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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봉희 May 14. 2020

용기를 내보려고 해

 키도 몸집도 작은 나는 생김새도 세상 평화롭게 생겨서, 고등학생이라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 머리도 길러보고, 탈색을 해보고, 머리 색을 바꿔보고, 피어싱을 잔뜩 해보고 안 해본 노력이 없다. 하지만 항상 청소년 같아 보여서, 이십 대 초반처럼 보여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 듣고 싶지 않은 배려 없는 말과 행동을 자주 당하며 지낸다. 나이가 한 살씩 더해질수록 상황이 나아지기는커녕 선을 과하게 넘어 무례하다는 생각까지 들게 하는 의 빈도수가 높아져만 간다. 그럴 때마다 주변 사람들은 가만히 있지 말고 같이 반말을 해주라고 하지만 슬프게도 아직 나에겐 그런 담력이 없다.

 

 가끔 정말 화가 날 정도로 선을 넘는 사람이 있으면 웃으면서 나이를 말한다. "저 스물아홉이에요." 그리고 요즘에는 상대방이 비집고 들어올 틈을 주지 않고 결혼을 했다고 덧붙인다. "결혼도 했어요." 내 나이와 결혼을 했다는 사실을 들은 상대방의 태도는 동전 앞면과 뒷면이 떠오를 정도로 빠르게 뒤집히고 너무나 쉽게 달라진다. 분명 불과 10초 전만 해도 반말을 툭툭 던지던 사람은 “너무 어려 보여요. 누가 보면 학생인 줄 알겠어요. 결혼했다고 누가 생각하겠어요.”라는 말을 한다. 갑자기 '요'를 붙이고 말투가 좀 전과 달리 부드러워진다. 그러면 나는 씁쓸하지만 밝은 미소를 띠며 자주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더 나를 슬프게 만드는 건, 여태껏 한 번도 자신의 무례함을 미안하다 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모든 이가 당연하다는 듯 쉽게 없었던 일로 만들었다.

 

 이럴 때마다 기분 좋게 동전 뒤집기를 하려고 내 머리 위로 높이 던진 동전이 폭신한 손에 착지하지 못하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기분이다. 찌르르, 쨍그랑 내 귀에 불편한 소리를 꽂으며 속도 모르고 빙글빙글 돈다. 현기증이 밀려와 어지럽다. 입에서는 쓴맛이 올라온다. 입은 웃고 있지만, 기분은 상대방을 처음 마주했던 평범한 상태와는 정 반대의 감정을 가지게 된다. 나는 괜히 바닥에서 헤드 스핀을 멈추지 않는 동전에 화풀이를 한다. 오른쪽 발로 쾅 동전을 밟아 정지를 시키고, 있는 힘껏 꾹 누른다.


 보이는 얼굴과 얼토당토않은 이상한 판단 그리고 나이와 결혼의 여부로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는 사실에 힘이 빠진다. ‘배려와 존중이 없는 삶은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 나보다 나이가 어려 보여도 말과 행동에 알 수 없는 당연함과 무례함을 담으면 안 된다.’라는 생각이 발가락부터 타고 올라와 내 뇌를 뚫고 명왕성까지 불을 뿜으며 날아간다. 끓어오르는 불편함에 제대로 명왕성에 착지나 했을지 모르겠다.


 나도 나이보다 어려 보이는 건 좋다. 내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는 건 늙어 보이는 것보다 기분이 좋은 건 사실이다. 그래도 매번 다른 사람에게 골고루 불편하고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을 당하는 건 썩 기분이 좋지는 않다. 가끔은 성인인 나에게도 학생 같다는 이유로 막 대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 중학생인 내 제자들은 대체 어느 정도란 말인가 싶은 생각도 들어 심장에서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미친 듯이 끓어오른다. 내가 느낀 불편함과 부당함을 내 제자들이 느낀다고 생각하면, 뇌에서는 이미 무례함을 서슴없이 쏟아내는 사람을 붙잡고 ‘어떠한 조건이 따라오던 존중과 배려는 항상 필요한 겁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심장과 간이 콩알만 한 겁 많은 선생님은 여전히 당연하지 않은 일 당하고 혼자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며 혼잣말을 반복한다. 아직도 나 하나 지키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다.


 매년 반복되는 다짐이기는 하지만 올해 더욱더 다부진 다짐을 한다. 무례하다는 걸 알려주자. 반말에는 반말로 상대해보자. 어떤 이에게는 쉬운 일처럼 느껴지겠지만, 나에게는 엄청난 용기와 강함이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나의 엄마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 딸이 생긴 건 순하게 생겼어도, 성격은 아닌데.”라고 말이다. 올해 나는 나 자신을 조금 더 단단하게 지키며, 내 제자들도 나도 더 나은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많은 용기를 내며 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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