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세의 젊은 나이에 차디찬 일본 후쿠오카 감옥에서 생을 마감한 그는 실제 총칼을 들고 싸운 투사도 아니며 그의 시에는 서릿발 칼날 진 저항이나 대항 의지가 강하게 드러나지 않음에도 '저항시인'이라는 타이틀을 지니고 있다. 문학 수업 시 항상 학생들에게 받는 질문 중 하나이다. 시만 보면 그가 저항시인인지 잘 모르겠다는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이육사 시인과 비교해 보면 두 분 다 저항시인이나 육사시인의 의열단 행적과 남성적이며 강한 저항 의지가 형상화된 시를 본 학생들에겐 당연한 의문일 것이다.
그러나, '어제 오늘 지난 일들을 돌아보고 반성한 친구들 있니? 지금 살고 있는 너희들 모습을 어떻게 스스로 평가할 수 있을까? 그 결과를 솔직하게 털어 놓을 용기는 있니?'라고 질문하면 쉽지 않음을 안다.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도 없으며,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한 시인 윤동주는 항상 스스로 내면을 응시한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총칼을 들고 싸우는 투사만이 독립 운동이 아니라 본인이 할 수 있는 시인으로서 천명을 인식하고 항상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부끄러움을 느끼며 이를 시로 표현하였으니 그의 시를 읽은 이로 하여금 그처럼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했으며, 현재의 삷에 더 충실하고자 힘을 얻었을 것이니 이 또한 독립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쉽게 씌여진 시>에 나타난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시가 이렇게 쉽게 씌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다'라며 본인의 시인으로서 천명을 받아들이되, 소극적 삶의 태도를 부끄러워하나, '나는 나에게 적은 손을 내밀어/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에서 스스로 성찰의 결과 앞으로의 삶을 다짐하는 시인의 갈등 극복 모습을 보여준다. 현재의 자신을 부끄러워할 수 있는 것은 더 나아갈 수 있는 출발이며 이는 윤동주 시에 너무나 잘 드러난다.
그런 의미에서 <윤동주 문학관>을 청운수도 가압장 물탱크를 개조하여 열린 우물과 닫힌 우물로 만든 것은 깊은 의미를 가진다. 그가 고향 우물-실제 생가에서 가져온 우물이 전시되어 있음-을 들여다보고 현재의 모습을 부끄워한 것처럼 방문하는 이에게도 '자화상'을 그려보게 하는 열린 우물(제2전시실), 그의 옥중 심정을 잠시나마 느껴보며 사색하게 하는 어두운 닫힌 우물(제3전시실)까지 윤동주의 삶을 가까이서 느껴볼 수 있는 곳이다.
결벽에 가까울 정도로 단정하고 깨끗한 성품은 그의 육필 원고의 깔끔하고 신중한 글씨체로도 확인할 수 있다. 창씨개명에 반대해서 일 년을 넘게 절필했던 그이나, 일본유학 직전 '히라누마 도쥬'로 창씨개명 후 지은 시'참회록' 원고에 어지러히 여기저기 낙서한 원고를 마주하면 그의 부끄러움의 심경이 너무나 잘 느껴져 가슴을 아프게 한다.
2년간의 연희전문학교 기숙사를 나와 소설가 김송 씨의 집에서 하숙을 했다던 그가 걸었던 인왕산 자락의 산책길을 따라 조성된 시인의 언덕에서 그의 삶이 집결된 '서시' 비석을 읊어 보며 그를 추모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보길....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 '길' 중에서
사람마다 놓치고 사는 것이 다를 것이나, 그래도 우리 모두 힘을 내어 잃은그것을 찾는 삶을 살아내고 있으며 가는 길을 계속 걸어 가야만 하는 삶의 길 위에서 윤동주 시로 위로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