런 것”이라는 말은 안일한 체념이나 위험한 선입견이 되곤 합니다. 하지만 비평은 그 "원래 그러함" 너머를 응시합니다. 보석은 땅속에 묻혀 있을 때부터 보석이지만, 정교하게 연마하는 과정을 거칠 때 비로소 진실된 빛을 발합니다. 결국 비평이란 깎아내는 냉정함의 형식을 빌려, 대상을 더 빛나게 만드는 고귀한 헌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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