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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담 Sep 23. 2023

Last Festival

 자, 축제를 준비하자.

나에게 축제를 기획할 능력이 있을 리 만무하나, 그래도 나름대로 나만의 축제를 계획해 보자. 거창하게 '축제'라 이름 붙이기 민망할 지도 모르겠다. 소소한 모임 정도가 될 수도 있으나 일 년에 한 번씩 열리는 것도 아니고 내 생애 딱 한번이니 파티나 모임이라는 명칭보다는 '축제'라 굳이 부르고 싶다.  '마지막'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고 내가 주최자가 되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개최되는 축제이기를 바란다.


 우선 축제 장소를 어디로 하나. 암만 생각해 보아도 실내는 원하지 않는다. 축제답게 야외 탁 트인 공간을 정해야겠다. 그래, 바다가 살포시 내려다 보이는 낮은 언덕에 위치한 우리집이 최고의 장소가 되겠네. 익숙한 곳에서 하는 행사이니 덜 떨릴 것이고, 초대한 이들에게 마지막 나의 공간을 선보이는 것도 좋은 기회일 것이다. 마당의 잔디와 나무들을 다시 정리해야겠다. 조금만 게을러져도 바로 티나는 저 어린 초록 생명들을 관리하는 게 갈수록 버겁다. 쳐다만 보아도 큰 기쁨을 주는 존재들이나 대가가 제법 크다. 옅은 크림 색상의 휘장을 멋드러지게 친 천막을 몇 개 설치해야겠다. 우리집 마당에서 보는 일몰이 얼마나 이쁜지 보여주어야지. 일렁이는 붉은 태양과 바다가 떠받치며 쏟아내는 금빛 물결의 어우러짐을 사랑하는 이들이 보기를 바란다. 삶의 막음과 하루 태양의 기울어짐이 이토록 닮았음을 하루하루 눈으로 본다.


 다음으로 개최 시기를 정하자. 너무 길지 않게 볕 좋은 가을 어느날 이틀로 하자. 저물어 가는 나의 삶과 닮은 가을이 딱 맞다. 공휴일이 없는 주간으로 주말은 안돼. 모두의 휴일을 빼앗을 순 없지. 힘든 월요일도, 기대되는 불금 금요일도 안돼. 축제 참여 자체가 싫은 날들이지. 자, 그럼 일주일의 중간인 수,목이 딱이네. 평일에 연차 내고 즐기는 축제는 또 짜릿하지 않을까. 다음 날이 금요일이니 하루 또 일하고 주말을 즐기도록 해 주자.


 이제 누구를 초대할까. 초대장은 정성스레 자필로 써서 보낼 것이나, 결코 억지로 부담을 주지는 말자. 사랑하는 가족들이라도 선약이 있을 수 있고 굳이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면 축제의 의미는 퇴색될 것이다. 축제는 그야말로 즐기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게 맞지. 초청 명단이라 하나, 누구라도 더 데려올 수 있도록 해야겠다. 궁금한 이나 그날 하루 무료한 이 누구라도 와도 괜찮다 하자.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가 많다. 고마운 이들이 이렇게 많은 삶이었다니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축제 내용이네. 계절마다 흐드러지게 피는 꽃 축제도 아니고 지역 특산물을 홍보하는 축제도 아니고 혹은 노래니 댄스니 문화 축제도 아니고, 무얼 하면 좋을까. 나의 마지막 축제는 오로지 행복했으면 촣겠다.

누구나 평생 행복을 추구하며 살지만, 정작 지난 삶이 행복했느냐고 물으면 몇이나 그렇다고 할까. 나 스스로 물질적이고 쾌락적인 욕망은 그다지 추구하지 않았다고 자부하고 그런 욕망이 나의 행복의 척도가 아니었음을 안다. 그렇다고 과연 내 삶이 지속적이고 정신적인 행복만을 추구했으며 그로 만족했느냐 하면 결코 아니다. 단지 늘 나 스스로를 잃지 않으려 했으며, 주어진 시간 현재에 최선을 다하며 행복을 찾으려 했다. 그래도 남는 것은 아쉬움 천지이다.

그러하니 마지막으로 행복 가득한 축제를 준비하자. 축제에 온 이는 긴장따윈 걸치지 않고 편안하게 즐기고 가도록 해야지. 하고 싶은걸 하고, 아니 아무것도 안해도 되는 시간들, 오롯이 그저 편안하게 주어진 시간을 보내면 좋겠다. 그래도 나의 축제이니, 나와 지난 추억을 얘기도 좀 하고 나의 손길 묻은 집안 여기저기 구경하며 한마디씩 해주고, 축복이든 간단한 목례든 아는 척도 해주면 좋겠다. 우리집 구석구석에 볼거리와 할거리가 좀 많은가. 쌓인 책들 집어 읽어도 좋고, 빈 이졜 앞에서 뭐든 그려도 좋고, 넓은 주방에서 직접 요리해서 선보여 주면 더욱 좋겠다. 2층 테라스에 마련된 간이침대에 누워 두 눈 가득 바다를 품은 채 한 숨 자고 나면 근심따윈 별게 아닌걸 알거야. 혹은 뒷마당에 조그맣게 마련된 온실로 가서 나름 공들여 아기자기 가꾼 식물들과 호흡을 같이 하면 온 몸에 새 숨이 가득차며 맑아지는 신기한 느낌을 경험해 봐도 좋겠다. 마음에 드는 화분은 집으로 데려가면 감사할 일이고.

그렇게, 뭐든 이 축제에선 거리낌 없이 그저 행복하면 좋겠다.


  축제의 마지막 폐회는 노을지는 바다를 다같이 바라보아야지. 같은 빛깔의 와인으로 건배하며 덕분에 한 세상 감사하게 잘 살았다고 인사해야지. 이 축제로 나의 장례식을 대신하니 이 세상에선 마지막 만남이라고 전해야지. 나머지 시간은 이제 오롯이 혼자 막음날을 받아들여 신에게 가고 싶다.


 과연 위와 같은 축제를 할 날이 언제일지 오기는 할지 알 수 없지만, 남은 내 삶의 가장 화려한 꿈일 것이다. 이를 위해 난 오늘도 최선을 다한다. 마지막 축제를 준비하니 앞으로 어떻게 살지 방향이 정해진다. 죽음을 계획하니 삶이 확실해지는 아이러니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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