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클래식 사랑은 중학교 때 시작되어 중학교 때 절정을 이뤘다.
클래식을 즐겨 듣는다며 우쭐하던 허세도 있었고, 가사 없는 선율에 나만의 감정과 스토리를 더하면서 나만의 감성을 키워갔던 것 같다.
중학교 때 삶의 깊이를 느끼려 의도적으로 고뇌에 빠져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클래식 선율에 투영하려 했었고, 사소한 아픔을 과장해서 깊은 슬픔에 잠겨 있고 싶었던 것 같다.
중학교 시절, 난 너무 행복했다. 그 행복의 이면에 과장된 슬픔의 기저에서 나의 행복은 극대화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느꼈던 풍족함은 더 가진 것이 아니라 덜 가진 것을 인정하고, 오히려 바닥까지 내려가는 솔직함에서 비롯되었다. 그걸 도와준 것이 음악이었다.
중학교 때의 나의 감성은 클래식과 팝송으로 덩치가 커져서 그 감성으로 평생을 사는 것 같을 정도다.
행복감조차 억누르면서 대입을 위해 현재의 모든 것을 다 담보로 담아두고 인간성조차 포기하려 했던 고등학교 시절의 실제 슬픔과 아픔의 문턱을 넘어서기 전...
중학교 졸업식이 내게는 슬픔의 절정이었다. 전교생의 눈물을 내가 다 혼자 모아서 흘리는 것처럼 오열했다. 중학교 내내 키워왔던 슬픔의 정서와 감성을 다 고갈시켜버릴 것처럼...
그중 내 기억 속에 가장 사랑했던 곡들을 소개하려 한다.
1. 베토벤 - 바이올린 로망스 2번 F장조 Op.50
감성이 충만하고 싶을 때 홀로 외로이 자주 들었던 곡. 슬픈 감성 속에서도 훗날 만나게 될 사랑하는 미지의 여인에 대한 낭만적인 느낌을 꿈으로 간직했고, 그 낭만적인 느낌은 현실이 되어 지금 이 순간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2. 마스카니 - 오페라<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간주곡
너무 아름다운 선율에서 헤어날 수 없었던 곡.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면 최면에 걸린 것처럼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던 곡.
3. 바흐 - G선상의 아리아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간주곡 같은 클라이맥스는 없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감동과 전율을 느꼈던 곡. 영원히 무한반복되는 음악 속에 갇혀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음악이 끝나서도 계속 진행되는 듯한 끝없는 여운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곡.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 제3번 제2악장 아리아를 19세기 바이올리니스트 빌헬미가 독주 바이올린의 G선으로만 연주하도록 편곡한 곡이라고 함.
첼로 버전
4. 베토벤 -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 2악장
실은 Louise Tucker의 <Midnight Blue>라는 팝송으로 처음 접하고 난 후 알게된 클래식 원곡.
5. 차이코프스키 - 교향곡 6번 비창
중학교 때의 사소한 슬픔을 낭만적인 것으로 승화시켜주었고, 슬픔에 잠기고 싶을 때마다 들으며 우수에 젖은 듯한 자신을 위로하고 싶었던 곡. 그때는 몰랐다. 진짜 현실의 슬픔은 이곡만큼 낭만적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6. 쇼팽 - 에튀드 Op.10 제 3번 이별의 곡
첫 사랑의 아픔을 담아 감정이입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