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겪어왔던 사람들과는 결이 다른 사람들을 만난 두려움 때문인지, 자신도 자신을 주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무서웠던 탓인지 그는 이번일을 통해 자신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달라, 나는 할 수 있어'했던 자만과 교만이 와장창 깨져버린 얼굴에 몇 날 며칠 맘고생에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해 핼쑥한 얼굴을 보니 안쓰러웠다.
난 그가 항상 안쓰러웠다.
어린 나이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살아온 그의 삶이,
자기가 살고 자라온 나라를 떠나 나의 나라에서 외국인노동자로서 살기로 결단하며 사는 것도,
젊은 나이부터 희귀병을 투병하게 된 것도,
(나중에 이야기를 풀어 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는 강직성 척추염 환자이다.)
무엇보다도 그가 삶의 목적과 이유를 모른 채 그가 원하는 데로 살아가는 모습이.
질풍노도의 사춘기의 시기에 나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으며 무엇을 하고 살아가지라는 고민 따위는 하지 않고 지금 내가 원하고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아온 그의 허망한 삶들이 아까웠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첫눈에 반했다.
유리상자의 노래 중 "문이 열리네요. 그대가 들어오죠."라는 가사가 있는데, 문이 열리며 그가 들어오는 것을 보았을 때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도 앉아있는 나를 보며 그랬다고 하는데 그건 그의 마음이니 진실은 모를 일이다.)
그날부터 사귀자는 말이 없이 우리는 그냥 마음이 가는 친구가 되었다.
교회에 다니는 나를 따라 그는 교회를 가기도 했고 찬양을 부르며 피아노를 치는 나를 옆에서 지켜보기도 했다.
나는 그에게, 그는 나에게 스며들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하나님이 없이 사는 그에게 하나님을 알리고 싶어 했고 그도 나를 통해 궁금한 점을 물어보곤 했다.
연애가 길어지며 국제연애의 특성상 떨어져있는 시간이 길었지만 무엇이 우리를 묶어 놓았는지 우린 헤어지지 않았다.
선교사를 꿈꾸었던 나는 하나님이 가라고 하는 곳에 가고, 멈춰라 하는 곳에서 멈춰서 살고 싶었고, 그는 그런 나의 삶을 존중했다. 하나님은 잘 모르지만 네가 가는 곳에 나도 함께 가겠다고 했고 그렇게 우린 부부가 되었다.
결혼 초기 종교로 인해 갈등이 갑자기 시작될 때 나는 제법 당황했다.
이미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알고 나의 삶의 방식을 안 그 사람이 나의 존재자체를 부정한다는 느낌이 들어 초기에 이혼을 해야 하는 것인가 생각하기도 했다.
언쟁을 높이며 싸우다 화가 난 남편이 밖으로 산책을 나간 사이 내 마음에 스치듯 한 생각이 들었다.
'너는 선교사가 되고 싶다면서, 니 남편도 전도하지 못하면 되겠니? 니 남편부터 전도하는 것이 시작이야.'라고.
그때였다. 그에게 인간의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알려주고 싶다고 결심한 날이.
하지만 남편에게 믿음을 전하는 것은 내 일생의 과업이라고 할 만큼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하루만 보고 말 사람이 아니기에 나의 강한 말 한마디는 그를 멀리 떨어지게 할 수도 있을 것이고
나의 행동하나 삶의 모양들이 기독교인 전체를 폄하하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결혼 초 종교로 인한 분쟁의 시기를 겪으며 나는 한발 물러서 그를 바라보았었다.
그런데 시기적으로도 혼란하고 우리의 관계조차 혼란한 시기였던 그 날. 그에게 나는 처음으로 칼을 들었다.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싶다는 것을 행동으로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의 힘으로는 도박을 끊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으니 같이 교회에 가자 그리고 같이 카지노에 가서 출입금지 신청을 하자라고.
거절하면 어떡하지, 내가 너무 강하게 말해 튕겨나가 버리는 것을 아닐까 두려워하며 입을 여는 나의 마음을 알았는지 그는 순순히 알았다고 했다.
카지노 출입금지 신청은 본인 또는 가족이 신청할 수 있는 제도이다.
내가 도박을 스스로 조절할 수 없으니 내가 와도 카지노 측에서 나를 출입할 수 없게 막아달란 뜻이다.
각 카지노마다 규정은 좀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신청 시에는 해당인의 신분증과 가족관계증명서가 필요하다.
어떤 카지노의 경우 가족이 서류만 준비해 당사자 없이도 처리가 가능하기도 하다.
진작 왜 카지노 출입금지를 하지 않았느냐 묻는다면, 그의 의사를 묻지 않고 내가 일방적으로 처리할 때의 부작용을 염려했다. 이 생에 도박이라는 것은 카지노 외에도 불법도박도 있을뿐더러 사회에서 관용하는 주식, 코인, 경마 등 빠질 수 있는 나쁜 길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 마라 하지 마라 하면 더 하고 싶어 지듯,
그에게 그런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그가 먼저 가자고 할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우린 함께 그곳에 가기로 했다. 아기띠를 매고.
30여 년을 살면서 카지노라는 곳이 시내 한 복판에 우리가 아는 유명 호텔들의 어두운 면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그곳에 나의 남편이 출입한다는 사실도.
어두운 주차장을 지나 카지노를 향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 평범한 복도를 따라 걸으니 새로운 환경이 펼쳐졌다.
화려하고 밝고 반짝였다.
카지노라고 적혀 있지 않았다면 놀이공원의 입구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유니폼을 차려입은 직원들, 정장을 입은 보안직원들, 그 사이로 너무나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이 카지노로 신분증을 내며 들어갔다.
들어가는 것은 너무나 쉬웠다. 이곳에 무슨 목적으로 왔는지 이곳이 어떤 곳인지 묻는 사람은 없었다.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돈을 땄고 얼마나 많은 돈을 잃었고를 큰소리로 통화하는 아저씨들부터
하하 호호 장난치며 기대감으로 가득 차 들어가고 있는 20대로 보이는 젊은 청년들까지.
누군가의 가족인 그들은 우리를 쳐다보며 시선을 멈추었다.
말하지 않아도 우리가 어떤 일로 왔을지 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그들의 하고자 하는 행동을 멈출 사유는 아니었다. 그건 나의 일은 아니기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도박중독자인 남편과 아빠를 둔 가족입니다라고 광고하지 않아도 휘황찬란한 카지노의 입구 앞에서 우리는 너무나 이질적이었다.
거기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보안요원이 먼저 다가와 나에게 어떤 일로 왔는지 물었다. 카지노출입금지 신청을 하러 왔다 하니 작은 방으로 안내했다.
담당자가 와 출입금지 신청에 대해 설명하며 서류를 확인한 뒤 카지노 출입금시 신청서류에 서명하라고 했다.
안내에 따라 신청을 완료하고 나올 때 그는 시원 섭섭(?)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안녕이다."라는 말을 하곤 말이다.
나는 반대로 신청이 너무나 간단하게 끝나버려 허무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이렇게 간단한 절차면 그가 카지노에 출입하지 못하는데 나는 그간 얼마나 슬퍼하며 기다렸나 싶었다.
결심은 순간이었다.
결심을 책임질 행동만 남았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