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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봉희 May 15. 2020

비도 오고 따뜻한 너도 오고

 그저께 일기예보를 확인해보니 금요일 아침부터 일요일까지 비 소식을 알리고 있었다. 이틀이 넘도록 비가 내린다니 신이 나고 좋았다. 그리고 오늘 아침 빗소리에 잠을 깼고, 일어나자마자 편의점을 핑계로 외출 준비를 했다. 빗소리를 더 크게 듣고 싶어서, 비에 젖어 본래의 색보다 짙게 변한 땅을 밟고 싶어서, 시원한 바람을 느끼고 싶어서 씻지도 않고 슬리퍼를 신고 우산을 꺼내 밖으로 나섰다.

 

 어제저녁 드라마 속 창문으로 시원하게 내리치는 비를 보면서 신랑에게 “내일 저렇게 비 많이 내렸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었다. 밖으로 나가보니 드라마 속만큼 비가 쏟아지지는 않았지만, 적당히 경쾌한 소리를 내주는 오늘의 비도 마음에 들었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이 들어 비가 더 많이 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단지 내에 있는 편의점 두 군데를 들려 흑당 음료를 잔뜩 구매했다. 달콤한 음료가 가득 담긴 검정 봉투를 손에 쥐고 내리는 비를 뒤로 한채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집으로 들어와 냉장고 가득 음료를 줄 맞춰 넣은 후, 소파에 앉아 핸드폰 메시지를 확인하던 내게 반가운 아이의 이름이 보였다. 그리고 아이에게서 온 메시지로 오늘이 스승의 날이라는 걸 알았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비 내리는 걸 더 구경하다 들어오고 싶었던 마음을 검정 봉투가 무거워 다음으로 미루고 들어와야 했었다. 그게 못내 아쉬웠는데 핸드폰 속 아이의 이름을 보고 그 마음이 사르륵 사라지면서 차가운 바람을 맞아 시렸던 내 발이 따뜻해져 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아이를 잊지 않고 내 마음속 기억 상자에 담아 잘 지내고 있어서 행복했다.

 

 선생님으로 살아온 7년의 시간 동안 1년에 100명도 넘는 아이들이 내 삶에 머물렀었다. 그리고 한 명 한 명 다른 색깔로 존재감을 뿜어내며 나를 울리고 웃겼었다. 수많은 아이의 이름과 얼굴을 모두 잊지 않고 기억하며 살 수 있다면 정말 좋으련만, 내게 그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도 나에게 시간을 내어주고 진심으로 따뜻한 사랑을 주었던 아이만큼은 이름과 얼굴을 꼭, 기억하며 살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마음에 기억 상자를 만들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며 나는 꾸준히 아이의 이름과 얼굴 그리고 우리의 순간을 기억 상자에 차곡차곡 담았었다.

 

 비가 토도독 내리는 오늘,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 준 아이는 내 기억 상자 속 머무는 아이였다. 잠시 머뭇거리며 누구였는지 떠올릴 시간이 필요하지 않은 아이. 우리가 같이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나는 항상 아이를 보며 ‘정말 마음이 따뜻한 아이 같아. 너무 좋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건강한 마음으로 성장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내가 이런 마음으로 매번 간절하게 기도를 하게 만들었던 아이가 보내온 메시지를 보고 있으니 2년 전 여름 우리에게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 2년 전 여름 아이와 저의 이야기는 내일 이어서 들려 드릴게요. 금요일인 오늘, 모두 수고 많으셨어요. 그 어느 날보다 더 편안한 밤 보내셨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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