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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스틴 May 31. 2024

나는 도박중독자의 아내입니다.

안녕하세요.


제목을 보고 이 글을 클릭하셨다면

제목이 궁금증을 자아내게 자극적이어서

혹은 내 주변인, 내 자녀가 도박, 게임 등의 중독성향으로 인해 고민하고 계시는 분은 아닐까라고 생각해 봅니다.


앞으로 이어질 저의 이야기들을 나누기 앞서,

저와 제 남편의 이야기를 잠깐 해보려 합니다.


저희는 국제결혼을 한 커플입니다.

저는 한국인, 남편은 중국인입니다.


2009년 중국에서 남편을 처음 만나

2013년 중국에서 결혼하고 지금은 한국에서 살고 있는

어느덧 결혼 11주년을 맞은 부부랍니다.


남편과 저는 함께 영화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했어요.

예전 저희 시대에 유행했던 주윤발의 도신이라는 영화를 아시는 분이 있으실까요?

화려한 카지노 모습, 수려하고 멋진 주인공들을 보며 자란 남편은 가끔 저에게 언젠가 해외에 나가면 카지노에 한 번 가보고 싶어라고 말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라스베이거스 또는 마카오의 카지노에 한 번 가서 구경해보고 싶다는 사람이었죠.

그럴 때마다 전 "그래. 다음에 기회 되면 한 번 가봐. 그 대신, 꼭 같이 가. 정신 못 차리면 데리고 나오게."라고 말했습니다.


인생에 왜? 가 없이 그저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고 불평하지 않는 것이 편안해 새로운 것에 대한 동경이나 궁금증이 없던 저는 항상 새로운 것을 보며 눈이 반짝이고 한 번 해보고 싶어 하는 남편의 모습이 신기했습니다.

'나와는 참 다른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면서요.


중국은 내국인 도박이 불법이고 처벌도 상당하지만

남편과 제가 한국, 서울에 살게 되면서 남편은 외국인이라는 신분을 가지게 됩니다.

외국인 등록증 또는 여권으로 카지노에 갈 수 있는 사람이 되었죠.


도박에 빠지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던 이과적 머리를 가진 공대생이었던 그는

2016년부터 2023년까지 카지노에 들락거렸습니다.

(2024년 5월 오늘까지는 다행히도 가지 않았네요.)


도박중독자로 사는 그를 왜 떠나지 않았냐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이혼이 흠도 아니고 이혼을 선택하는 게 잘못도 아니니까요.

저 또한 이혼을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입니다.  


남편과 연락이 안 되는 날들,

"나 지금 카지노야."라고 말하는 남편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번이 마지막이야. 한 번 더 노력해 보자.' 했던 마음들이 무너져 내린 수많은 날 밤에

저는 고민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게 저희의 마지막입니까? 이 사람은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이 아닌 걸까요?

회복될 수 없는 사람일까요? 아이를 위해서라도 헤어지는 게 맞을까요?" 라구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마음에 떠오르는 말이 있었어요.

결혼식에서 낭독했던 서약서의 한 구절이었죠.


"그리스도가 제게 그러하셨듯이 언제까지나

떨어지지도, 폐하지도, 그치지도 않는 사랑으로 그를 사랑하겠습니다." 


네, 바로 이 서약이 제가 도박중독자의 아내로 지금까지 살고 있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오해하지 마세요.

도박중독자의 아내로 살기로 결정한 것은 저의 선택일 뿐,

여러 가지 이유로 이혼을 결정하였다고 해서 그 결정이 옳지 않다고 말하고 싶은 건 절. 대. 아닙니다.


이혼을 하는 것도, 이혼을 하지 않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세상에는 다양한 결정들이 있을 수 있고 다양한 가정의 모양들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남편이 들으면 마음이 나태해질 수도 있겠지만

사실 전, 남편은 언제든 다시 도박에 빠질 수 있다는 마음을 갖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의 전 그를 사랑할 것이고,

지금까지 이겨내 왔던 것처럼

우리는 다시 일어나 회복을 위해 노력할 것을 믿고 다짐하기 때문이죠.


다만 제가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저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또는 그들의 부모 형제 자녀로 고생해 왔던 분들이 이 글을 읽으며 위로받고 힘을 얻길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당신을 응원합니다.

당신을 축복합니다.

회복을 기도합니다.


당신의 삶에, 가정에 평안이 가득하길 바라며

내세울 것 없고 부족한 저의 이야기를 나눌 때 작은 위로가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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