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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중이 아니라 땡깔

기분 좋은 날

by 바다 김춘식

큰길로만 다니면 달리기에 바빠 주변을 둘러볼 재미가 없어요. 운동 후 골목길을 배회하는 중 능소화가 오래된 담벼락을 타고 피어있는 것이 보였어요. 중국이 원산지인 능소화를 이맘때쯤 필름에 잘만 담으면 동양화처럼 이쁘게 사진으로 담을 수 있어요.


차에서 내려 필름 서너팡 소모하고 마무리하려 할 때 담벼락 옆에 텃밭이 보이는데요. 주 작물인 붉은 고추가 가을임을 짐작케 했습니다.


그려느니하고 있을 때 밭고랑 제일 앞쪽에 까만 열매가 눈에 확 끌립니다. "땡깔"입니다. 전기도 안 들어오는 시골에서 뱀딸기, 깨묵(깨금, 개암), 보리수 등과 함께 배고픈 우리들의 먹거리가 되어준 열매라 또렷하게 기억할 수 있어요.


옛날 생각이 나 몇 알을 따 씹어 보았는데 옛날의 그 맛이 안 납니다. 시큼하지도 않은 게 니맛 내 맛없는 싱거운 느낌인데요 그 어린 시절엔 얼마나 맛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세월이 흘러 야생초 편지를 읽고 우리가 촌에서 땡깔이라고 부른 게 "까마중"이라 불린 다는 걸 알았습니다. 아마 텃밭 주인은 아재임이 틀림이 없습니다. 깔끔하게 정리된 밭고랑에 고추도 아닌 까마중을 잡초로 여겨 뽑지 않고 열매가 익을 때까지 남겨두는 갬성을 보면 말이죠. 아재가 아니면 살아 남지 못했을 꺼란 생각을 해봅니다.


지나칠 수 있었던 길을 능소화와 담벼락의 인연이 오래된 기억을 소환해준 기분 좋은 날이 되었네요.


능소화


땡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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