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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철 Jul 28. 2020

빙산의 2각

흰 장갑은 무슨 뜻? 

중국 말 중에 '흰 장갑'이라는 말이 있다. 바로 누군가가 무슨 일을 하려고 할 때 직접 손을 더럽히기 싫을 경우 '흰 장갑'을 낀다. 그래서 더러운 일을 대신해 주는 사람을 '흰 장갑'이라고 한다. 중국어로는 바이쇼우타오(白手套)라고 부르는 것이다. 우리 말로는 바지 사장 정도가 되겠으나 중국의 흰 장갑은 우리의 바지 사장보다는 훨씬 권한이 넓고 깊은 편이다.

앞서의 글 빙산의 1각에서 필자는 중국 최대의 민영 기업이었던 밍텐시의 몰락을 다루었다. 그리고 하이난 항공과 안방 보험에 대해서도 거론하였다. 이들 기업들은 같은 유형의 몰락을 했지만 밍텐시의 경우에는 2017년에 총수가 체포된 후 2020년에서야 종결이 되는 등 그 처리가 같지 않았다. 그 근본 이유는 바로 밍텐시의 샤오젠화(肖建华) 총수의 경우 창업자라고는 하지만 기업의 진정한 주인이 아닌 '흰 장갑'이었다는 데 있다. 

공산당 연구가 가오원치엔(高文谦)

그리고 샤오젠화의 특출한 점은 어느 한 그룹에 소속된 흰 장갑이 아니라 여러 파벌의 '흰 장갑'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이다. 공산당 연구가인 가오원치엔(高文谦)에 따르면 그와 연관되었다고 알려진 권력가로는 마지엔, 쩡칭홍, 장쩌민, 류진산, 시진핑, 원자바오, 자칭린 등이 있다. 그리고 이 활동에는 궈원궤이(郭文贵)도 연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샤오젠화의 납치의 주모자가 누구인지 알기가 어려운 것이며 샤오젠화나 밍텐시 그룹이 3년 동안 살아있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재미 반중 학자 청샤오농(程晓农)

재미 반중 학자 청샤오농(程晓农)은 샤오젠화를 납치한 이유는 아마도 외화 부족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 추측하였다. 언뜻 들으면 황당한 이야기 같으나 잘 짚어보면 매우 설득력 있는 이야기이다. 먼저 2010년대 중국의 외환 보유고의 변화를 보면 다음 그림과 같다. 

 

시진핑 주석은 2012년 주석 자리에 올랐는데 2014년도 상반기 최고조에 달했던 중국의 외환 보유고는 그 후 약 2년 동안 무려 1조 달러가 유출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1조 달러가 감소하는 납득할만한 이유도 없다. 당시 시진핑 정부는 무척 당황했으며 엄청난 고생을 하며 외화 유출 사태를 막아야 했다. 이 대규모 외화 유출이 멈춘 것이 언제인가? 바로 샤오젠화가 납치된 시점 언저리부터이다.


물론 이러한 시점의 일치는 우연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가 다른 글을 통해서 거론했듯이 당시 상황은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상하이방의 자산 반출이었다.(https://brunch.co.kr/@chulrhee/4) 따라서 외화 반출이 그 후에도 일정 규모 있었던 것으로 비추어 볼 때 2016년 말에서 2017년 초 사이에 상하이 방의 대규모 외화 반출을 멈출만한 어떤 일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그리고 이를 샤오젠화, 또는 밍텐시 그룹의 활동을 멈추게 한 것과 관련 있다고 추정하는 것 또한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물론 증거는 없다. 하지만 2017년 1월 27일 샤오젠화가 납치된 일자와 외화의 반출이 멈춘 시점은 일치하는 것이다. 

밍텐시의 총수 샤오젠화(肖建华)

시진핑 주석 그룹이 사정의 칼날을 본격적으로 휘두루기 시작한 것이 2014년이다. 당시 숙청 작업을 이끌던 유금국(刘金国)은 그 후 19대에서 중앙기율위원회에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숙청 작업은 이제 국내에서 홰외로, 그리고 낮은 데서 높은 데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샤오젠화가 NYT와 시진핑 주석의 누나 부부에 관한 폭로를 한 시점이 2014년 6월 3일로 샤오젠화가 신상의 위험을 느끼고 경고성 발언을 한 것이라고 해석하면 매우 자연스럽다.


그러므로 만일 청샤오농(程晓农)의 추정이 맞는다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2012년 시진핑 주석이 자리에 오른 후 2014년 반부패 사정을 시작한다. 그러자 다른 파벌들은 위협을 느끼고 각자의 자산을 해외로 이전하기 시작한다. 이 일을 비밀리에 도운 것은 그동안 파벌을 막론하고 '쩐'에 관련된 일을 해온 샤오젠화이다. 하지만 샤오젠화는 시진핑 그룹의 칼날이 '정치인'이 아닌 '장사꾼'인 자신에게까지 다가온다고 느끼고 NYT와의 인터뷰를 한다. 여기서 시주석 누나 부부에게 자신이 3억 달러를 준 일을 토로하여 간접적으로 시진핑 주석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하지만 시진핑 주석은 불같이 노하여 가족들에게 이권 개입을 중지할 것을 명하고 샤오젠화를 잡아들인 것이다. 시주석으로서는 자신을 위협하려 했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러고 나서 샤오젠화를 조사하기 시작하자 다른 그룹들은 움직이기 어렵게 되었다. 대리인이 없어지면 직접 손을 써야 하는데 시진핑 주석의 반부패 운동으로 너무나 위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화 반출은 줄어들고 이윽고 통제 가능한 선 아래로 줄어든다. 그리고 모든 것이 정리된 오늘날 밍텐시는 완전히 몰락하게 된 것이다. 

밍텐시 지주 회사 로고

안방 보험은 앞선 글에서도 말했듯이 덩샤오핑의 손녀사위 우샤오회이(吴小晖)가 주룽지 전 총리의 아들 주윈라이(朱云来)와 상하이 자동차를 끌어들여 설립을 한 회사이다. 다시 말해 이 안방 보험은 덩샤오핑 가문이 상하이방과 연합하여 설립한 회사라는 의미이다. 안방 보험은 당시 보험이라는 개념이 안착하지 않았던 중국 사회에 이런저런 보험의 개념을 도입하는데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이 안방 보험은 상하이 방의 기세 등등한 회사가 어떤 경로를 가게 되는지를 상징적으로 잘 보여준다. 


안방 보험은 회사가 만들어지고 나서 곧바로 당시 중국에서는 아직 생경했던 '보험'이라는 상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안방은 주로 국유 기업들에게 단체로 보험에 가입할 것을 권했다. 우샤오회이의 뒤에는 덩샤오핑, 그리고 주롱지가 있었고, 상하이 자동차가 설립 자본 중의 하나라는 것은 당연히 장쩌민 파벌이 지원하는 사업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이 안방 보험의 '보험 권유'를 거절할 수 있었던 국유 기업들은 없었다. 안방이 출범한 지 얼마 안돼서 필자는 당시 상하이 방의 한 주요 인물 중의 한 사람에게 한국 보험 회사를 대신해서 보험업 허가를 확보해 줄 수 없는가를 물은 적이 있는데 대답은 '안방이 나서고 있는 시장이라 거스르기 어렵다'라는 것이었다. 이 인물은 땅콩은 아니지만 그야말로 활주로에서 이륙하던 비행기를 세워서 되돌릴 정도의 권력자였기 때문에 당시 필자가 조금 놀랐던 기억이 있다. 

안방 보험 사옥

그러면 승승장구하던 안방이 어느 시점에서 파국을 맞이하는가를 보면 2017년 7월 9일이다. 앞서 시진핑 그룹이 해외로 외화가 반출되는 사태를 막는 데 성공한 시점이 2016년 말에서 2017년 초 사이인 점에 주목하라. 필자는 샤오젠화의 체포가 시진핑 그룹이 외화를 해외로 반출하는 세력에 대한 수사의 시작점이라면 정점에 달한 것이 바로 이 안방 보험 총재 우샤오회이를 체포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안방 보험의 적극적인 해외 기업 인수나 합병의 진정한 목적은 해외 투자라기보다는 자산의 해외 도피라고 시진핑 그룹의 눈에는 보였을 것이다.

재판을 받고 있는 우샤오회이

우샤오회이는 처음에는 범죄 혐의를 완강하게 부인했으나 약 1년여에 걸친 재판 후 결국은 죄를 인정하고 말았다. 그리고 안방 보험은 그동안 해외에서 취득한 자산들을 하나하나 매각하였다. 이러한 해외 자산 매각은 재무 건전화를 위한 것이라는 명분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해외로 반출한 외화를 다시 중국 내로 가져오게 하라는 시진핑 주석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안방은 공산당 권력 실세들이 만든 사업이라는 점에서 '흰 장갑'이 아니었다. 그리고 덩샤오핑과 상하이방이라는 권력을 바탕으로 급속히 성장했지만 권력에 의하여 일거에 최후를 맞이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이 안방의 처리에서 우샤오회이는 재판을 받고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주룽지 총리의 아들인 주윈라이, 그리고 상하이 자동차 등은 아무런 처벌이나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래서 이 사건을 완전히 상해방과 시진핑 그룹과의 격돌로 보는 것은 무리이다. 오히려 덩샤오핑 시대가 정리되었다거나 "직계도 아닌 우샤오회이가 너무 나갔다"라는 것이 당시 중국 내의 일반적인 평가로 보인다. 

하이난 항공

밍텐시와 안방이 시진핑 그룹과는 다른 경쟁 대상 그룹에서 주도한 사업이라면 한때 제계 3위의 금융 기업이었던 하이난 항공은 시진핑 그룹이 일으킨 기업으로 보인다는 점이 대우 다르다. 의문사를 한 하이난 항공의 총수 왕지엔(王建)은 1990년에 천펑(陈峰)과 함께 하이난 항공을 설립하였는데 당시 상황은 왕지엔은 실무를 맡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이 왕지엔의 배경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나이가 더 많은 천펑은 이미 1989년 하이난 성정부가 설립한 하이난 성 항공(海南省航空公司)에 참여하였고 당시 하이난 성장인 류젠펑(刘剑锋)의 지원을 받아서 민간 기업화 하는데 성공한 것이었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하이난 항공은 사실 상 류젠펑과 천펑의 회사라고 보아야 마땅하다. 그리고 천펑은 바로 왕치산(王岐山)의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류첸펑이 지원을 한 것도 천펑을 보아서가 아니라 왕치산을 보아서 지원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당시 왕치산은 1988년 중앙에 발탁되어 중국농업신탁투자공사(中国农业信托投资公司)의 총경리가 되었던 참이고 1989년에 건설은행의 부행장으로 영전을 한 시점이었다. 바로 하이난성 성장과 건설은행 부행장이 손을 잡고 두 사람의 공동 부하인 천펑으로 하여금 하이난 항공을 만들도록 한 것이다. 따라서 대중들에게는 주로 천펑이 그룹의 얼굴로 알려졌으며 왕지엔은 실무를 해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NYT의 보도에 따르면 실제 막후에서 실무를 해 온 것은 왕지엔의 동생, 왕웨이(王伟)라고 한다. 그리고 왕치산도 왕치산 본인 만의 지분이 아니라 왕치산 뒤에 다시 막후 인물이 있다는 설도 있다.

하이난 항공 총수 왕지엔(王建)

아무튼 하이난 항공은 금융을 일으켜 대규모의 인수 합병을 계속해 나간다. 인수 자금은 주로 융자를 받은 것이었기 때문에 지나친 부채와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공되는 융자를 둘러싸고 말이 많았다. 대다수 사람들은 이런 융자가 가능했던 것은 배후의 왕치산이 금융 영역을 장악하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많다.

1998년 8월 하이코우 공항 지분 25% 투자

2001년 산시항공(山西航空), 장안항공(长安航空), 중국신화항공(中国新华航空) 합병

2003년 운수회사인 양자강쾌운(扬子江快运) 인수

2005년 중푸항공(中福航空) 지분 45% 인수

2006년 강련항공(港联航空) 지분 45% 인수, 텐진항공(天津航空), 중국서부항공(中国西部航空) 설립

2010년 호주 Allco 인수

2017년 산시항공(山西航空), 장안항공(长安航空), 중국신화항공(中国新华航空) 소액주주 지분 인수

그리고는2018년 7월 4일에 왕지엔은 프랑스에 업무 출장갔다가 Bonnieux라는 마을에서 구경 나가서 사진을 찍다가 뒤로 떨어져 사망하였다. 그러나 이 죽음은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다.

https://www.nytimes.com/2018/07/04/business/hna-chairman-wang-jian-death.html

음모론의 주된 내용은 기본적으로 왕지엔과 천펑 사이의 갈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2017년 10월 25일 천펑의 배경 인물이라고 지목되는 왕치산은 연령으로 정치국 상무위원 자리에서 내려오고 그 자리를 자오러지(赵乐际)가 올라 온다. 그러나 왕치산의 정치적 영향력은 아직도 상당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결국 이런 음모론들이 말하는 것은 실무를 장악한 왕지엔이 왕치산 일파의 노여움을 받아 제거되었다는 것이다.

하이난 항공 총수 천펑(陈峰)

그러면 어째서 하이난 항공의 주인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자선 단체로 바뀌었는가?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다. 단지 왕지엔이 죽기 전에 천펑의 언행이 미심쩍었다는 것과 주인이 바뀌기 전에 한 차례 하이난 항공과 하이난 성정부에 대한 부패 수사가 있었고 그중 직위도 별로 높지 않은 관원 한 사람이 집에 엄청난 규모의 현금과 황금을 가지고 있어서 화제가 된 바 있었다는 정도이다. 그 관원은 또 자신이 관리하고 있는 자본의 규모가 한화로 수 조원에 달한다는 발언을 했는데 해프닝으로 여겨졌었다. 이러한 상황들은 모두 하이난 항공의 배후가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리고 그들이 이번 기회에 하이난 항공의 소유권을 확립한 것으로 보인다. 


안방과 하이난의 처리는 상대적으로 신속했다. 그리고 중국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들이 그러하지만 상궤를 벗어난 처리임을 숨기려 하지도 않았다. 시간이 걸리는 부분은 주로 사건 대상자의 처리였다. 안방의 경우 상하이 방 핵심 인물들을 연루시키지 않고 우샤오회이 만을 처리함으로써 주로 우샤오회이의 재판 과정에 걸린 시간이 대부분이다. 그는 재판 초기에는 본인의 무죄를 주장하는 등 저항했었기 때문에 그만큼 처리에 시간이 걸렸다. 반면 하이난 항공의 경우에는  대상자가 '의문사'함으로써 모든 후속 처리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짧은 시간 내에 종결이 된 것이다.


밍텐시의 경우 샤오젠화가 당사자가 아닌 '흰 장갑'이고 이 장갑을 꼈던 사람들이 많고 쎄고, 또 모든 계파에 걸쳐 있다보니 그 처리가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막을 내렸다. 이제 완전히 시장 경제 지행적이던 두 세대, 덩샤오핑 시대와 장쩌민 시대를 마무리하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생각된다. 필자가 이 사건을 중국 현대사의 한 획을 긋는 사건으로 보는 이유이다.  물론 이 외에도 아직 건재하고 있는, 그리고 소유주가 누구인지 잘 밝혀져 있지 않은 민간 금융 기업들이 여럿 있다. 예를 들면 핑안보험(平安保险)같은 회사이다. 이러한 회사들은 권력과의 유착이 의심되지만 제대로 알려진 사실은 거의 없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음 글에서 다시 한번 다루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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