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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아파트

월세는 용납할 수 없지

by 직진언니




빌라에서의 생활은 퍽이나 만족스러웠다. 번화가에 있었던 이전 집보다는 확실히 조용하고 우선 네온사인이 번쩍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많은 안정감을 주었다. 그렇게 빌라에서 5년여의 시간을 보내고 오빠가 장가를 간 이후였다. 서울 다가구 주택에 남은 엄마와 나는 여자가 살기 좀 더 안전한 아파트로 이사를 가기로 했다. 그렇게 처음으로 나도 함께 전셋집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부동산 방문도 임장도 모두 다 엄마가 혼자 결정하고 계약도 체결하고 나와 오빠는 몸만 이동할 뿐 집 마련에 그 어떤 개입을 하지 않았다.


전셋집을 찾으러 다녀보니 마음이 참 쓸쓸한 게 세상 서러움이 느껴졌다. 서울 하늘 아래, 이 많고 많은 집 중에 나 하나 편히 쉴 집이 없어서 이렇게 길을 헤매고 다녀야 하는구나. 하필 집을 구해야 했던 시기가 한 겨울이었다. 눈이 왔던 날, 습하고 차가운 바람이 볼을 스쳐 지날 때마다 마음이 쓰라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접근 가능한 아파트는 30년 이상의 녹물이 나오고 곧 쓰러질 것 같은 아파트밖에 없었다. 그때 처음으로 강남에 집을 구경하러 다녀봤다. 압구정 현대아파트, 잠원동 한양 아파트 등 매우 낡은 아파트들이 강북 아파트 보다 전세 가격이 쌌다. 강남이라 찾아간 게 아니라 낡은 아파트가 전세가격이 낮아서 그렇게 강남 바닥에 2천만 원 전세자금 대출과 함께 처음 발을 들였다.


첫 전셋집은 반은 성공, 반은 실패한 선택이었다. 위치는 너무 좋았다. 강남이지 않는가. 모든 편의시설이 동네에서 도보로 접근 가능했고, 출퇴근하기에 교통편도 너무 좋았다. 그런데 집이 너무 추웠다. 추워도 너무 추워서 겨울이면 샷시에 방풍비닐을 붙여도 집안에 냉기가 돌았고, 방풍비닐은 바람으로 빵빵하게 부풀어있었다.


이 전 세입자도 여자 혼자 사는 집이었는데 집을 깔끔하고 이쁘게 사용하고 있었다. 그렇게 비주얼에 홀려서 선택했는데 아뿔싸, 샷시가 2중이 아니라 단창이었던 것을 간과했다. 이제 막 30대가 되어 첫 전셋집을 구했던 내가 뭘 알았겠나.


전기 조금만 많이 쓰면 두꺼비집 내려가고, 녹물 필터는 맨날 갈아줘야 하고, 겨울마다 추워서 오들오들 떨며 살았다. 부엌은 수납공간이 부족해 내 돈 들여 상부장까지 설치해 가며 그렇게 아등바등 살고 있었는데 그 순간이 오고야 말았다.







2년이 되어갈 때 즈음 계약 연장에 대해 마음 졸이며 집주인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래된 아파트라 불편하긴 해도 2천만 원 전세자금 대출도 다 갚았고 이 가격에 이만한 집 구하기도 쉽지 않았기에 나는 같은 조건으로 연장하길 희망하고 있었다.


그런데 집주인은 전세에서 반전세로 전환을 하자고 연락이 왔다. 그 당시 나에겐 청천벽력과 같은 이야기였다.




'지금 월세를 받겠다는 건가? 월세? 월세를 내면서 살아야 하는 거라고?'




나는 처음 경험하는 전세 스트레스를 엄마는 그 오랜 시간 동안 혼자 어떻게 견뎌 내셨을까. 지금이야 제도가 좋아져서 세입자들의 권리와 거주 안정성이 더욱 보장되는 분위기이지만 불과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그렇지 않았다. 2년마다 전세금을 올려달라고 하면 어쩌지, 월세로 바꾸자고 하면 어쩌지, 나가라고 하면 어쩌지, 그런 끝없는 불안 속에서 혼자 외로웠을 엄마를 생각하니 하루라도 빨리 내가 같이 집을 구하러 다녔으면 어땠을까 후회와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그렇게 나의 두 번째 전셋집 구하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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