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수를 처음 만난 날 유치원 선생님들이 나에게 한 말이다. 담임선생님은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나에게 진수의 특징을 말씀해 주시며 진수를 잘 부탁한다고 하셨다. 원감 선생님은 나를 교장 선생님께(진수의 유치원은 OO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었다.) 소개할 때 ‘저번에 말씀드렸듯이 아이가 정말 유별나요’라는 말을 덧붙이셨다. 다른 선생님들도 나를 살짝 안타까운(?) 표정으로 보셨고, 미화 선생님도 ‘아이가 다루기 많이 힘들다고 들었어요’라고 하시며 걱정하셨다. 진수는 유치원에서 유명인사였다.
진수와 처음 만났을 때 ‘내가 이 아이를 바꿀 수 있을까? 나한테 그런 능력이 있나?’ 하는 생각에 앞으로 수업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두 번째 만났을 때 ‘진수야, 진수 선생님 왔다’는 담임선생님 말씀에 교실에서 뛰쳐나와 나를 꼭 안는 진수를 보며 왠지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졌고, ‘나는 꼭 진수를 행복하게 해 줄 거야’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무엇보다 진수를 이해하고 진수의 감정에 공감하려고 노력했다.
진수는 겉으로 보기에는 강한 척 하지만 알고 보면 외로운 아이였다. 진수에 대해 알고 싶어서 이것저것 질문하다가 ‘부모님은 무슨 일을 하셔?’라고 물어봤는데, 진수는 슬픈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진수 : 엄마 아빠는 바빠. 나랑 안 놀아.
진수의 부모님은 모두 맞벌이를 하신다고 들었다. 그 후에도 진수에게 ‘어제 집에서 뭐 했어? 주말에 잘 놀았어?’ 이런 질문을 할 때마다 진수는 ‘몰라. 아무도(아무것도) 안 했어’라고 하거나 대답을 피했다.
유치원 선생님들도 모두 좋은 분이었고 친구들도 착한 아이들이었지만, 진수는 유치원에서도 외로웠다. 앞글에서 말했던 언어의 문제가 가장 컸다. 친구들은 다 아는데 나만 못 알아듣고 나만 모르는 상황에서 진수는 점점 소외감을 느꼈고 자기는 친구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진수와 수업이 끝나면 진수를 원래 반으로 데려다주어야 했는데, 진수는 그럴 때마다 나에게 꼭 붙어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다. 어떤 날에는 울며 발버둥을 치기도 했다. 진수 담임선생님이 진수를 안고 달래야만 간신히 떨어질 수 있었다. 진수와 같이 보낸 5개월 중 2개월은 매일매일이 이런 식으로 인사를 했다.
특히 친구들이 단체 놀이를 하고 있으면 진수는 심하게 떼를 쓰며 친구들과 함께 하길 거부했다. 어떤 날은 교실에 들어가기 무섭다고도 했고(진수의 친구들이 고맙게도 ‘진수야 이리 와, 같이 놀자!’고 단체로 외쳐 줘서 간신히 들어갔다), 어떤 날은 내가 교문을 나서자 같이 뒤따라 나오는 바람에 담임선생님과 지킴이 선생님이 깜짝 놀라신 적도 있었다. 진수는 단체 속에 섞여 있는 걸 무서워한 것이다. 왜냐하면 진수는 스스로를 무리 속에 혼자라고 생각했으니까.
어느 날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진수 담임선생님께 진수를 데려갔는데, 진수네 반 친구들이 바깥 놀이(놀이터에서 노는 것)를 하려고 유치원 현관 앞 계단에 줄지어 앉아 주의사항을 듣고 있었다. 바깥 놀이를 한다고 하니 진수는 만세를 부르며 좋아했다. 담임선생님은 진수에게 계단에 앉아 있으라고 하셨다. 나는 교문 밖을 나가면서 다시 한 번 뒤돌아 진수를 봤다.진수는 친구들이 옹기종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한 사람이 앉을 만한 거리를 띄우고 앉아 신이 난 표정으로 주의사항을 듣고 있었다.나는 마음이 아팠다. 겨우 여섯 살(만 4세) 아이가 벌써부터 외로움을 느낀다, 벌써부터 남과 자기를 구별한다, 집에서도 외롭고 유치원에서도 외롭다. 사실 진수는 누구보다도 관심받고 싶어하고 누구보다도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하는 아이였는데.
여섯 살 아이가 짊어지고 있는 외로움의 무게에 내 마음도 무거워졌다. 내 기억을 되짚어 보면 나에게도 유치원은 그다지 좋은 곳은 아니었다. 나는 매우 내성적인 아이였고 선생님들은 많은 아이들을 담당했기 때문에 나를 챙겨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유치원에 있을 때 주로 구석에서 혼자 놀며 집에 가기만을 기다렸다. 진수는 안 그랬으면 했다. 진수에게 유치원은 꿈과 희망이 가득한 놀이동산이 되었으면 했다.
진수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많은 사랑과 관심이었다. 바깥 놀이 일이 있고 난 다음날, 나는 로봇을 가지고 놀던 진수에게 갑작스럽게 이렇게 말했다.
나 : 진수야, 선생님이 많이 사랑해.
진수는 잠깐 멈칫하더니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내려 놓고 나한테로 와 푹 안기며 이렇게 말했다
진수 : 나도 선생님 많이 사랑해
그 후로도 나는 진수에게 툭하면 ‘사랑해’라는 말을 했다. 책을 읽자고 해서, 정리를 깨끗하게 하라고 해서, 이제 그만 교실로 가자고 해서 잔뜩 삐져 있는 상태에서도 진수는 ‘사랑해’를 들으면 찌푸린 표정을 풀고 나를 안았다.
진수는 자신감이 부족한 아이였다. 그런 진수를 위해 나는 아낌없이 칭찬을 주는 나무가 되었다. 무조건적인 칭찬은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을 준다는 글을 읽어서, 진수를 칭찬할 때는 항상 그럴만한 이유를 덧붙였다. 그리고 정말로 잘한 일은 일부러 과장되게 칭찬해 주며 호들갑을 떨었다.
나 : (로봇 트레인 캐릭터 색칠놀이를 한 후 진수가 그걸 오려서 합체 로봇을 만들었을 때) 진수야, 어쩜 이렇게 멋진 생각을 했어? 선생님은 색칠까지만 생각했어. 이걸 합체하는 건 생각 못했어! 너무 멋있다.
진수 : (아주 뿌듯한 표정을 짓고 가슴을 펴며) 히힛, 선생님은 생각 못했지~ 나는 가위로 이렇게 해서(오려서) 이렇게 이렇게(풀로 붙여서) 이거 만들어 그럼 멋있을 것 같아 했지.
유치원 선생님들도 마찬가지로 진수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수업이 끝나고 진수를 담임선생님께 데려가면 나는 항상 그날 진수가 잘한 일을 진수 앞에서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리며 진수를 칭찬했는데, 그럴 때마다 담임선생님도 열심히 호응해 주시며 진수를 칭찬했다. 다른 선생님들도 진수가 내 말을 잘 듣는 걸 옆에서 보면 진수를 칭찬해 주셨다. 진수가 특히 잘한 일이 있을 때 근처에 미화 선생님께서 일을 하고 계시면 나는 진수를 데리고 미화 선생님께로 가서 진수 자랑을 하기도 했다.
나 : 선생님, 오늘은 진수가 제가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장난감을 제자리에 갖다 놨어요!
담임선생님 : 어머, 정말로요? 진수 그랬어? (진수를 안으시며) 진수 너무 잘했어!
나 : 선생님, 이 팔찌 진수가 색칠하고 오렸어요! 너무 잘하지 않았어요?
미화 선생님 : 그러네요. 진수야, 네가 한 거야? 진짜 잘 색칠했다~
(좌) 진수와 같이 색칠하고 오린 종이 팔찌/(우) 진수는 다 색칠한 로봇트레인 색칠놀이들을 자르고 붙여서 합체 로봇을 만들었다.
이런 무한한 칭찬과 사랑 속에서 진수는 점점 자신감을 찾아갔다. 그리고 사랑받는 아이에게서 나타나는 특징을 진수에게서도 볼 수 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선생님들도 좋아하고 친구들과 잘 지내고 항상 경계심을 보였던 표정은 밝아졌다. 간식도 장난감도 친구에게 스스로 양보하기 시작했다. 6월에 처음 만났을 때 유치원이 싫다고, 친구들도 싫고 선생님도 무섭다던 진수는 10월의 어느 날 내게 유치원이 너무 재미있고 좋다고 했다. 친구들과 바깥 놀이를 할 때도 내가 교문을 나서는 것도 눈치 못 챌 정도로 신나게 놀았다.
어느 날, 진수가 나에게 자기가 만든 색종이 접기를 자랑스럽게 보여줬다. 역시 나는 세상에 이렇게 예쁜 보석은 없다는 표정으로 감탄하며 진수를 칭찬해 주었다. 그걸 본 진수는 잠시 가만히 나를 보더니 갑자기 두 팔을 벌리고 나를 안으며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너무 예뻐. 나 선생님 너무 사랑해”
외롭던 진수가 더 이상 외롭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자신감이 없던 진수가 자신감을 찾아서 다행이었다. 사랑받는 아이가 되고 또 사랑할 줄 아는 아이가 되어서 너무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