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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자살(人格自殺)

두번째수기 - 6

by 추설

어둠이 방 안을 천천히 채웠다.

어디선가 남은 빗방울이 처마 끝을 두드렸다.

그 리듬이 마치 오래된 심장 소리처럼 느껴졌다.


그녀의 손끝이 내 가슴에 닿았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압력.

마치 꿈속의 움직임 같았다.

기모노의 천이 스치며 내 살을 적셨다.

그 순간, 숨결이 맞닿았다.

서로의 호흡이 엉켜 한동안 방 안의 공기마저 달아올랐다.


그녀는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그저, 익명의 두 육체가 하나의 그림자처럼 엉켜 있었다.


어디선가 천이 흘러내렸다.

그 소리조차 너무 조용해서,

그것이 현실인지 환상인지 알 수 없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내 목을 스쳤다.

젖은 비 냄새, 향수의 잔향, 그리고 미묘한 체온의 냄새가

숨통을 막듯 밀려왔다.

무언가를 붙잡으려는 듯, 나는 그녀의 등을 감쌌다.


그녀의 몸은 따뜻했다.

그러나 그 따뜻함 속에는 생기가 없었다.

기묘했다.

품 안에 분명히 존재하는데,

어째서인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만 같았다.


숨이 닿을 때마다,

그녀의 몸에서 나는 냄새가 조금씩 희미해졌다.

손끝이 닿는 감촉도,

가슴에 닿은 체온도,

모두 물속으로 가라앉는 듯 멀어졌다.


그리고 문득,

그녀의 입술이 내 귀 가까이 다가와 속삭였다.


“선생님, 이건… 당신이 쓴 이야기예요.”


그 말이 끝나자,

등 뒤에서 또 한 번 천이 미끄러지는 소리가 났다.

그 순간, 나는 현실과 환상 중 어느 쪽에 있는지도 모르게 되었다.


창문 틈으로 희미한 새벽빛이 흘러들었다.

방 안은 밤새 식은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이불 위엔 낯선 냄새가 남아 있었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얼룩이 여기저기 번져 있었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머리가 무거웠다.

방 안을 둘러보았다.

그녀는 없었다.


등잔은 꺼져 있었고,

구석의 찻잔에는 찬물이 반쯤 고여 있었다.

기모노 자락도, 젖은 머리카락도,

어제의 가파른 숨결도 모두 사라져 있었다.


다만, 다다미 위에 한 장의 종이만이 남아 있었다.

빛이 닿자, 글씨가 희미하게 떠올랐다.


“사토루 선생님, 어젯밤의 일은 잊지말아주세요.

쓰세요. 당신이 정말 인간을 이해하고 싶다면

인간의 추함부터 기록해야 해요.”


나는 종이를 손에 쥐었다.

종이의 가장자리는 젖어 있었다.

비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녀의 손 때문이었을까.


그 글씨는

오랫동안 나를 바라봐온 사람의 필체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

창밖에서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손에 쥔 종이를 천천히 접었다.


그녀의 체온은 이미 사라졌지만,

이상하게도 눅눅한 방 안의 공기에는

아직 누군가의 숨이 남아 있었다.




9791190408783.jpg 작가의 출간도서 『세싱의 없던 색』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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