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대 초반 학교에 입학한 설레는 신입생이던 나는 술 못 마셔서 귀신이 붙은 사람처럼 여기저기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술을 마셨었다. 술맛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단지 분위기가 좋아서 마시고 또 마셨던 시절. 그 시간 속에서 힘들면 술을 찾는 친구들과 술맛이 달다는 사람들을 마주할 때면 쉽게 그 마음에 공감하지 못했었다.
그렇게 이십 대 중반이 되고, 술 마시는 일은 점점 줄어갔다. 아이들을 가르치며 왠지 모를 책임감에 출근을 해야 하는 평일에는 술을 되도록 찾지 않았었다. 가끔 지치는 날에는 퇴근길에 캔 맥주를 사서 집에 들어와도 ‘어휴, 쪼꼬만 한 녀석들 때문에 내가 이렇게 내 몸에 나쁜 걸 넣으면서까지 슬픔을 느껴야 하나.’ 싶은 마음에 가방 속 캔 맥주를 냉장고에 넣었었다. 그러다 보니 술은 점점 멀어져 갔고, 나이가 한 살씩 더해가며 먹는 사람 하고만 먹게 되는 아껴두었다가 함께 나누는 존재가 되었다.
스물일곱, 결혼하고 신랑과 종종 캔 맥주를 즐겨 마신다. 가끔 퇴근 후 혼자 캔 맥주를 마시는 신랑을 보면 이 또한 쉽게 공감할 수 없었다. 퇴근 후 캔 맥주 하나가 주는 시원함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힘들면 힘든 데로 술을 찾지 않고 버텨냈고, 즐거우면 즐거운 데로 그 기분 그대로 즐기며 살아온 나에겐 퇴근 후 맥주 한 캔의 시간은 너무 머나먼 세상이었다. 그랬던 내가 이십 대의 마지막이 되어서야 그 마음과 기분을 알아채기 시작했다. 술 마시는 일이 한 달에 세 번도 안되던 내가 늦은 밤 캔 맥주를 사러 편의점에 가고, 장 보러 마트에 가서 바구니에 자연스레 맥주를 담는다.
얼마 전 할머니 집에 다녀오며 마음이 고달팠던 나는 버스에서 내려 캔 맥주를 살까 말까 고민을 하며 집으로 걸어왔다. 문득 큰삼촌이 맥주를 마시고 있으면 나도 하나 사서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삼촌에게 전화를 걸었다. 삼촌은 영화를 보려 한다고 했고, 맥주 마시고 있냐는 내 질문에 아니라고 답했다. 삼촌이 맥주를 마시고 있지 않아 그냥 집으로 들어갈까 했지만, 내 발길은 편의점으로 향했다. 결국 집으로 들어오는 길 캔 맥주 하나를 샀다.
그날 밤, 친구가 선물해준 망고에 캔 맥주 하나를 마시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할머니 집에서 하룻밤 잠을 자고 올라온 엄마에게서 집에 도착했다는 메시지가 왔다. 엄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어젯밤 맥주 마시고 바로 잤다고 말했다. 엄마에게 술을 마시고 바로 잠을 청했다는 말을 한 건 처음이었던 것 같다. 기분이 이상했다. 내가 엄마에게 이제 이런 말도 하는 나이가 됐구나 싶어 새삼스러웠다.
힘들었던 마음을 캔 맥주 한 잔에 털어내려는 딸에게 엄마는 '피곤하고 스트레스받아서 그렇다.'는 말로 답장을 보냈다. 무엇 때문에 맥주를 찾았고, 왜 술을 마셨냐는 말이 아닌 어른의 시간을 조금씩 걷고 있는 딸을 이해해주는 엄마. 혼자 마시는 맥주임을 알았을 텐데, 그 마음을 금방 알아채 주는 것 같은 내 엄마. 그 순간 우리가 같은 공기를 마시며 살고 있어 행복했다. 이렇게 당분간은 알코올에 내 마음과 감정을 털어내는 일을 즐길 것 같다. 그리고 우리 동네 편의점에 ‘호가든 로제’가 입고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