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늦은 아이 키우기
'엄마' '아빠' '아빼빼' '하비애'
첫째 딸이 36개월이 다 되도록 할 줄 아는 말은 이 네 단어 정도였다. 말은 진직 다 알아듣고 옹알이도 많이 했지만, 다른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위 네 단어였다.
나는 육아서대로 아이를 키우고자 노력했었기에 첫째가 아가였을 때 TV를 켜지 않았고, 신생아를 보며 하루 종일 이야기를 해줬다. 말을 많이 들려주면 말문이 트이는데 도움이 되고 아이의 뇌, 정서 발달과 어휘력에도 좋다고 책에서 읽어서이다. 초점책을 보여주며 말을 걸고, 매일 그림책을 무진장 읽어주며 키웠는데 36개월이 다 되어가도록 도무지 말문이 터지지 않았다.
딸은 36개월까지 초예민쟁이였는데 말이 통하지 않으니 저도 답답하고, 우리는 안타까웠다. 치료 센터라도 가봐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할 때에 시어머님께서 남편이 말이 늦었다고 조금 더 기다려보라고 하셨다. 그래도 불안해하던 차에 영유아 검진을 갔더니 의사 선생님께서 "부모님 중에 말 늦은 분 계시죠?"라고 먼저 물으셨다. '엄마, 아빠'라는 말을 할 줄 알고, 말을 다 알아들으면 언어적 문제는 없다고 본다면서 부모 중에 말이 늦은 사람이 있었다면 그 영향이 클 거라고 말이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몇 달 뒤 36개월이 지나자 딸은 거짓말처럼 수다쟁이가 되었다. 그동안 못했던 말을 다 쏟아놓기로 결심한 것처럼 쉴 새 없이 재잘거렸다. 오죽하면 말하는 것으로 에너지를 다 써서 살이 안 찐다고 할 정도였다. 말문이 터지자 예민함이 많이 줄어들었다. 마치 다른 생명체가 된 것처럼 정말 순한 아이가 되었다.
이와 반대로 둘째 아들은 18개월부터 2~3 단어로 된 문장을 말했다. 하지만 까칠함은 이 시기부터 시작되어 36개월에 절정을 찍고 조금씩 좋아졌다. 어른들은 둘째를 보고 역시 누나가 있어서 말이 빠르다고 하기도 하셨다. 나도 나 혼자 말해주는 것보다 누나의 수다까지 더해주니 들리는 말의 양이 많아져서 둘째가 말이 빠르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이 생각도 완전히 무너졌으니! 셋째는 누나, 형아가 있었지만 말이 늦었다! 첫째처럼 36개월이 지나서야 제대로 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셋째 때는 나도 경험이 있어서 크게 걱정하지 않고 기다릴 수 있었다. 우선 아이가 말을 잘 알아듣고, 엄마 아빠 정도의 단어는 말할 줄 아니까 말이다.
육아서에서 말한 대로 아이가 자라지는 않는다. 큰 발달 과정은 따라가지만 조금씩 빠르고 늦으며 타고난 기질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는 것 같다. 아이의 말이 늦어 고민이라면 위에 의사 선생님이 나에게 해 주신 말을 기본으로 판단해보고 기다려주면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덧.
아이에게 말을 많이 들려주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인 것 같다. 우리 첫째와 막내는 말문이 터지자마자 다양한 단어를 쓰며 문장을 구사했다. 과학적인 근거는 잘 모르겠지만, 입으로 소리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 아직 발달하지 않았던 것이지, 머릿속에서는 그동안 들은 말들로 어떤 말을 할지 꽉 차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니 혹시나 아무리 책을 읽어줘도 소용이 없다고 느끼는 엄마가 계신다면 다 쌓이고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