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0시쯤 아파트 1층 입구에서 누군가가 우리 집으로 호출을 눌렀다. 종종 우리 집에 오는 손님이 아니면서 호출을 누르는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아무도 올 사람이 없는데 누굴까, 누가 잘못 누른 거겠지 싶어 베개에 귀를 깊이 묻었다. 고요한 집에 적막을 깼던 요란한 호출 소리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현관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결국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몸을 일으켰다. 소파 위에 개어 놓은 후드티를 입고 모자를 뒤집어쓴 채 슬리퍼를 질질 끌며 현관으로 향했다.
“누구세요..”
“우체국입니다.”
아파트 1층에서부터 울리던 호출 소리의 주인공은 우체부 아저씨였다. 평소 집에 있어도 택배는 문 앞에 놔달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지내서 택배 기사님과 마주칠 일이 없었다. 그래서 우체국 택배도 항상 문 앞에 놓고 가셨기 때문에 우체부 아저씨와 마주할 일이 없었다. 그런 우리가 처음으로 얼굴을 튼 이유는 사람에게 직접 전달해야 하는 등기 때문이었다. 우체부 아저씨인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죄송했다. 하지만, 죄송한 마음도 잠시 아저씨의 질문은 내 잠을 홀딱 달아나게 했다.
“김OO 씨 댁이죠? 관계가 어떻게 되세요? 따님이세요?”
내가 대답할 겨를도 없이 자문자답하시는 우체부 아저씨 덕분에 나는 김OO 씨 아내가 아닌 딸이 되어버렸다. 신랑과 평생 불가능한 1촌 사이가 되었다.
“저희 집에는 아이가 살지 않아요. 저희 집은 ‘0촌’으로 맺어진 부부만 산답니다. 저는 김OO 씨 아내예요.”
또박또박 우체부 아저씨께 말하려 했지만, 아저씨의 발은 이미 엘리베이터를 향하고 있었다. 마음이 급해 보이는 그에게 중요한 건 쌓여 있는 업무인 듯했다. 나는 나지막이 “아내예요...”라고 말했고, 아저씨는 왠지 모를 찝찝함을 남기시고 급히 다음 집으로 향하셨다. 내가 문을 늦게 열어 드렸으니 아저씨를 붙잡고 정확히 말할 수 없었다. 다음에는 꼭, 아내라고 두 눈을 보고 확실하게 말하리라 다짐했다.
그 일이 있고 2주 정도 지났을까. 오전 10시쯤 초인종이 울렸다. 누가 찾아온 건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가 온 거다. 나를 딸이라고 생각했던 우체부 아저씨가 온 거다. 오늘이 기회다. 번쩍 일어나 거실 소파 위에 개어 놓은 후드티를 입고 모자를 뒤집어썼다. 그리고 아주 재빠르게 뛰어나가 문을 열었다. 그는 나에게 2주 전과 같은 질문을 했다.
“김OO 씨 댁이죠? 관계가 어떻게 되세요?”
“저, 아내입니다.”
우체부 아저씨는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의심스러운 눈빛을 쏘았다. 충분히 이해한다. 나는 종종 작은 키와 작은 몸집, 옅은 화장으로 학생이라는 오해를 많이 받아왔다. 그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기에 한 번 더 이야기했다.
“김OO 씨 제 신랑이에요. 저는 아내고요.”
“네~ 그러면 아내분이 받으셨다고 적을게요.”
이게 뭐라고 깔끔한 기분이 들고, 좋았다. 다음에는 우체부 아저씨가 먼저 나를 알아봐 주실 것 같아 기대도 되고 기뻤다. 그리고 일주일 뒤 나는 오렌지빛이 돌던 머리카락을 검정에 가까운 색으로 바꿨고, 그다음 날 우체부 아저씨가 우리 집에 한 번 더 방문하셨다.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김OO 씨 댁이죠? 사모님 되시고요~”
“네! 맞아요!” 머리색을 바꿨는데도 나를 알아보고 김OO 씨 아내라고 불러준 우체부 아저씨.
행복을 전달하는 우체부 아저씨. 저는 '이봉희'라고 제 이름이 불리는 삶을 지향해요. 그런 제가 '김OO 씨의 아내'로 불리는 순간은 행복해서 정말 좋아요. 이렇게 먼저 알아봐 주시고 행복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제가 박카스 들고 현관으로 뛰어갈게요. 그날은 제가 우체부 아저씨께 엄청난 에너지와 행복을 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