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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어 교원 Apr 14. 2021

남성 사회에서 여성을 말하다, 호 쑤언 흐엉

베트남. 2017년 5월 기획 원고

호 쑤언 흐엉(호춘향.胡春香.Hồ Xuân Hương. 1772~1822)은 베트남 후기 레(黎) 왕조(Nhà Hậu Lê, 1533년 ~ 1788년) 말기에 태어난 여류 시인입니다. 그녀는 쯔놈(chữ Nôm) 문학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호 쑤언 흐엉(Hồ Xuân Hương) (출처: 위키디피아)

쯔놈은 우리나라의 이두나 향찰과 같은 베트남만의 한자 차자 표기 문자입니다. 호 쑤언 흐엉이 쯔놈 문학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시를 쓸 때 한자와 쯔놈 두 가지를 사용하였으며, 특히 그녀의 쯔놈 시는 유교 문화가 강했던 베트남에서 여성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했기 때문입니다.


먼저 그녀의 생애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녀는 아버지 호 피 지엔(Hô Phi Diễn)의 서녀(庶女)로 태어났습니다. 젊은 시절 그녀는 여러 남성과 어울렸는데, 그중에서는 당대 유명한 문인들도 여럿 있었습니다. 그녀는 문인들과 어울리면서 문학적 소양을 키우며 시를 썼습니다. 이후 쩐 푹 히엔(Trần Phuc Hiển)의 첩이 되었지만, 그가 재물 무단 착복 죄로 처형된 후 흐엉의 행적이 불분명해졌습니다.


흐엉의 시의 가장 큰 특징은 남녀의 신체적 특징이나 성관계를 비유하는 표현을 많이 썼다는 것입니다. 이런 시도는 당시 유교적인 시대 분위기 상 파격적인 것이었습니다. 흐엉의 이러한 작품관은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이 받는 억압을 나타내면서도 고귀한 여성성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베트남 문학사에서 여성 작가가 여성의 심정을 작품에 담아낸 것은 흐엉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제 것은 깊이 감추었지만 여전히 울적해요. 그게 찢긴 건 그이가 무거운 북채로 두드린 때문이지요 ··· (중략) ···  누가 가서 타일러 주세요. 제발 가엾게 여기라고요. 살가죽은 누구나 다 같은 것이 아니냐고요 - <찢긴 북(Trống thủng)> 중에서.
 

이렇듯 흐엉은 남성 중심 사회에서 남성의 성적 욕망과 지배욕에 의해 여성이 받는 상처를 표현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여성의 신체와 남녀의 성애(性愛)를 아름답게 묘사하고, 더 나아가 여성의 신체적 · 성적 권리를 주장한 시인이었습니다. 즉, 그녀는 성(性)은 착취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며, 어떤 외압에도 상처 받을 수 없는 인간의 고결(高潔)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주장한 것입니다. 이런 그녀의 주관은 ‘떡(반 쪼이 느억. Banh troi nuoc)’이라는 시에서 가장 잘 드러납니다. 이 시는 베트남 고등 문학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유명한 시입니다.



제 몸은 희고도 동그랗지요. 강산과 더불어 몇 번이나 부침한답니다. 주무르는 손길이 거칠든 부드럽든, 저는 언제나 붉은 속마음을 지킬 겁니다.
- <반 쪼이 느억.  Bánh Trôi Nước >     



그녀의 시는 2000년에 미국 노스캐롤라이나(North Carolina) 대학의 존 발라반(John Balaban) 교수에 의해 <Spring essence>라는 책으로 번역되어 미국 사회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또한 20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그녀의 시는 대중음악으로 만들어져 불리고 있으며, 베트남의 유명한 관광지인 달랏(Đà Lạt)에는 ‘쑤언 흐엉(Xuân Hương)’ 그녀의 이름을 딴 호수가 있습니다. 그 뜻은 그녀의 이름과 똑같이 ‘봄의 향기’라는 뜻입니다.


달랏에 있는 쑤언 흐엉 강(출처 : 위키디피아)

                                                                

<Spring essence> 표지. (출처: goodreads)





<참고 문헌>

베트남 문화의 오디세이(김영순 · 응웬 반 히에우 지음. 북코리아)

최귀묵. (2009). 호춘향(胡春香, 호 쑤언 흐엉)의 생애와 작품의 여성형상(女性形象). 외국문학연구, (33), 281-303.




*이 글은 2017년에 베트남에서 국립국어원의 국외통신원으로 활동하던 당시 쓴 기사입니다.

국외통신원의 편지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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