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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철 Aug 31. 2024

유전자의 비밀

협박받는 남자?

주영범은 눈을 떴다. 잠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지금이 언제인지, 아니 자신이 누구인지 모두 혼란스러웠다. 침대에 누워 눈을 껌벅이고 있노라니 조금씩 기억이 돌아왔다. 그렇다. 대머리 남자들이 우르르 쳐들어왔었다. 그리고 여다혜는 뭐라고 했더라?


영범은 벌떡 일어났다. 확실히 여다혜가 말한 것은 임신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을 '씨앗"이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여다혜는 자신의 아이를 임시한 것이다! 그러면 지금부터 어떻게 되는 거지? 아니 어떻게 해야 하지? 그 대머리 사내들은 뭐지?


아무것도 확실한 것은 없었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했다. 영범은 위기에 빠진 것이다. 본능적으로 몸이 벌벌 떨려왔다. 몸과 마음이 모두 위험 경계경보를 울리고 있었다. 아니 경보가 아니라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다음 순간 영범은 비명을 지르는 것은 자신의 마음속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임을 깨달았다. 그러나 깨달은 후에도 비명을 멈출 수가 없었다.


문이 벌컥 열리며 한 사내가 들어왔다. 대머리 사내들 중의 하나였다. 그의 가슴에는 퍼런 문신이 새겨져 있어 마치 옛날 중국 영화에 나오는 악당처럼 보였다. 대머리 사내는 영범을 쳐다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아 참.. 간뎅이 하고는..."

사내는 경멸의 눈초리로 영범을 쏘아보더니 바깥을 향해 외쳤다.

"셋째 형님, 별일 없습니다. 겁쟁이 놈이 소리를 지른 거예요!'

바깥에서 무어라 투덜대는 소리가 들려오자 대머리는 영범에게 일어나라고 손짓을 했다.


영범은 식은땀이 나는 것을 느꼈다. 이제 자신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침대에서 내려오다가 하마터면 쓰러질 뻔했다. 두 무릎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간신히 비틀거리며 일어난 영범이 거실로 나서자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거실에는 네 사람의 대머리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뒤로 보이는 침실 앞에는 두 대머리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영범이 자세히 보니 침실 앞의 두 대머리는 거실의 대머리들과는 조금 달랐다. 키가 190cm 가까울 정도로 컸고 한 사람은 코밑부터 구레나룻까지 거친 검은 수염이 나 있었고 옆 사람은 수염을 말끔히 밀어 깨끗했다. 게다가 텁석부리는 조금 펑퍼짐한 체형이었고 맨 수염은 조금 마르고 긴 체형이었다. 두 사람은 모두 팔찌를 차고 있었고 옷은 T셔츠에 중국식 검은 바지를 입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는데 마치 선정에 들은 고승처럼 사람들을 압도하는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영범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향하자 거실에 있던 네 사람 중 영범에 가장 가까이 앉아 있던 대머리가 입을 열었다.

"두 분 호법 근처로는 가까이 가지 말아라. 잘못하면 죽을 수가 있다."

영범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놀라는 표정을 짓자 그 대머리는 낄낄 웃으며 옆의 대머리에게 말했다.

"여보게, 이 녀석 정말이지 시시한 놈이구만. 이런 놈이 어떻게 냥냥을 임신시켰지?"

그러자 옆의 대머리가 대답했다.

"그야 사람마다 한 가지쯤은 잘하는 것이 있겠지. 저 녀석은 아마 침대 위 공력이 좋은 모양이지"

네 사람은 모두 쿡쿡 웃더니 영범을 향해 엄지 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영범은 쭈삣 거리며 거실 한 구퉁이에 엉거주춤 섰다. 그러자 영범에게 말을 건네었던 대머리가 말했다.

"이봐 자네 이름이 뭔가?"

"주영범입니다."

"그래? 우리는 모두 형제라네 8형제이지. 지금 네 사람은 바깥에 나갔다. 여기 창가에 있는 어른이 맏형이신 비남, 차례대로 모, 월, 그리고 나는 한이다. 그리고 저쪽 문 앞에 계신 분들은 우리보다 한 배분 높은 어른들이시지, 멋진 수염이 난 분이 소당, 다른 쪽 분은 선령이라고 한다."

영범은 헤헤 거리며 네네 하며 굽신거렸다. 그러자 한이라고 한 대머리가 츳츳 혀를 차며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그러면서 

"냥냥이 어떻게 너 같은 것을 건드렸지? 정말 모를 일이야!"

라며 영범의 멱살을 잡아 허공 위로 올렸다. 정말 힘이 장사였다.


한은 영범을 다시 바닥에 내려놓고는 멱살을 잡아끌며 눈을 부라리면서 말했다.

"우리는 강호에 그 유명한 홍사방이다."

"강호.... 요?"

"그래"

"무협지에 나오는 강호?"

"그렇다니까!"

한은 소리를 냅다 지르며 영범을 소파 위에 앉혔다.

"너는 잘 모르겠지만 세상에는 강호가 없어진 적이 없다. 그리고 너도 이제 홍사방의 재산이 되었으니 홍사방의 규칙을 잘 지켜야 한다"

홍사방의 재산? 불길한 생각이 들었지만 영범은 감히 물어볼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이때 현관문이 열리더니 대머리 네 사람이 들어왔다. 손에는 모두 짐을 들고 있었는데 모두 먹을 식재료처럼 보였다. 한은 다시 들어온 네 사람을 소개했다. 그들의 이름은 비화, 삼랑, 모우, 종이 었다. 한은 영범을 강제로 무릎을 꿇리더니 크게 외쳤다.

"홍사방에 새 노비가 들어왔습니다!"

그러자 나머지 일곱이 함께 외쳤다.

"냥냥의 홍복입니다!"

"새로운 노비의 이름은 주영범입니다"

"냥냥의 홍복입니다!"

"새로운 노비는 영원히 냥냥의 종으로 충성을 다할 것입니다!"

"냥냥의 홍복입니다!"

"만일 홍사방을 배신할 시에는 노비의 삼족을 멸하겠습니다!"

"냥냥의 진노는 하늘을 찢을 것입니다!"

한은 영법에게 아홉 번 절을 하도록 하였다. 그리고는 이마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었다.


그 순간 문 앞에 서 있던 두 대머리 중 수염이 없는 쪽인 선령이 눈을 번쩍 뜨더니 일갈했다.

"멈춰라! 냥냥께서 그 아이를 건드리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자 한이 찔끔하더니 손을 거두었다.


선령은 사내들을 지휘하여 밥하고, 청소하고, 가구들을 정리하여 사내들이 여기저기 나누어 앉아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나누어 주었다. 보아하니 이들 무리들 중에서 가장 어른이거니와 성격도 무던하고 또 지혜로워 보였다. 그에 비하면 텁석부리 소당은 성격이 좀 급했고 쉽게 감정 표현을 하는 편이었다.


저녁이 되자 선령과 소당은 문 앞에서 다시 눈을 감고 섰다. 일종의 보초를 서는 것이었는데 바로 여다혜를 보호하는 모양이었다. 나머지 여덟 대머리는 네 사람이 한 조로 조별로 밖에 나가 식료품 등 필요한 물건을 사 오고 나머지는 집 안에서 빈둥거렸다.


2, 3일 지나고 놀란 마음을 진정한 영범은 한에게 물었다. 

"저 지금 무얼 하고 계시는 중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그야 냥냥을 모시고 있잖아."

"아 선령, 소당 두 분이 냥냥을 모시고 여덟 분은 지원하는 모양이군요?"

그러자 한은 영범을 빤히 쳐다보더니 이윽고 말했다.

"아이야. 너도 냥냥이 하시는 말씀 들었지? 우리는 너를 보호하고 있는 중이야."

"저를 보호한다고요? "

 "그래. 냥냥이 회임하신 일은 보통 일이 아니지. 놈들이 알아차리면 습격해 올 것이란 말이지. 그런 일이 일어나면 우리가 목숨을 걸고 너를 보호할 테니 걱정하지 마라."

걱정하지 말라니! 당신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걱정이 없었어!라고 속으로 소리 지르며 영범은 한에게 물었다.

"아니 누가 왜 저를 노립니까? 저는 원한 산 사람도 없고..."

영범은 말하다 말고 자신에게 원한을 가질 사람은 사실은 여다혜 본인 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은 마치 영범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아이야. 냥냥을 회임시킬 수 있는 것은 세상을 통 털어도 한 두 사람 나올까 말까 하단다. 넌 네 생각보다 귀중한 존재야. 그리고 냥냥의 원수들은 그런 너를 그대로 둘 수 없는 거야. 네가 누군지 따위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주영범은 속절없이 여다혜와 대머리들과 함께 한 달 정도 머물렀다. 주영범이 할 일이 없어 시간을 보내기가 어려워하자 한은 간단한 기초를 가르쳐 준다며 황사방의 무슬을 가르쳐 주려 하였다. 하지만 주영범의 운동 신경은 꽝이었고 결국 호흡법 정도 매우고는 대머리들이 연공 할 때 곁에 같이 서서 흉내 내는 정도에 그쳤다. 그나마 인터넷이나 tv를 보기 힘든 상황에서 다행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다들 함께 무술 동작을 하며 단련을 하고 있을 때 선령이 눈을 뜨고는 크게 말했다. 

"아이들아 냥냥이 나오실 것 같다!"

그러자 다들 "오오!" 하며 분주히 움직였다. 

영범은 영문을 몰라 눈만 껌벅일 뿐이었다. 뒤에서 누가 툭 어깨를 쳐서 돌아보니 한이었다. 한은 기쁜 얼굴로 옷음을 참지 못하며 말했다.

"이봐! 네 아이가 나온 모양이야! 축하하네!"

영법은 이게 무슨 개소리인가 싶었다. 무슨 아이를 한 달 만에 낳는가 말이다.

"아니 이제 겨우 한 달..."

말을 맺기도 전에 한은 다시 어깨를 치고는 가 버렸다. 그리고 다들 군대 식으로 열과 오를 맞추어 거실에 정렬하는 모습을 보고 영범도 한 구퉁이에 가서 섰다. 


침실 문이 열리자 여다혜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상하게도 원래 모습보다 더 젊어진 것 같았다. 여다혜는 품에 소중하게 수건으로 둘러싼 아마도 아이를 안고 나왔다. 기다리고 있던 대머리들은 모두 함께 소리 높여 외쳤다.

"냥냥의 무사한 출산을 축하드립니다!"

영범은 아이를 낳았다는 현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아니 아이라니. 이국 만리에 와서 별의별 꼴을 다 당하더니 이제 사생아를 낳았다고? 영범은 이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럼 살림을 차려야 하나, 아니 도망가야 하나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오갔다.


여다혜는 영범을 보자 웃으며 사뿐사뿐 걸어오더니 품에 안고 있던 수건을 풀고는 영범에게 보여 주었다. 영범은 수건 속의 아이를 보고 으악! 하고 비명을 지르고는 주저앉아 버렸다. 영법은 수건 속에서 나온 자신의 아이를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보더니 고개를 돌려 토하기 시작했다. 그 꼴을 본 여다혜의 눈살이 치켜 올라가며 찌푸리기 시작했다. 대머리들은 여다혜의 그 모습을 보고 모두 놀라며 바닥에 납죽 엎드려 숨을 죽였다. 대체 영범은 왜 이러는 것일까?(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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