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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편소설 쓰는 남자
Mar 29. 2021
머리숱이 적었다. 온갖 처방을 썼지만 꽝. 신에게 빌었다. 제발 머리털 좀 나게 해주세요. 뜻밖에도 신이 응답했다. 소원을 들어주마. 단 조건이 있다. 절대 이발하지 마라. 감지덕지, 두 말할 것 없이 콜. 전화벨 소리에 번쩍 눈을 떴다. 꿈이었다. 우라질. 길게 한숨이 나왔다. 근데 꿈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머리숱이 늘기 시작했다.
애지중지 머리털을 길렀다. 땅바닥에 닿을락 말락 할 때까지 길렀다. 그러고는 어깨선을 따라 슥슥 가위질했다. 머리털이 길어질수록 관리의 불편함이 커진 반면, 신이 금지한 이발의 경계심은 줄어든 결과였다. 하지만 머리털은 반나절 만에 보란 듯이 복구되었다. 다시금 땅바닥을 스치는 머리털을 보면서 놀라운 신의 섭리를 세상과 공유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모발맨’이란 타이틀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다.
빡빡 깎은 머리털이 복구되는 반나절 동안의 영상을 빠른 화면으로 올렸다. ‘개신기하다’는 쪽과 ‘주작’이라는 쪽의 댓글이 반반 달렸다. 하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즉 머리털을 반만 빡빡 깎거나, 짧게 잘라 파마하거나, 역시나 짧게 잘라 울긋불긋 염색하는 등 조건을 달리한 영상들이 쌓일수록 구독자 수가 늘고 긍정 댓글이 우세해졌다.
그리고 머리털의 복구 시간이 점점 짧아졌다. 급기야 한 시간 이내로까지 짧아졌을 즈음, 영상에 광고가 붙었다. 수입이 짭짤했다. 더 짭짤한 간접 광고 수입도 뒤따랐다. 염색약, 티셔츠, 음료수, 컵라면, 햇반 등 의뢰받은 제품을 노출하면서 광고임을 알리지 않는 게 꺼림칙했지만, PPL로 먹고사는 드라마가 천지인 마당에 어떠랴 싶었다. 착각이었다. 한 유튜버의 폭로로 촉발된 뒷광고 논란에 된통 걸려들었다.
구독자 수가 폭락하고 부정 댓글이 폭발했다. ‘죽이러 가자’는 극언까지. 고개를 숙였다. 죽은 듯이 납작 엎드렸다. 수입 믿고 방만해진 지출을 죄려니 갑갑해 죽을 맛이었다. 논란이 잦아든 틈을 비집고 두 달 만에 방송을 재개했다. 머리털을 철봉에 바특하게 묶고 남은 머리털은 싹둑 자른 다음 대롱대롱 매달리기. 70센티미터 높이의 허공에 뜬 발은 5분 만에 바닥에 닿았고, 폭락한 구독자 수는 빠르게 반등했다.
허공에서 양반다리하고, 독서하고, 연주하고, 먹고, 마시면서 기왕의 구독자 수를 넘어섰다. ‘신박하다’는 댓글에 어울리는 행보로 한동안 재미를 보다가 ‘노잼’이란 반응에 울컥했다. 심장 쫄깃한 라이브 방송을 시도했다. 목을 감은 채 매달리기. 머리털 복구 시간이 8,9초로 짧아진 상황이라 질식사하기 전에 발이 바닥에 닿을 터였다.
준비를 끝내고 의자를 찼다. 대번 목을 죄어오는 머리털. 철봉을 잡고픈 욕구를 누른 채 속으로 1초, 2초, 3초…… 시간을 쟀다. 의식이 흐려지면서 초와 초 사이가 벌어졌다. 위태로운 무력감 속에서 마비되는 몸. 피가 안 통해서일까. 얼른 복구되지 않는 머리털. 뒤늦은 꿈틀거림이 속수무책으로 잦아드는 동안, 라이브 채팅창에서는 댓글들이 폭발했다. 그중 일부의 반응처럼 이런 게 바로 ‘대박’이라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