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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세경 Oct 04. 2020

너를 사랑해야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우울한 행복 전도사?

"너처럼 우울한 사람이 어떻게 행복을 말해"


행복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고 했을 때, 친구는 나에게 우울한 행복 전도사가 될 거냐고 그랬다. 농담인 걸 알았지만 마음에 남는 말이었다. 얘기를 듣고, '배가 고파야 음식을 찾고, 사랑이 고파야 사람을 찾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파야 건강이 소중한 걸 알고, 돈이 없어야 만원이 귀한 줄 아는 것처럼 우울한 사람이기 때문에 행복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할 수 있었다, 라는 말이다. 이별 후에 부르는 사랑 노래가 절절한 것처럼, 우울했던 내가 말하는 행복 이야기가 더 마음에 와 닿을 수 있다.


마냥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 후 사는 게 녹록지 않음을 알게 된 20대 초반은 우울과 무기력으로 점철된 시간이었다. 그리고 주변을 돌아보니 그런 건 나뿐이 아니었다. 겉보기엔 단단해 보이는 사람도 굴곡진 인생의 역경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글쓰기 모임에서 만난 분, 마냥 밝아 보이던 그분은 23살 때 뉴욕에서 머리가 수박 통처럼 깨졌다. 파티가 있었고 술에 취했는데, 눈을 떠보니 병실이었다고 했다. 15시간 만에 의식을 찾았지만 비자가 3일밖에 남지 않아 머리에 붕대를 감은 채 귀국하는 비행기를 탔다고,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왔다는 얘기를 별일 아닌냥 말했다. 그런 얘기를 듣다 보니 삶이 결코 쉬운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가는 환경은 다르지만 각자가 자기만의 삶의 무게를 버티며 산다는 말이다. 열심히 버티는 인생을 존버 인생이라 하는데, 존버 인생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인생은 원래가 존버가 아닐까 싶다.




행복하기 위해 내가 '의식적으로' 노력한 첫 번째 일은 감사일기 쓰기였다. 우연치 않은 계기로 감사일기를 알게 되었고 절박한 마음에서 그걸 시작했다. 그리고 그걸 꾸준히 하면서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생각보다 많은 일들이 하루에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일기로 쓰지 않았으면 잊어버릴 일이 많다는 걸 알았고, 그런 일 중에는 특히 기분 좋은 일들도 더러 있었다. 감사일기 덕분에 하루를 보내며 별일 아니게 잊어버리는 기분 좋은 일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일들을 모두 감사한 일이라고 적었다. 기분을 좋게 해 준 사람, 기분을 좋게 해 준 환경, 그런 게 모두 감사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하루를 기억하기가 쉬워졌다. 처음 일기를 쓰기 시작했을 때는 시간 순으로 하루를 돌아봐야 했다. 그렇게 억지로 기분 좋은 일들을 찾아내야 했지만 조금 익숙해진 후에는 그런 일들이 저절로 떠올랐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고는 오히려 앞뒤가 바뀌기 시작했다. 일기를 쓰는 시간이 아니어도 기분이 좋은 순간, 감사할 일이 생긴 바로 그 순간은 머리가 잠시 멈춰, '어? 감사한 일이네, 오늘 일기에 적어야겠다!'라며 그 순간을 머릿속에 담아 두게 되었다. 파란 가을 하늘을 사진으로 남겨두는 것처럼, 감사한 일을 만나면 그걸 찍어 머리 한 편의 사진첩에 저장하게 된 것이다.


뇌가 긍정적으로 변한다는 건(#'감사함', 뜬구름 잡는 말이 아니라면)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시간이 갈수록 감사할 일을 찾게 되고, 그걸 쉽게 기억하는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감사할 일은 점점 늘어났고 그걸 느끼는 강도, 감사함의 밀도도 진해졌다. 예전 같았으면 별일 아니게 지나칠 일에도 감사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길에서 마주치는 아가의 미소에도 기분이 좋아, 하루를 마치며 '아이의 미소에 감사하다'라는 일기를 적을 수 있었다. 길가에 마주친 아이의 미소에도 감사할 수 있는 뇌, 그런 뇌를 가진 사람이 되어갔다.


감사일기의 핵심은 '사람'이다. 더러 감사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반만 채워진 물 잔을 보고 '물이 반밖에 안 남았네' 하지 말고 '물이 반이나 남았네'라는 식으로 생각하라고, 그렇게 감사함을 느끼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 그런 건 감사함의 핵심이 아니다. 진짜로 감사한 일들은 환경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오는 '실체 있는 고마움'이었다. 감사한 일들을 떠올리다 보면 그 안에는 꼭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나를 아껴주시는 부모님, 나를 웃게 해주는 친구들, 친절한 슈퍼 아주머니 등등, 감사함은 결국 사람에게 왔다. '감사하다'의 정의를 찾아보니 아래와 같았다.

감사는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이나 그 언행이) 자기에게 도움이 되거나 흐뭇하여 그에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


'안녕', '고마워', '미안해', 세상에서 제일 쉬운 말인데 이제야 알았다. 감사함은 애초에 사람에게서 오는 것이었다. 우리는 익숙함에 속아 소중한 것을 잊고 산다. 바로 옆에 있는, 매일 마주하는 사람들이 소중하다는 걸 우리는 잊고 산다.


사실 착각하며 살 때가 많다. 인생의 특별한 사건들이 나를 행복하게 해 준다고 생각한다는 말이다. 목표를 이뤄내는 성취감, 물건을 차지하는 기쁨, 걱정했던 일이 해결되는 안도감 까지. 대학에 가려고 삼수씩이나 했던 것도 좋은 대학에 가면 행복해지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 내 개인적인 인생에서는, 그런 들은 자주 일어나지 않았다. 매일 성공하며 살 수도 없었고, '소유할 수 있냐 없냐'라는 문제와 별개로 가지고 싶은 물건이 매일 생기지도 않았다.


따라서 매일 행복하기 위해선 하루하루 행복할 일이 필요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카르페 디엠'도 2018년 최고의 유행어인 '소확행'도 나에게는 같은 맥락이다. 3년에 한 번 오는 행복보다 오늘 당장 행복할 일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에 마주치는 행복, 작지만 분명히 있는 행복에 감사해야 다. 그리고 그 안에는 대개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았다.




감사일기를 쓴다고 매일이 온전히 행복한 날들이 되는 것은 아니다. 몸이 고돼서 지치는 날도 있고 회사 스트레스로 머리가 꽉 차는 날도 있다. 하지만 짜증으로 가득 찬 하루에도 곰곰이 찾아보면 작지만 감사했던 일이 분명히 있다. 아주 작더라도 행복한 일이 하나씩은 있다는 말이다. 조금 귀찮아도, 조금 피곤해도, 굳이 꾸준히 감사일기를 쓰는 이유는 오늘의 내 하루가 조금은 더 행복한 하루였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그렇게 10년의 매일에 조금의 감사를 쌓아왔다. 조금씩 더 행복한 하루를 보내왔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행복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감사일기를 쓰면서 다른 사람에게 감사하는 게 나를 사랑하는 일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감사한 마음은 결국 나를 좋아하는 마음, 그런 나를 기특해하는 마음으로 돌아왔다. 따라서 나를 사랑하기 위한 첫 번째는 다름 아닌 다른 이에게 감사하는 것, 그들의 존재를 사랑하는 것이었다.


부딪히는 일상 속에는 많은 갈등이 있다. 감사함과 마찬가지로 스트레스도 대개 사람에게서 온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나에게 행복을 주는 사람들감사함을 느끼게 하는 사람들, 그들의 존재를 떠올리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들이 있어서 내가 행복할 수 있음을, 그들을 아껴야 나를 사랑할 수 있음을, 알고, 느끼고, 적다 보면, 그게 곧 나를 사랑하는 일이었다.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너를 사랑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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