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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철 Sep 14. 2024

유전자의 비밀(2)

기괴한 탄생

여다혜의 품속에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것은 길이가 20~30cm 정도 되어 보이는 핏빛 살 덩어리였다.  살 덩어리는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것이 마치 머리를 흔드는 모습 같았다. 만일 그 부위가 머리라면 말이다. 그리고 몸이 점액질로 쌓여 있는 듯 끈적거리는 느낌이었고 무엇보다도 지독한 냄새가 났다. 


주영범이 결정적으로 토하게 된 것은 그 핏빛 살 덩어리의 머리가 자신을 향했을 때 멈칫하며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 살덩어리는 영범을 보자 마치 먹이를 본 뱀처럼 몸을 곤두세우며 영범 쪽을 향해 몸부림을 쳤는데 영범으로서는 실로 공포스럽기 그지없었고 살덩어리가 꿈틀거리는 것에 따라 자신의 몸 안의 일부가 함께 꿈틀거리기 시작하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혜는 그런 끔찍한 살덩어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어루만지며 말했다.

"오, 아빠를 알아보는구나 아이야"

그러면서 다혜는 실눈을 뜨고 웃으며 영범 쪽을 돌아다보았는데 피부에 여인의 그림을 그려서 둔갑했다는 중국의 귀신이 있었다면 바로 지금의 다혜같았을 것이다.


다혜는 꿈틀거리는 살덩어리를 토닥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사내들을 향해 말했다.

"이 아이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야. 보다시피 음식을 먹을 입도, 배출할 항문도 없구나."

이 말을 들은 대머리들은 모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감히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회임을 한 것만도 대단한 일이다. 이 아이를 잘 관찰하고 분석하면 다음 아이는 더 나아지겠지"

여다혜는 그러면서 주영범 쪽을 쳐다보았는데 주영범은 머리가 삐쭉 솟았다.

'설마 또 나와 계속 섹스를 하겠다는 것인가?'

여다혜는 주영범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했는데, 영범은 마치 자신의 생각을 여다혜가 들은 것만 같아 소스라쳤다.


여다혜는 영범을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는 나지막이 말했다.

"너는 왜 이 아이가 이 모양인지 아느냐?"

영범은 고개를 저었다.

"바로 네가 너무나 정력이 없고 양기가 부족해서이다."

다혜는 혀를 쯧쯧차며 말을 이었다.

"이번 세기 들어 나는 회임을 한 적이 없다. 내가 피임을 한 것도 아니다. 내가 남자가 적었던 것도 아니다. 다들 내가 찾고 있는 종자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다혜는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네가 나를 관찰하고 있는 것쯤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내가 너를 그냥 받아준 것은 네가 특별한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특별한 구석...?

영범은 다혜의 말을 들으며 어리둥절했다. 우선 다혜의 말투가 아무리 중국말이라지만 아이에게 하는 듯한 말투인 것이 이상했고, 말의 내용도 이상했으며 자신에게 특별한 구석이 있다는 말도 이상했다.


"보통 인간은 나를 회임시킬 수 없다. 내가 오래전 나 자신에게 법술을 하나 걸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유전자를 이어받지 않으면 나를 회임시킬 수가 없어...."

'이게 무슨 말인가? 내가 당신의 그 사람이라도 된단 말인가'라고 영범은 속으로 생각하며 점점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져 갔다.

다혜는 또다시 크게 한숨을 쉬더니 처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사람은 야속하게도 먼저 가버렸어. 가려면 나도 데리고 갈 것이지.. 그를 이어받은 인간들이 여기저기 나타날 것이기에 나는 죽지도 못했다. 언젠가는 그를 다시 만나야 하겠기에..."


바로 그때 다혜의 손위에 있던 꿈틀거리던 살덩어리가 갑자기 쏜살같이 몸을 날려 영범의 얼굴을 덮쳤다. 이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어서 좌중의 모든 이들이 깜짝 놀랐다. 살덩어리는 숨통이 막혀 허부적 거리는 얼굴에 착 달라붙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비둘기 똥이 마당에 내질러진 모습 같았다. 영범은 눈, 코, 귀가 모두 살덩어리로 막혀 숨 막혀 죽을 것만 같았다. 점점 얼굴빛 이 파랗게 변하며 손발을 허우적거렸다. 


다혜를 비롯한 대머리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영범을 도우려 했지만 이미 영범은 쓰러져 버렸다. 영범은 문자 그대로 대자로 뻗어버렸고 살덩어리는 계속 꾸물댔는데 그 모습은 징그럽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영범의 얼굴을 덮고 있던 살덩어리는 꾸물거리며 영범의 입안으로 기어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다혜가 화급하게 소리쳤다. 

"이 녀석이 저놈을 잡아먹으려는 모양이다. 모두 함께 저 놈을 보호해라!"

그러자 대머리들 중 호법을 서던 둘이 영범의 앞뒤로 자리허더니 손바닥을 각각 주영범의 가슴과 등에 대고 눈을 감고는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그야말로 무협영화에 나오는 진기를 또는 내공을 주입하는 장면과 다르지 않았다.  이어서 나머지 대머리들 중 넷이 둘이 한 조가 되어 호법의 명문혈에 장심을 대고 눈을 감았다. 나머지 대머리들은 이들 대머리들의 명문혈에 마찬가지로 장심을 가져다 대고 눈을 감았다. 다혜는 손을 뻗어 살덩어리를 잡으려 했지만 살덩어리는 이미 주영범의 입안으로 들어간 후였다. 다혜는 급하게 입을 주영범의 입에 대더니 빨아대기 시작했다. 


죽은 시체 같은 주영범의 몸을 두고 이렇게 입을 빠는 한 여자, 앞뒤로 손을 가져다 댄 두 남자, 그리고 이들의 등에 기차놀이 하듯 손바닥을 명문혈에 갖다 댄 남자들은 각각 힘을 쓰기 시작했다. 먼저 가장 늦게 손을 댄 대머리들의 얼굴이 빨개지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다급히 소리쳤다. 

"사형, 난 이미 공력이 다한 것 같아요."

그러자 호법이 눈을 뜨고 외쳤다.

"우리가 이미 심장과 단전을 보호하고 있다. 목숨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야!"

그러자 맞은편의 호법도 눈을 뜨고 다혜를 쳐다보았다. 다혜는 그와 눈을 마주치고는 고개를 살짝 좌우로 흔들더니 핫! 하는 소리와 함께 입을 떼었다.


대머리들이 모두 "앗!"하고 소리치면 다혜를 쳐다보았다. 다혜는 거친 숨을 몰아쉬더니 소매를 들어 입을 닦으며 말했다.

"그 아이를 죽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 놈이 죽었을 거야!"

대머리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며 슬퍼하였다. 바로 그 순간 주영범의 몸이 바닥을 튀기며 일장 정도의 높이로 뛰어올랐다.

대머리 중 하나가 "이게 무슨 일이람!" 하며 몸을 날려 경계 태세를 취하였다. 다혜도 놀라 이 광경을 쳐다보았다.


주영범의 몸은 바닥에 떨어지며 두세 번 튀더니 그다음에는 바닥에 등을 꼭 붙이고는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던 그의 얼굴에 붉은 선이 나타나며 그어지기 시작했다. 다혜는 이 장면을 보고는 급히 몸을 날려 주영범의 정수리에 손을 대었다. 그리고는 대머리들에게 말했다.

"내가 내공으로 그 아이를 부수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다시 움직이는구나! 기운의 움직임을 보니 살이 쪼개지고 흩어져 이놈의 몸 곳곳에 퍼져 나가 있는 것 같다."

"냥냥! 그렇다면 그 아이가 다시 살아날 수도 있습니까?"

"지금은 살아있다기에는 몸이 천 개 만개로 부서져 있고 죽었다기에는 아직 움직이고 있으니 잘 모르겠다. 일단 심장과 내장에 침투하지 못하도록 다들 힘을 쓰도록 해라!"

그러자 대머리들은 모두 "네!"라고 외치며 심각한 얼굴로 각자 운공을 하였다. 


한 식경 정도가 지났을까? 다혜가 가장 먼저 영범의 정수리에서 손을 떼었다. 

"이놈의 뇌는 잘 보호된 것 같다."

두 호법이 이어서 말했다

"이놈의 심장과 단전도 잘 보호했습니다."

그러자 연이어 대머리들도 간장을, 비장을, 콩팥을 하면서 보고를 하였다.

대머리들의 보고가 끝나자 다혜가 묘한 얼굴을 했다.

"오장육부 모두가 잘 보호되었다고? 그럼 이 아이는 어디에 간 것이지? 아직 기척이 있는데?"


그때 주영범이 끙하고 소리를 내며 눈을 떴다.

다혜는 반색을 하며 물었다.

"오! 살아있구나. 몸은 괜찮으냐?"

영범은 눈을 껌뻑껌뻑하며 다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은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다혜는 픽 실소를 하며 영범의 턱을 잡고는 말했다.

"이것아. 우리가 아니었으면 벌써 목숨이 없었을 줄 알아라. 나와 우리 홍사방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야!"

그래도 영범은 눈만 껌벅이며 졸린 얼굴을 할 뿐이었다. 


다혜가 영범의 등을 토닥이며 일어섰을 때 누군가 천천히 박수를 치는 소리가 들렸다. 다혜는 깜짝 놀라며 등을 돌렸다. 다혜와 대머리들만이 있었던 큰 거실에는 어떤 사나이가 어느 사이에 들어와 보고 있었던 것이다. 사내는 여자라 해도 좋을 정도로 예쁘장하였으나 나이는 중년 초입 정도되어 보였다. 사나이는 허리를 꾸부려 예를 표하며 말했다.

"정말 오랜만입니다 냥냥!"

다혜가 사나이를 뚫어져라 쳐다보니 대머리들도 분분히 일어나서 사방을 살폈다. 거실 안에는 이 사나이 혼자였지만 거실 창 밖으로는 많은 차량들이 와있는 것이 보였다. 경광등이 반짝이는 것이 아마도 공안 차량들인 것 같았다. 차량들 뒤로는 수십 명의 사나이들이 완전 무장하고 총을 겨누고 있었다. 


다혜는 아랫입술을 깨물더니 물었다.

"언제부터 보고 있었느냐?"

사나이는 공손하게 대답했다.

"저희가 이 집을 감시한 지는 제법 됩니다. 냥냥께서 한놈을 처분하시는 것을 보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다는 보고를 아이들이 했지 뭡니까? 그래서 제가 급히 달려왔습니다."

"두꺼비 영감은 왜 안 왔지?"

"냥냥, 우리 영감님은 이제는 밖으로 나다닐 수 없는 몸이라는 것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래 이 자리는 어쩔 셈이냐?"

"냥냥께서 저 얼간이를 저에게 맡겨주시면 데리고 가서 몇 가지만 물어보고 다시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못하겠다면?"

"그럼 오늘 피바람이 불겠지요. 냥냥께서는 결국 떠나시겠지만 아이들과 저 얼간이는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다혜는 서릿발 같은 얼굴로 잠시 고민하더니 물었다.

"이놈을 죽이지는 않겠다고 약속하느냐?"

"물론이지요. 냥냥께 중요한 놈은 저희에게도 중요한 놈이니까요."

"좋다. 너에게 잠시 맡기마."

말을 마치자마자 다혜는 대머리들에게 눈짓을 하고는 문밖으로 나갔다. 대머리들도 모두 다혜의 뒤를 공손하게 따랐다. 밖에 있던 사나이들은 과연 공안들이었다. 그중 하나가 총을 겨누려 하자 거실 안에 있던 사나이가 고개를 저었다. 다혜와 대머리들은 모두 몇 대의 차에 나누어 타더니 떠나버렸다. 

사나이는 다혜 일행이 모두 떠난 것을 확인하더니 고개를 돌려 주영범에게 말했다.

"오랜만이야. 주. 영. 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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