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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봉희 Apr 21. 2020

어른의 맛

카페인

 어릴 적 어른들은 커피는 애들이 먹는 게 아니라고 했었다. 커피맛이 궁금했던 어린 시절의 나는 커피맛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엄마에게 떼를 쓰기도 했었다.


 고등학생 때는 마시면 잠이 안 오고 집중이 잘된다며 친구가 집에서 가져온 캔 커피를 나눠 먹어보기도 했었다. 그날의 커피는 달콤한데 밍밍하고, 느끼한데 신기한 음료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매일 찾아 마실 정도로 생각나는 음료는 아니었다.


 스무 살, 성인이 돼서도 카페를 가면 줄곧 초코가 섞인 음료만 먹었다. 초코 음료를 시키는 내 옆에 온통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키는 대학 친구들이 신기하고 부러웠다. 어른들이 애들은 먹는 게 아니라 말했던 커피를 먹는 대학 동기들. 그 사이에서 어른들 틈에 껴 있는 어린이가 된 기분을 느끼는 나. 대체 아메리카노는 무슨 맛일까 궁금했다.


 하루는 아메리카노를 시킨 동기의 커피를 한 모금 마셔본 적이 있다. 사약의 냄새를 풍기는 음료가 내 혀에 닿는 순간, 이것은 쉽게 용기 낼 수 없는 씁쓸한 맛이었다. 사약을 먹어본 적은 없지만, 굳이 사약의 맛을 찾으라면 아이스 아메리카노라고 0.1초도 고민 없이 대답할 수 있었다. 금방이라도 윽! 퉤! 하고 싶은 맛. 이런 쓰디쓴 음료에서 고소함까지 느끼는 동기를 보면 정말 신기했다. 냄새도 맛도 사약같이 사악한 료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동기의 모습이 어른 같았다.


 동기의 커피를 마시고 몇 분 뒤, 내 심장은 아주 커다랗고 빠르게 뛰었다. 이상하고 처음 느끼는 뜀박질이었다. 나는 커피를 마시면 심장은 원래 이런 증상을 보이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나에게만 보이는 이상 징후였다. 약을 잘못 먹어 생기는 알레르기 같은 느낌. 카페인이 맞지 않아 생긴 이상한 느낌의 부작용. 심장의 뜀박질이 커피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된 그날 이후로 커피를 더 멀리하며 지냈다.


 그날의 뜀박질 이후로 9년이 흐른 지금,

안녕하세요. 밀크티 아이스로 한잔 주세요.”

“안녕하세요. 카페모카 아이스 한잔 주세요.”

안녕하세요. 토피넛 라떼 아이스에 샷 추가해서 한 잔 주세요.”

“혹시 샷 몇 개 들어가요? 두 개 들어가면 하나 빼주세요.”

 

 스물아홉의 나는 씁쓸한 맛이 나는 음료를 찾는 어른이 되었다. 스무 살 느꼈던 부작용 같은 심장박동은 더 이상 불편하지 않고 에너지가 넘쳐 신이 난다. 비록 아직 커피 샷은 한잔에 머물러 있고, 달콤함섞인 커피를 찾는다. 커피의 카페인이 부담스러운 날은 밀크티의 카페인을 찾는다. 찐하게 느끼지는 못하지만, 적당히 천천히 내가 그리던 어른의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아 잠시 설렌다. 그리고 내 심장이 카페인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도 오랫동안 힘차게 긍정의 에너지로 뛰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좋은 에너지를 뿜어내는 어른이 되어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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