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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봉희 May 19. 2020

올해까지만, 같이 지낼래

 얼마 전, 자전거를 제대로 세우지 않아 땅으로 꼴깍 넘어지게 만드는 사건이 있었다. 자전거를 세우고 내가 등을 보이자마자 쿵 하는 소리에 어깨가 움츠러들며 들썩였었다. 잠깐 놀라긴 했지만 내 부주의로 자전거를 넘어트리는 일이 종종 있었던 터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일으켜 세웠다. 잠시 후 자전거를 세우며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던 쿵 소리가 별일이었음을 깨달았다. 맙소사. 왼쪽 브레이크 손잡이가 없는 거 아닌가. 쇳덩이 브레이크 손잡이가 바닥과 부딪히며 부러진 거다. 충격적이었다. 순간 오른쪽 손잡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다행히 오른쪽은 손잡이도 브레이크도 제자리에 있었다.

 

 조금 더 같이 지내고 싶은 이 녀석이 자꾸 나 때문에 부러지고 망가져서 엉엉 울고 싶었지만, 우선은 외출하던 중이었기에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슬픔이 덜컥 밀려오기 전 정신을 차리고, 오른쪽 브레이크는 아직 살아있으니깐 다행이지 싶은 마음으로 페달을 다. 왼쪽 브레이크가 앞바퀴인지 뒷바퀴 인지도 모르는 자전거 주인은 막상 달려보니 큰 불편함이 없고, 오히려 브레이크 손잡이가 없는 게 웃겨서 혼자 투명 브레이크라며 손으로 브레이크 잡는 척을 하고 사진을 찍고 놀았다.

 

 그날 오후, 신랑에게 브레이크 사건을 이야기했다. 신랑은 위험하지 않냐며 자전거를 새로 장만하자고 했고, 나는 괜찮다고 조금 더 타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게 아무 탈 없이 며칠을 타고 다녔다. 그러다 뒷바퀴가 터지는 일이 생겨 자전거를 끌고 신랑과 집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자전거 가게로 향했다. 자전거 가게를 가는 길에 신랑은 또 자전거를 바꾸자는 말을 했다. 브레이크 손잡이도 부러지고, 바퀴도 마모되고 얇아서 위험하고, 혹시 자전거 색깔 때문인 건지 여러 가지 이유와 궁금증을 나열하며 자전거를 바꾸지 않는 거냐고 물었다. (참고로 내 자전거는 분홍색과 하얀색의 조합으로 아주 사랑스럽다. 휠에는 서울로 상경하고 별 장식도 달아줬었다. 비록 지금은 꼬질꼬질해졌지만)


 1년이 넘도록 자전거를 새로 구매하자는 신랑의 오랜 설득에도 내가 자전거를 바꾸지 않고 잊을 만하면 병원을 찾는 이 녀석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다. 스물네 살, 독립하고 내 돈으로 장만한 첫 자가용이기 때문이다. 당시 완조립 자전거는 가격이 비싸서 반조립 제품으로 사고 조립을 못 해 애를 먹었었지만, 그 시간마저도 즐거웠다. 독립하고 세 번의 이사를 모두 항상 함께 다녔던 녀석. 멀리는 못 가더라도 내 콧구멍에 바람도 틈틈이 넣어주고, 이사할 때마다 길치인 나를 조금 더 빠르게 새로운 동네에 적응하게 만들어줬던 녀석.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내 모습을 본 지인들은 자전거가 나와 잘 어울린다며 가끔 기분 좋은 말도 해줬었다. 지금은 철로 된 부분이 여기저기 녹슬어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지만, 쿨하게 보내줄 수 없는 내 5년.

 

 신랑에게 자전거 가게를 가는 동안 자전거를 쉽게 바꿀 수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리고 "올해까지는 이 자전거 탈 거야. 내년에 새로운 자전거를 살 건데 내년에 바꾸는 자전거는 지금보다 바퀴가 작아지면 안 되고, 오빠 자전거만큼 바퀴가 두껍고 바구니가 좀 더 큰 자전거로 내가 번 돈으로 장만할 거야. 자가용은 내 돈으로 사고 싶어."라고 말했다. 앞으로 남은 스물아홉의 시간 동안 부지런히 이 녀석과 좋은 곳을 많이 다닐 거다. 신나게 페달을 돌리고 바퀴를 굴리며 포근한 봄도 뜨거운 여름도 시원한 가을도 차가운 겨울도 즐겁게 마무리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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