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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아쑤아 Oct 14. 2022

아이의 문제는 다 부모의 잘못일까?

같은 부모, 같은 환경, 다른 아이들/ 삼남매 육아/ 삼남매 키우기

만약 내가 딸 하나만 키웠다면 떼쓰는 아이를 보고 속으로 이렇게 말했을지 모른다. 

"어머.. 저 엄마는 육아서 좀 보지. 어떻게 키우길래.."


'금쪽같은 내 새끼' 같은 프로그램이나 비슷한 다른 육아 프로그램을 보면 아이의 문제는 대부분 부모의 잘못된 육아에서 온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솔루션을 받고 부모가 바뀌면 아이들이 거짓말처럼 달라진다. 하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같은 환경, 같은 부모 밑에서 자란 우리 세 아이는 달라도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첫째 딸은 육아서 대로 자란 아이다. 36개월까지는 초예민쟁이였지만 말문이 터지고 나서부터는 다른 생명체로 태어난 것처럼 모든 면에서 순둥이가 되었다. 말을 하게 되어 답답함이 사라져서 그렇다고 하기에는 신기할 정도로 갑자기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았다.


'엄마 냄새' 라는 책에 따르면 이것은 정상이다. 그 책에서는 '임신기간은 3년 10개월이다' 고 말한다. 생후 36개월까지는 임신기간이라고 생각하고 엄마가 아이를 품으면,. 그 이후에 아이는 다른 생명체가 된 듯 태어난다고 했다. 첫째는 정말 그랬다. 그래서 첫째를 키우는 동안은 육아서를 맹신(?)했다. 


첫째는 입이 짧아서 이유식 시기 동안 나를 전전긍긍하게 만들었는데 36개월 이후로는 밥도 잘 먹었다. 먹는 양이 많지는 않아도 가리는 것 없이 골고루 잘 먹으니 엄마의 일거리가 반으로 준 것 같았다. 동생이 워낙 잘 먹으니 '안 먹으면 내 것은 없겠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딸은 책도 잘 읽고 좋아한다. 아기 때부터 꾸준히 책을 읽어주며 키웠는데, 3학년 때까지는 자기 전에 항상 책을 읽어주었다. 12살이 된 지금은 어른이 읽는 책이나 두꺼운 책도 관심이 있다면 거부감 없이 읽기 시작한다. 예민하긴 하지만 짜증이 많지 않은 성격이라서 친구들과도 큰 문제없이 잘 어울리고 집에서도 동생들과 잘 지낸다.


둘째 아들은 육아서와 반대로(?) 자란 아이다. 신생아 때부터 초 예민쟁이였던 딸과는 달리 아들은 정말 순했다. 잘 웃고, 잘 먹고, 누워서 낮잠도 자고.. 그래서 나는 '아들들은 원래 순한가 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착각도 잠시.. 둘째는 18개월부터 머리를 박기 시작했다. 왜 그랬는지 그때도 지금도 잘 모르겠다..

이 아들 덕분에 나는 정말 많은 육아서를 읽고 공부를 하며 아이들을 키웠다. 둘째에게는 책의 어떤 내용도 효과가 없었지만... 이때부터 아이들은 책대로 자라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유아기 떼쟁이 시절을 비교하면 지금 둘째는 매우 바람직한 모습으로 자랐다. 하지만 타고난 예민함과 까칠함이 있기에 감정 표현이 격하다. '욱' 함으로 표현되는 짜증은 늘 나를 힘들게 한다. 학교에서는 리더와 개그맨의 모습을 같이 가지고 있다고 하니! 정말 내 아이라고 다 안다고 생각하면 크나큰 착각이다.


누나와 똑같이 책을 읽어주며 키운 둘째는 책을 싫어한다. 아니, 글 읽는 것을 싫어한다. 이는 어쩌면 시각적이고 움직이는 것에 반응한다는 남자의 뇌 특성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읽어준 세월이 무색할 만큼 글 읽는데 흥미가 없다. 그래도 3학년이 되니 읽는 속도도 빨라지고 누나가 재밌다고 추천한 책을 읽기도 해서

나는 더한 바람을 갖지 않기로 했다. 


아들 키우기가 너무 어려웠던 나는 셋째가 생긴 것을 알았을 때 어차피 생긴 셋째라면 딸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또 아들을 주셨다. 임신 중 검진에서 아들임을 알았을 때 나도 모르게 '아.. 하느님께서 나를 버리셨네..'라고 말했었다.


그렇게 태어난 막내아들은? 같은 아들이지만 막내와 둘째는 매우 다르다. 막내는 잘 먹고, 잘 자고, 잘 웃는 순둥이였다. 둘째도 18개월까지는 순했었기에 나는 막내도 언젠가 돌변할 거라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8살이 된 지금까지도 막내는 여전히 순한 아이다.


셋 중에 가장 책을  읽어주며 키운 아이가 막내이다. 첫째, 둘째 때 이미 유아기 책을 너무나 많이 읽어줘서 그림책 읽어주기가 지겨웠다. ^^;; 첫째 때문에 문고본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는데 길게 이어지는 스토리가 정말이지 재미있었다. (요즘 청소년 문한 진짜 재밌다!) 그래서 어쩌다 보니 막내는 그림책 단계는 건너뛰고 문고본 책을 듣다가 잠드는 시간이 많았다.


그리고 막내가 5살 때부터 내가 일을 시작했기에 할 일도, 공부할 것도 많아져서 막내 책 읽어주기에 소홀해졌다. 이 점은 지금도 가장 미안하고 아쉽다. 어쨌든, 가장 책을 못 읽어주며 키웠는데 막내는 셋 중 감성과 공감력이 제일 뛰어나다. 본능적으로 엄마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와서 '엄마 괜찮아?'라며 안아준다. 예쁜 것을 보면 먼저 이야기하고 등원 길에 떨어진 꽃을 주워 엄마에게 주는 예쁜 행동도 많이 했다.


이런 감성을 발휘해서 가끔 깜짝 놀랄 문학적 표현을 하기도 한다. 벚꽃을 보러 가서 '나무에 팝콘이 열려있다'라고 하거나, 자꾸 뽀뽀하는 아빠에게 '그러다 내가 닳아서 없어지면 슬프지 않겠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꼭 책을 많이 읽어야만 사고력이 발달하는 것은 아닌가 보다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세 아이를 똑같이 사랑하며 키웠지만 똑같이 대하며 키우지는 못했다. 세 아이의 타고난 기질과 성격이 다르기에 나도 다르게 반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부모와 같은 환경에서 자랐고 우리 부부는 늘 공평하려고 노력했기에 크게 다르지는 않은 양육환경일 텐데 세 아이는 참 다르다.


그래서 나는 육아에 불변의 진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이의 문제가 다 엄마 아빠의 잘못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딸 하나만 키웠다면 '책 좀 읽고 키우지~그럼 애들이 문제가 없을 텐데~' 이런 말을 하는 재수 없는 여자가 되어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들들을 키우면서 '책대로 되지 않는 일도 있음'을 깨달았고,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경험 하며 겸손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이렇게 육아는 여러 가지 면에서 엄마도 같이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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