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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스틴 Jun 24. 2024

4. 괜찮아, 다시 돌아와 집으로.

어둠의 기운은 스멀스멀 올라왔다.


미리 알아챌 수 있지 않느냐라고 묻는다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작정하고 속이려는 사람을 어찌 당하리.


새벽에 눈 비비고 일어나 남편을 배웅할 때에도

일하고 지쳐 돌아온 남편을 맞이할 때에도 난 알지 못했다.

그가 다시 카지노에 갔다는 사실을.


야근을 한다고 하거나

지방에 출장을 간다고 할 때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연락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출근하면 출근했다 카톡/전화하는 사람이었고

점심 먹으면 점심을 먹는다고 전화와 메뉴를 사진으로 보내기도 했기에

매일매일 무난하게 이어지는 연락들 속에서 그의 불안함과 흔들림은 느끼지 못했다.


월급날이 되어가고 남편이 밖에서 통화하는 시간이 길어질 때,

알 수 있었다. 무언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월급날이 되어갈 무렵 남편은 카지노에 숨어버렸다.

정확히 말하면 카지노에서 나오고 싶어 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는 회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월급을 가져다주지 못할 핑계를 찾지 못했을 것이고

정확한 좌우 사정을 설명하기엔 자신조차 자신이 왜 이런 일을 행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멀쩡하게 집으로 돌아와 "나 사실 카지도 갔어."라고 말할 용기가, 그는 없었다.


퇴근했다는 연락이 없고 연락이 한참 동안 안 될 때

나는 알았다. 그가 그곳에 있다는 걸.

받지않을 전화를 몇 번 하다 카톡을 남겼다.

"카지노야?"

의외로 그는 카톡에 답장했다.

"응. 미안"


얼굴을 보지 않고 말을 해서 그런 것일까 카톡으로 연락이 된 것이 반가워 바로 전화를 걸었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무서웠을 것이다.

회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떨렸을 것이다.


선악과를 따먹고 숨은 아담과 하와처럼..


그의 마음을 이해하기에 카톡으로 남겼다.

"괜찮아, 그만하고 집에 와."

  

그러자 영상 통화가 걸려왔다.

수척해진 남편이었다.

단지 약 하루정도 못 봤을 뿐인데 정신이 피폐해져서인지

화면 속의 그는 무척 어두웠다.


카지노 내 흡연실에서 영상통화를 건 그는 나에게 헤어지자고 말했다.

여기서 그만하고 싶다고 했다.

다시 일어날 수 없을 것 같다고, 나가서 어떻게 무엇을 하며 살겠냐고 했다.


나의 아기는 어느 정도 말을 배워가고 있었다.

화면 속 아빠를 보고 "아빠 보거시퍼(보고 싶어), 빠리와(빨리와)."정도의 구사력을 가진 아기를 두고 그는 그곳에 있었다.


영상통화 속 한참을 말없이 그는 담배를 피웠고

나는 그를 조용히 바라봤다.

우리 사이에 옹알이하는 아이만 해맑을 뿐이었다.

아이 앞에서 남편에게 소리치지도 울며불며 속상함을 표출하고 싶지도 않았기에

난 담담히 말했다.


"ㅇㅇ야, 그만 집으로 와. 아기도 재워야 하고 나도 기다리기 힘들어. 늦었어."

"가서 뭐 해."

"뭐 하긴, 살아야지. 우선 일어나서 집으로 와. 출발할 때 연락해."


전화를 끊고 아이를 잠자리에 들게 한 뒤

그제야 난 울 수 있었다.

기도할 수 있었다.

하나님 집으로 보내주세요.

돌아온 탕자가 되길 바랍니다. 새롭게 하소서.


그러나 그는 쉽게 일어설 수 없었다. 카지노를 나오지 못했다.

카지노에서 나오는 그 순간.

가상의 세계에서 현실로 발을 돋을 그 용기가. 없기 때문이었다.


흔히 도박중독자들은 안하무인이고 책임감이 없고 자신만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저런 행동을 한다 말할 수 있지만(어느 정도는 사실) 그들안에도 깊은 좌절과 우울들이 자리 잡아 있다.

그들도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었다.


그는 도박중독센터 상담을 통해 칭찬과 격려를 받았고 어느 정도 회복을 한 상태였지만

다시 카지노에 가게 되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다른 사람과 달라. 나는 잘 회복할 거야. 난 도박다시는 안해. 다시는 카지노 안 갈 거야."라는 다짐이 물거품이 된 현실 앞에 그는 다시 일어나기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그를 나는 놓을 수 없었다.

난 그저 그에게 말할 뿐이었다.


"ㅇㅇ야, 괜찮아. 다시 돌아와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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