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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지코에서 가을을

EP. 19

by 추설

“모델이 납셨네요.
어울리지 않게 고상한 포즈는…
그래도, 여자긴 여자군요?”

어느 정도 효과는 있었는지
그녀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자신이 찍힌 사진을 넘겨보며 말했다.

“그럼 여자죠, 남자겠어요?
저도 찍히는 거 좋아하는, 그냥 평범한 여자거든요?”

그녀는 다시 사진을 한 장 넘기더니
입술을 살짝 내밀었다.

“그리고 무슨 사진작가라면서,
이렇게 못 찍어요?
너무 대충 찍은 거 아니에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미안해요.
농담 좀 했어요.
대충 찍은 건 정말 아니에요.
그냥, 모델이… 흠.”

“참나, 어이가 없네요.”

그녀는 팔짱을 끼더니
손을 내밀며 말했다.
“됐고, 그쪽 휴대폰 주고
그쪽도 저기 가서 서봐요.
찍어줄게요.”

갑작스러운 말에 순간 멈칫했다.
생각해 보니,
나는 언제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혔더라…?

“네…? 저도 찍어요…?
저는 뭐, 찍어도 올릴 데도 없고…”

그녀는 표정을 찡그리며 말했다.

“됐고, 빨리 가요.
얼마나 모델이 좋은지 좀 보게.
저만 여기 여행 온 거 아니잖아요.
같이 왔으면, 같이 즐겨야죠.”

식은땀이 났다.

“아니 전 정말 괜찮은데..”

그녀는 내 휴대폰을 낚아채서는 나를 세워두고

그녀는 나와 몇 발짝 떨어지더니
휴대폰을 들고 카메라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저기요, 모델님.
지금 목각인형 같아요.
좀 움직여보시죠. 손으로 브이(V)라도 해주신다든가.”

잠깐 멈추고,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이렇게 말했다.

“남자들은 엄지 올리는 거랑,
손가락으로 브이 안 하면 죽는 병 있다던데—
그쪽은 또, 예외인가 봐요?”

(손은… 지금 막 올리려던 참이었는데.
정말 그런 병도 있나 보다.)

“혹시…
올리면 안 되는 걸까요?”

그녀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그렇지 남자는 다 그렇나 봐요.
그쪽 맘대로 해봐요.
허락받고 뭐 하는 스타일은 아니잖아요?”

나는 어정쩡한 자세와 함께 천천히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리고,
그다음에는 엄지를 살짝 들어 보였다.

셔터음이 몇 번 울리고 나서
그녀는 휴대폰을 건네주었다.

나는 화면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저보다 더 잘 찍네요.
소질 있는데요?”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그럼요.
제가 사람은 또 잘 찍어요.
목각인형도 진짜 모델로 바꿔 놓는다니까요?”

“아…
그 뒷말만 없었으면, 진짜 괜찮았을 텐데요.”




표지.jpg '모지코에서 가을을'과 이야기를 공유하는 작품 『세상에 없던 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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