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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는 언제 어디서

헤드헌터의 이메일

by 직진언니



정식 입사를 한 회사에서 나는 5년여의 시간을 보냈다. 5년간 두 번의 부서 이동이 있었고, 좋은 팀장님과 팀원들과 일하며 큰 스트레스 없이 회사 생활을 이어나갔다. 사회 초년생으로 나의 첫 회사와 동료들은 너무나 좋은 환경을 제공해 주었다.


입사 후 1년이 지났을 무렵 국내 대기업만을 바라보고 취업을 위해 많은 준비를 해왔던 대학 동창이 외국계 회사를 다니면서도 대기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우리 회사에 면접을 보러 왔었다. 결과는 안타깝게도 낙방이었다. 친구의 낙방은 마음이 아팠지만 다시 한번 나에게 기회를 준 회사와 동료들에 대한 감사함을 상기시킬 수 있었다.


그렇게 감사한 마음과 첫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충만한 상태로 근무를 하던 중 뜬금없이 헤드헌터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이직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었기에 나는 이메일을 얼어보지조차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회사 동료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최근 받았던 헤드헌터의 이메일을 이야기했다. 대화를 나누던 중 헤드헌터가 제안한 회사가 알고 보니 내가 취업 준비생이었던 시절 한 번 낙방을 했던 그룹의 계열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의 호기심이 발동했다.



'인적성 검사에서 떨어져서 면접도 못 봤던 회사인데 면접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한데?'



이직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면접을 경험해 보고 싶었다. 헤드헌터로부터 이메일을 받은 지 약 2개월 지난 시기에 늦은 답장을 보냈다. 헤드헌터로부터 바로 연락이 왔고 서류와 대면 면접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압박면접을 볼 것이라고 헤드헌터가 귀띔해 주어 면접에 대한 기대가 컸는데, 이직을 간절히 원하지 않았던 상태여서인지 면접은 생각보다 싱거웠다. 크게 긴장을 하지도, 공격적인 질문에 대해 당황을 하지도 않은 상태로 차분하게 답변을 이어나갔다. 결과는 기대치도 않게 합격이었다.


헤드헌터는 9명 면접을 본 중 오직 나만이 합격을 했고, 6개월 만에 합격자가 나온 것이라고 연봉협상에 유리할 것이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연봉협상이라는 개념이 있었을 턱이 없던 나는 터무니없는 숫자를 희망연봉에 적어서 인사팀에 제출했다. 인사팀은 난색을 표했으나 6개월 만에 합격한 지원자를 어떻게 해서든 입사를 시켜야 했기에 섭섭지 않은 수정안을 제시했다. 나는 이직을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었다. 오랜만에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조언을 구했다.



"아직 젊으니까 새로운 도전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이직은 워낙 민감한 주제라 회사 동료나 친구에게 물어보긴 부담스러웠다. 직장 생활을 해보신 아빠의 조언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고 아빠의 조언은 나의 의사결정에 많은 힘을 실어주었다.


한 달 가량 시간을 두고 회사에 퇴직 의사를 밝혔고 사람들은 모두 놀라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대부분이 내가 이 회사를 평생 다닐 줄 알았다는 반응이었다. 흙 먼지가 날리던 비포장도로 같았던 나의 인생에 아스팔트를 깔아준 첫 회사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이 복잡하게 소용돌이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겁도 없이 새로운 탐험을 위해 이직을 하기로 결심했다.


면접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된 나의 첫 이직은 이렇게 마무리되었고, 나의 두 번째 회사에서의 직장 생활이 시작되었다.








이직을 할 무렵 우리 집은 네온사인이 번쩍번쩍한 번화가에 있는, 1층에 고깃집을 운영하는 상가 건물을 떠나 주거지역에 있는 다세대 빌라로 이사를 갔다. 엄마도 나도 참 열심히 살았고 아빠와 헤어져 살기를 약 10년이 지나 조금은 안락한 보금자리를 마련하게 되었다.


이웃집이 다닥다닥 붙어있지도 않았고, 네온사인이 번쩍거리는 먹자골목도 아니었다. 화장실은 여전히 조금 추웠지만 저녁이면 캄캄하게 조용히 잠을 청할 수 있는 빌라로 이사를 오니 마음이 한결 포근해졌다.


인생에는 정말 큰 흐름이 있는 걸까? 5년을 근무하는 동안 대학교 학자금 대출도 모두 상환하고 더 나아가 연봉을 높여 이직을 하게 되었다. 집도 더 아늑한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으니 매 순간이 감사하지 않은 때가 없었다. 그간 적립해두었던 고생이 조금씩 보상이 되어 돌아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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