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안도현님은 천재 시인이나 <연어>라는 서정성 깊은 소설가로도 각인되어 있다. 물론 그 전에 <우리가 눈발이라면>이라든가 <가을 엽서>에서 이미 그의 감수성 깊으나 삶을 포근히 안고 있는 시들에 매료되어 있기는 했었다.
"연어, 라는 말 속에는 강물 냄새가 난다."
그 첫 문장에 얼마나 매료되었던지. 주어진 운명보다는 존재 이유를 찾고자하는 은빛연어와 그를 묵묵히 지켜보고 사랑하는 눈맑은연어, 그들을 보며 삶의 시작과 끝에 대한 여정 속 태도에 대해 꽤 오래 고민하기도 했던 기억이 선하다. 초록강의 나긋한 충고는 내 맘에도 여운을 남겼다.
대구 출생과 성장, 전라도 원광대 출신 40여년 살이 후, 현재는 예천에 낙향하여 학생들을 위한 온라인 강의도 하시며 꾸준한 창작 활동과 이웃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의 특이한 삶의 여정은 낮은 곳에서 사랑이 시작되니더불어 살아가자는 그의 시처럼 새삼 따뜻하다.
개인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쉽고 일상적 시어를 사용하되, 민족과 사회의 현실을 섬세한 감수성으로 그려 낼 수 있는 그는 진정 천재인듯~ 시가 길고 난해하고 심오해야먄 하는지는 그 앞에서는 어설픈 기교일 뿐인것 같다.
그를 세상에 알리고 '연탄재 시인'이라 칭하게 한 시가 있는 94년 출간의 시집 <외롭고 높고 쓸쓸한>에는 짧지만 탄성을 자아내는 시들이 많다. 시인의 통찰력과 창의력은 그저 존경스러울 뿐. 97년 출간의 <그리운 여우> 시집에서도 두 줄 시는 등장한다. 전교조 교사로 활동 중 어려운 형편에 탈퇴 각서를 쓰고 복직한 그의 고뇌를 보여주는 것 같은 '퇴근길' 시는, 두 줄로도 아린 그의 심경은, 많은 이의 공감을 받기에 충분하다고 느껴진다.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시인이 '너'라며 꼭 찔러서 나를 부끄럽게 한다.
너와 나
밤하늘에 별이 있다면
방바닥에 걸레가 있다.
- 하찮은 존재로 취급받으나, 걸레가 없으면 어찌 방바닥이 반짝반짝 빛날 수 있을까. 나는 너와 사이에 그저 받기만 하는 방바닥인가 희생할 수 있는 걸레인가.....
퇴근길
삼겹살에 소주 한 잔 없다면
아, 이것마저 없다면.
-삼겹살 소주에라도 위로 받고자 하는 직장인의 애환...딱 그 심정 그대로 시가 되었다
인생
밤에, 전라선을 타 보지 않은 者 하고는
인생을 논하지 마라
-이 기차는 도피행인가, 또다른 시작의 모험행인가.
성찰이 없는 시작은 그저 무모하고 사랑이 없는 희생은 그저 죽은 의무일 뿐.
시인의 시는 끊임 없이 주변을 돌아 보게 하고
낮은 세상에 관심을 가지도록 종용하며 사랑하며 더불어 살자고 노래한다.
연탄 한 장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봄까지
조선 팔도 거리에세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 뭄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을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사랑의 본질을 이렇게 구체적으로 형상화할 수 있다니.
가을 엽서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 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그대여
가을 저녁 한 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 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참, 좋다.
나만이 아닌 ,서로 사랑하자는
특히나 낮은 곳으로 가 사랑하자는 그의 시는 삶과 닮아 있어 더 좋다.
"인간을 떠나 도를 닦는 것은 한낮 오락에 불과하고, 공부나 시도 생활이 되어야 한다"는 윤동주 시인의 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