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이었을까?
서울에 살게 된 지 4,5년이 지났을 때 즈음,
우리에게 아기가 찾아왔다.
입덧이 심하기도 했고
원래 먹는 게 시원치 않았던 나를 걱정한 남편의 의견에 따라
임신 초기 나는 친정에서 지냈다.
남편은 지방 출장이 잦았고,
출산 후, 도움이 없는 서울에서 홀로 육아를 하기 어려울 거라 생각해 친정 부모님 근처로 이사를 생각했었다.
집을 알아보고 계약금을 내야 할 수도 있어 목돈을 좀 가지고 있을 때였는데
아침에 자고 일어나 보니
새벽에 몇 은행 ATM기에서 여러 차례 백만 원씩 출금된 알림이 보였다.
너무 깜짝 놀라 부모님을 불렀고,
부모님은 당황하지 말고 경찰서에 전화해 신고하고 은행계좌를 묶는 것과 카드분실신고 등을 해보자 하셨다.
정신없이 은행 카드사에 전화해 카드정지 등을 요청하다
나도 모르게 "그런데 어디 ATM에서 출금되었는지 나오나요?"라는 질문을 했다.
"어느 지점까지는 나오는데.. 잠시만요..
근데 고객님, 출금 계좌에서 카드로 비밀번호를 정확하게 누르고 정상출금된 기록으로 나오는데
혹시 가족 중에 카드 가지고 계신 분이 있지 않으세요?"라 했다.
"네? 아 그래요? 네, 확인해 보겠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은 뒤, 그제야 남편이 생각이 났다.
남편에게 전화를 거는 순간까지도 나는 남편이 카지노에 갔을 거라 생각지 못했다.
'남편이 열심히 번 돈을 실수로 잃어버린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놀랠 텐데 어쩌지.'라는 생각들을 하다
"여보세요."라는 소리에 나는 다다다다 이야기를 했다.
조용한 수화기 너머 그는 말했다.
.
.
"그거 내가 쓴 거야."
.
.
그날이 시작이었다.
나중에 듣게 된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카지노에 작은 호기심을 가지고 있던 그는
일로 알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로 서울에 카지노가 있단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어느 날, 혼자 자려고 누웠는데 '어차피 내일 쉬는데 갈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나와 남편은 신용카드가 아닌 평소 현금, 체크카드를 쓰기도 했고
마침 집에 두었던 현금이 아른거려 그걸 가지고 카지노에 홀린 듯이 갔다고 한다.
물론 다 잃을 수밖에 없었고 밤에 터덜터덜 돌아와 자려고 누웠는데
잃은 돈을 어떻게 설명할지 걱정되었고
잃은 것도 분하고 다시 가서 잃은 돈을 찾아와야겠단 생각에 카드를 챙겨 나가 밤을 새우며 도박을 한 것이었다.
담담한 요즘 날들과 다르게
그날의 나는 눈물이 펑펑 쏟아져 내렸고 화가 나 그에게 악다구니를 부렸다.
정신 나간 놈, 미친놈, 썩을 놈, 별에 별 놈은 다 나왔던 것 같다.
그때 엄마가 방문을 열었다.
"ㅇㅇ 아, 너 그만 울어. 애기한테 안 좋아. 너 계속 같이 살 거야?"
"....................... 응..."
"그럼 그만 싸워. 너 서울에 올라가게 데리러 오라고 해."
눈물도 많고 마음도 여린 우리 엄마는 큰일에는 항상 담대했다.
요즘 말로 "엄마 T야?"라고 할 정도로 엄마는 감정해소보단 해결책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점심때를 조금 지나 친정으로 온 남편은 눈이 퀭했고 얼이 빠진 사람이었다.
엄마 아빠는 그를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드라마처럼 아빠와 엄마가 이 놈 자식! 이 놈 자식! 하며 등짝을 때리지도 않았다.
그저 방에 들어가 방문을 닫고 기다리셨다.
밤새 카지노에 있던 남편을 보고 왜 난 안쓰러웠을까.
이미 해야 할 말을 다 전화로 쏘아붙여서 인지 나는 그를 재웠다.
새근새근 속 좋게 자는 얼굴을 보자니 한 대 쥐어박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저녁때가 되자 엄마는 저녁은 먹고 내일 아침에 올라가자 했고,
모두 힘드니 간편히 중식을 시켜 먹자 했다.
밥을 먹는 순간에도 아빠 엄마는 일상과 같았다.
밥을 먹기 전 남편이 "죄송합니다." 했을 때
부모님은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이제 하지 마렴."
그게 끝이었다.
우리는 모두 그 일이 한 번으로 그칠 일이라 생각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