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삶의 중요한 결정을 좌우하는 감정

우리는 모르는 사이 감정에 의해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한다.

칼융은 "무의식을 의식화 하지 않으면 그것이 자신의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간다" “Until you make the unconscious conscious, it will direct your life and you will call it fate.”


이말은 정말이지 진실이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일은 직장상사에게 무엇인가를 요청하는 일이었다. 아니 무엇인가를 도와달라고 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그냥 있는것 가지고 어떻게든 해나가려고 했다. 그러니 직장생활이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그리고 자신의 어려운 감정이나 무엇인가 부탁할것을 이야기 하는 것도 하지 못했다. 엄청난 수치감과 들어주지 않을것이라는 부정적인 감정이 나를 지배해서 그럴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이러한 상황이 있어도 어느정도 생존할수 있었지만, 미국에 와서는 생존 자체가 위험한 상황이었다. 사실 이러한 나 자신에 대한 문제의식도 갖지 못했었다. 왜냐하면 뭐가 문제인지도 알지 못했으니 말이다. 삶이 너무 외롭고 너무 힘들었는데 왜 고통스러운지 알지 못하니, 정말 죽고싶었다. 어렵게 상담을 받으러 갔지만, 어떻게 왔냐고 물어보는데 그냥 회사생활이 힘들다고 말하는 것으로는 상담자도 나를 도와주기 힘들었다. 몇번 나가다 상담도 그만 두었다. 절망적이었다. 


도대체 어디서 시작을 해야하나.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지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책을 읽기 시작했다. 사람들과 등산을 가기 시작했다. 언제나 마음이 힘들고 어려울때면 한국에서도 등산을 갔었다. 등산을 가면서 같이 등산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도 하고 그 사람들안에서 받아들여지는 따뜻한 감정도 느꼈다. 어떤 공동체에 받아들여진다는 따뜻한 느낌이 나의 삶을 더 의미있고 살만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러면서 내가 집에서 이러한 따뜻한 감정을 느낀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등산을 가서 만나는 사람들은 나를 존중해주고 내가 등산을 잘하면 좋아해주고 칭찬해주었다. 나는 이러한 격려와 인정이 나의 집에서는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인식이 짧은 시간에 된것은 아니다. 많은 시간이 걸리고 책을 읽으면서 동시에 진행된 것이다. 등산만 해도 1년이상 매주가면서 사람들과 친해지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책을 읽으면서 정서적으로 미성숙한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남기는지, 세대를 타고 내려오는 트라우마가 가족의 삶을 얼마나 망가뜨리는지, 건강하지 않은 부모들의 양육방식이 아이들을 얼마나 망가뜨리는지, 불안정한 감정이 야기할수 있는 문제들, 상호의존 (Codependency)의 증상과 원인, ACoA관련 내용등 수백권의 관련 책을 읽으면서 나의 가족들과 양육과정이 건강하지 않았구나 하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러면서 내가 그런 양육과정을 통해서 잘못된 삶의 패턴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상담심리도 공부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위빠사나 명상이라는 것이 훌륭한 도구가 될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인류가 오랜시간동안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해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다시  처음의 문제로 들어와서 내가 왜 직장의 상사에게 무엇을 요청하는 것을 생각도 못하고 있었을까? 그리고 왜 그렇게 극도로 수치스럽고 하지 않으려고 했을까? 이러한 문제는 나와 부모와의 관계에서 시작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나의 아버지는 극도의 감정적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분이셨다. 나는 부모님들중 어떤분과도 친밀한 관계를 갖고있지 못했다. 나는 집에서 놀림감이었다. 뚱뚱하고 머리숫 없고 공부못하는 그런 존재였고 부모들은 나에게 따뜻한 격려의 말이나 관심이 없었다. 부모의 감정적 필요가 있을때만 이용해먹는 그런 존재였다. 어린 아이들은 그런 상황이 되면 부모가 잘못된 사람들이라서 그런 대접을 받는 다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그런 인간이라서 그런 대접을 받는다고 생각하게된다. 아직 인지적으로 성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무서운것이 자라면서 자신의 정체성으로 굳어진다는 것이다. 자신이 못나서 부모들이 관심을 갖지 않고 무시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더 무서운 것은 부모님들도 자신들이 나에게 그렇게 대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냥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했던 것이다. 그것이 가족시스템 이론에서 자녀들중에 하나는 희생양 (Scapegoat)의 역할을 맏게 해서 가족의 모든 감정적 어려움들을 뒤집어 씌우는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말이다. 그렇게 해서 가족의 트라우마가 세대를 타고 흘러 내려가는 것이다. 그 아이가 무의식을 의식화 할때까지 말이다. 정말이지 무서운 것이다. 


이러한 과거를 가진 나는 사회에 나와서 권위자들에 대한 극도의 분노와 불신이 무의식 속에 있었고, 내가 도움을 청해도 그들이 도와주지 않을 것이라는 무의식의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가지도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나도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감정적으로 느끼고 있었을뿐 의식하지 못하고 오랜기간동안 미련하게 살아왔던 것이다. 그리고 낮은 자존감으로 내가 더 잘할수 있었는데도 그것을 자신있게 말하거나 발표하지 못했다. 그래도 지금까지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것을 보면 부모들이 나를 낮게 평가했던것에 비하면 그렇게 바보는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부모들이 나를 어떻게 정의하고 대했느냐에 따라서 나의 자존감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자신들의 자식이 어떤 가능성이 있고 어떤것을 잘할수 있는지 알기도 전에 무의식적으로 자신들의 수치감과 두려움 분노의 감정을 나에게 투영시켜버린 것이다. 


나는 그런 배경도 알지 못한채, 가족안에서 내려우는 수치감과 분노 불신의 감정을 내 안에 가두어두고 그 오랜 시간을 괴로워하고 힘들어 하면서 힘겹게 삶을 살아온 것이다. 주의를 돌아보면 이러한 감정적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나만이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다. 하지만 깨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즉 무의식을 의식화하지 못하면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가게 된다. 비극이다. 그 비극에서 깨어나야 한다.  나의 조그마한 글들이 많은 사람들이 그 무의식에서 깨어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더 바랄것이 없다. 



작가의 이전글 가족안에 대물림되는 감정 인식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