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크리스틴 Jun 11. 2024

2. 내가 남편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

도박중독자의 가족에게는 병이 있다.


"공동의존(codependency)"이라는 것인데,

간단히 말하면 도박중독 알코올중독 등의 중독성향을 겪는 중독자의 행동이 가족이 삶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어 긍정적 또는 부정적으로 중독자들을 통제하고자 하며 맺어지는 관계를 말한다.


자신의 가족이 중독에 빠졌다고 생각이 들게 되었을 때 행동의 양상은 여러 가지로 나누어진다.


가족의 중독이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한다거나, 중독자의 행동을 자신의 힘으로 통제하려고 애쓴다거나,

혹은 그 반대로 중독자가 자신만이 필요할 거라 생각하여 오히려 절제를 막는 양상을 보이는 사람도 있다.

안타깝게도 같이 중독에 빠지는 사람도 있고 용기와 의지를 잃어 낙담하기도 한다.


아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남편은 다시 유혹에 넘어졌다.

나를 제외한 남편의 가족들은 이혼만은 시키지 않으려 나에게는 사실을 숨긴 채 그의 도박빚을 갚아주며 정신 차리길 바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은 더욱 커졌다.


그때였다. 한 번의 실수가 아닌 중독의 시작.


남편의 일을 알게 되었을 때 이상하리만큼 난 담담했다.

나는 작은 일에 마음이 동요되기도 하고 감정표현이 크고 잦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난 담담히 "알았어. 괜찮아, 우선 집으로 와."라고 말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네이버에서 도박중독을 검색해 상담센터와 치료법을 검색했다.


1336번.

밤늦은 시간에도 운영하는 도박중독상담센터로 전화해 상황을 이야기했다.

상담사는 내 얘기를 담담히 듣고는 상담을 받아보는 게 어떻냐 제안했다.

도박중독자인 그가 아니라 내가 상담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면서 우선 나는 당장 다음날 아이를 안은채 상담센터로 향했다.


그때 알게 되었다.

나에게 공동의존의 수치가 좀 높다는 것을.

그 당시에는 내가 남편에게 많이 의존해서 그 수치가 높다고 생각했고 그게 무엇인지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상담사는 나에게 이혼을 또는 지속적인 결혼생활하라 제안하지 않았다.

그저 내 이야기를 들었고, 도박중독은 질병이라는 설명과 도박중독자의 가족으로 해야 할 행동과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알려주었다.


해야 할 행동은 그가 없이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의 삶과 나와 아이의 삶을 분리하는 것이었고.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은 무자비한 화와 지키지 않을 협박성 멘트였다.

예를 들어, "또 한 번 도박하면 우린 이혼이야.(헤어지지 않을 거면서) 또 한 번 도박하면 나 죽는 거 보는 거야.(죽지 않을 거면서)" 같은 말들 말이다.


그래서 나는 그때 생각했다.

'남편은 정신이 나간 것이 아니라 아픈 거구나.

정신이 아픈 사람에게 소리 질러 무엇하며 협박성 말들을 던져 무슨 소용이 있나.

낫길 기도하자'라고.


나와 남편은 결혼을 준비하며 <용기와 구원>이라는 영화를 함께 보며 결혼 서약서를 작성했었다.

영화는 미국 작은 도시의 경찰관들과 그들의 가족의 이야기인데, 각각의 가족은 믿음으로 살려고 노력하지만 크고 작은 사건으로 무너지며 믿음의 뿌리가 흔들림을 경험한다. 하지만 용기 있게 다시 믿음으로 일어섬을 선택한다는 내용이다.


내가 이 영화를 남편과 같이 보고 싶었던 이유는, 믿음을 가지고 살면서 믿음을 잃을 수 있는 여러 환경들이 벌어질 것인데, 그때마다 우리를 일어나게 하는 것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좌절에 빠져있는 그보다 먼저, 나는 용기 있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그를 아는 모든 이들이 심지어 부모도 그를 포기할 그때에, 나는 그를 위해 기도하기로 했다.


나는 집에 온 그를 여느 때와 같이 맞이했다.

"왔어? 씻고 밥 먹어. 먹고 좀 자."


이상하게도 나는 그가 도박을 했다는 미움보다 집을 돌아왔다는 안도감이 더 컸다.

고개를 숙이며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그를 보아도 밉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은 집이 그에게 안식처가 되었다는 뜻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혼 전 어떤 집(가정)을 가지고 싶다고 생각할 때마다 난 빨리 집에 들어오고 싶은 집을 가지고 싶었다.

이것을 기억하는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이후로도 그는 사건이 있어도 항상 집에 들어왔다. 아니 집으로 돌아오고 싶어 하는 그의 마음을 알아 집으로 들어오게 했다.


그리고 그에게 말했었다.

"여보, 다시 한번 노력해 볼 마음이 있어? 노력할 마음이 있다면 그럼 나는 너를 포기하지 않을 거야.

내가 너를 절대 떠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지만, 그것이 도박이 이유가 되진 않을 거야."라고.


그가 들어오지 않는 밤,

새근새근 잠드는 나의 귀여운 아가를 재워놓고 기도했었다.


"하나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 그때에도 한 번 더 용기를 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저에게 미워질 수 있는 눈을 주세요. 미워지는 마음을 주세요."


결론적으로, 나는 아직도 그가 밉지 않다.

미운 순간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도박하는 그가 밉지 않다.

혹자는 뭔 개뼈다귀 같은 소리냐 하겠지만 사실인걸 어찌하리.


그것은 사랑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사랑이다.

작가의 이전글 1. 어느 날 새벽, 나에게 다가온 출금 알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