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간편소설 쓰는 남자
Mar 22. 2021
당신이 이 나무 아래로 날 처음 데려왔던 때가 생각나네요. 이처럼 외진 곳에 늠름하게 서 있는 은행나무라니. 샛노란 이파리는 또 얼마나 눈부시던지. 나비가 떼 지어 앉아 있는 것 같지 않으냐고 당신이 물었지요. 정말 그렇다고 감탄해 마지않는 내게 당신은 북아메리카에 서식하는 군주나비 얘기를 들려주었어요.
캐나다의 매서운 추위를 피해서 멕시코까지 내려갔다가 봄이 되면 다시 캐나다로 올라오는 거대한 나비 군단. 종잇장 같은 날개를 퍼덕여 그 먼 거리를 이동한다는 것이 신기하고 놀라워서 따로 인터넷도 찾아보았는데, 멕시코 서부 해안의 전나무 숲을 점령해 버린, 영상 속 군주나비의 모습은 정말 장관이더군요.
나뭇가지에 붙어 쉬고 있는 나비를 보면서 당신을 떠올렸어요. 집을 나와 내게서 머물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당신의 행보가 어쩐지 군주나비의 이동과 닮아 있었거든요. 그런 당신에게 언제든 품을 내어주는 나는 전나무 같다 느껴졌고요.
나만의 남자이길 바라면서도 가정으로 돌아가는 당신을 한 번도 붙잡지 않은 건 나랑 있을 때가 제일 편하다는 당신의 말을 내 바람에 대한 응답이라 믿었던 때문이지요. 더는 기다리지 말라는 선언으로 그 믿음을 깨는 순간, 내 마음이 어땠을지 당신은 짐작이나 할까요?
바람이 부네요. 나비 떼가 날아오르듯 가지를 떠나는 이파리들. 채찍처럼 허공을 후려치는 빈 가지가 내 가슴으로 향하던 그날, 돌아서는 당신을 어찌해야 했을까요? 울며불며 잡아야 했을까요? 그런다고 당신이 잡혀주었을까요? 한 고집하는 당신은 그대로 떠났을 거고, 그럼에도 나는 당신을 보낼 수 없었을 뿐인 거지요. 가지에서 벗어난 이파리를 제 그늘 속에 쌓고 있는 이 은행나무처럼요.
당신은…… 나만의 것이어야 해요. 발에 밟혀 으깨어진 열매들이 이 아래 땅 속에서 편히 쉬고 있는 당신을 위해 해마다 고약한 향내를 솔솔 피워 올리더라도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