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의 역설, 나 자신을 완성하는 자발적 감속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속도가 우리에게 가져다준 것은 우리가 바라던 ‘여유’가 아니라 숨 가쁜 ‘결핍’입니다. 여행길에서 만난 풍경들을 통해 이 ‘속도의 역설’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요.
동남아시아의 평온한 시골 마을을 여행하다 보면, 한국에서 근로자로 일했던 경험이 있는 현지인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반가운 마음에 대화를 나누다 보면 묘한 씁쓸함이 밀려오곤 합니다. 사실 그들을 이해시키기보다 제가 항상 사과하는 마음을 먼저 전하게 됩니다. 그들이 기억하는 한국어는 따뜻한 인사말보다, 땀 흘리는 현장에서 귀에 박히도록 들었던 거친 인격 모독성 욕설과 다급한 독촉이 뒤섞인 극단적인 어휘들이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단연 압권은 “빨리, 빨리!”입니다.
단순히 시간이 부족해서였을까요? 어쩌면 우리는 타인의 속도를 존중하기보다, 상대가 조금이라도 멈춰 있는 꼴을 견디지 못하는 집단적 조급증에 걸려 있는지도 모릅니다.
해외여행의 관문인 비행기 안에서도 이 조급증은 어김없이 발동합니다. 비행기가 목적지에 닿는 찰나, 기내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모순적인 광경이 펼쳐집니다. 바퀴가 활주로에 닿아 ‘쿵’ 하는 진동이 전해짐과 동시에 지루함에 몸을 비틀던 사람들의 눈빛은 순식간에 사냥꾼처럼 변합니다.
비행기가 아직 계류장 근처에도 가지 못해 서행 중인데도 사람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용수철처럼 튀어 오릅니다. “띠링-” 좌석벨트 표시등이 꺼지기도 전에 선반 문이 열리는 소리가 요란합니다. 위험하니 앉아 달라는 승무원의 간절한 외침은 이미 게이트 밖으로 마음이 마중 나간 승객들에겐 공허한 메아리일 뿐입니다.
좁은 통로에 앞다투어 몸을 구겨 넣고 무거운 배낭을 멘 채 기우뚱하게 서서 서로의 뒤통수를 응시하는 사람들. 하지만 이 ‘0.1초의 승부’를 건 경주는 결국 어디에서 멈출까요? 입국 심사대에서 숨을 몰아쉬며 다시 만나고, 결정적으로 본인의 짐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수하물 수취대 앞에 이르면 비로소 모두가 평등해집니다. 조금 전 내 어깨를 치며 먼저 나갔던 사람이나 통로에서 땀을 흘리며 서 있던 사람이나, 결국 멍하니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를 보며 나란히 서 있습니다.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위해 그토록 서둘렀던 걸까요? 결국 여기에서 다 만날 것을 말입니다.
효율성이라는 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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