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트라우마로 나를 알기

나의 어린시절 트라우마로 나를 알기

진정한 나를 찾고싶어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고싶어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러한 자리에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것은 진정한 자신을 찾는 길에 여러가지 방해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중에 하나로 방어기제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에 더해서 어린시절의 트라우마도 자신을 찾는데 방해가 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특히 어린시절 오랜시간동안 경험했던 트라우마가 진정한 자신을 찾는데 걸림돌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어린시절 지속적으로 경험한 부정적인 사건은 주로 부모와의 관계에서 발생하게 되는데, 지속되는 고통의 시간을 통해서 어린아니는 자신의 방어기제를 만들게 됩니다. 이러한 방어기제가 바로 어린시절 트라우마의 한가지 부작용이라고 할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방어기제 말고도 다른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데, 대표적인 증상이 정서적 플래시백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건강한 정서반응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사람이 느끼는 정상적인 두려움은 위기를 발견하고 피할수 있게 만들어주는 좋은 기능이 있습니다. 건강한 수치심은 건강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수 있도록 행동을 제어해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건강한 슬픔은 다른 사람의 슬픔에 공감해 줄수도 있고 자신의 슬픔에 반응하여 충분히 슬픔을 느끼고 그 상실이나 괴로움을 이겨낼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서적 플래시백은 상황에 비해서 과하다 싶을만큼 감정을 느끼게되고 그러한 강한 감정으로 인해서 현실에서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역기능적인 감정반응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간단하게 사과만 하고 끝날 일들도, 과도하게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하거나 간단하게 놀라면 끝날 상황에 대해서 과도한 두려움이 만들어져서 다른 행동을 하지 못할정도의 수준까지 발전할수도 있으며, 대외활동을 전혀 하지 못할정도로 심각한 상황이 만들어 질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증상은 어린시절의 고통스러운 감정들이 몸에 기억되어 있다가 현실에서 그러한 감정을 유발할수 있는 유사한 상황이 발생해서 현재의 상황에 대한 정상적인 감정반응이 아니라 어린시절 경험했던 몸의 감정반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다른 사람들과 다른 존재로 만들어주는 중요한 특징 중에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감정반응을 들수 있습니다. 즉 사람마다 상황에 따른 감정과 감정반응이 다르기 때문에 개성이 만들어질수 있는 측면이 있습니다. 즉 구별되는 감정반응은 한 개인의 정체성과도 연관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린시절 트라우마로 인해서 정상적인 감정반응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한 개인의 정체성에도 혼란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주로 트라우마는 두려움을 유발하고, 방어기제는 이러한 두려움을 회피하려는 행동기제입니다. 결국 트라우마의 영향력 아래 산다는 것은 두려움에 반응하는 삶인 것입니다. 사람이 두려움에 반응하면서 살게 되면 자신의 가능성을 최대한 발휘하면서 살기 어려워집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즐겁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자신의 창조성과 재능이 최대한 발휘되기 때문입니다. 왜 독재 정권이 오래 지속될수 없고 그 아래에서 예술적인 창조성이 발휘될수 없는지가 이를 잘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트라우마의 영향력 아래에서는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을수 없습니다. 두려움의 노예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서는 이 트라우마의 고통속에서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잃어버리고 노예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거짓자아를 인식해야 합니다. 그 거짓자아는 진정한 자아와는 다른 삶의 목적이 있습니다. 거짓자아는 진정한 자아가 누구인지 그리고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두려움과 수치심으로 움직이는 거짓자아는 두려움과 수치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고, 그것들을 최대한 느끼지 않기 위해서 삶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과연 두려움과 수치심이 없다면 우리들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두가지 작업이 걷기와 말하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두가지 기술을 아기때 배울수 있다는 것이 어쩌면 우리에게는 엄청난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아기가 걷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시련은 인생의 가장 혹독한 것입니다. 수없이 넘어지고 실패하지만 아기는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창피하게 생각하지도 않고 실패를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수십번 수백번 넘어지고 깨져도 포기하지 않고 이루어냅니다. 만약 그런 아기에게 두려움과 수치심이 있다면, 아마도 걷기 기술을 배울수 있는 아기들은 없을 것입니다. 아기가 만약, 또 넘어지면 어떻게 하지, 무릅이 까지면 어떻게 하지, 다른 사람들이 내가 넘어지는 것을 보고 놀리면 어떻게 하지, 이런 감정을 느낀다면 결코 걷기라는 고난의도의 기술을 배우지 못할 것입니다. 말하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맘마를 시작으로 엄마를 배우고 아빠를 배우는 아주 초보적인 수준에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말하는 고난의도의 표현기술을 배우는 과정은 녹녹한 과정이 아닙니다. 자신이 해내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과 다른 사람들이 놀리면 어떻게 하지라는 감정이 어린아이를 지배한다면 결코 이루어낼수 없는 어려운 과제인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두려움과 수치감으로 인해서 하고싶은 것을 해보지 못하고 원하는 것을 추구하지 못하고 살아가게 되는지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어린시절의 트라우마로 인해서 증폭된 두려움과 수치심으로 인해서 얼마나 제한된 삶을 살아가게 되는지 생각해 봅니다. 진정한 자신을 숨긴채로 거짓자아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살아가는 우리의 힘겨운 삶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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